몽생미셸 가는 길 103화
에디트 피아프(Édith Piaf)는 프랑스 전설의 샹송가수다. 파리에서 태어난 그녀가 마흔일곱의 나이에 죽은 해에 내가 태어났다.
나는 그녀를 잘 모른다. 파리 페르 라쉐즈 묘지를 찾아갈 때까지는 그랬다. 페르 라쉐즈 가족묘지는 검은 빛깔의 대리석인 까마귀 돌로 평소 그녀가 즐겨 입던 검은 옷을 상징하고 있다. 가끔씩 누군가 묘석위에 꽃을 얹어놓고 사라지는지 어쩌다 묘지를 찾는 일이 있을 때마다 들르곤 하는 그녀의 묘석에는 항상 싱싱한 국화꽃송이나 장미꽃송이가 놓여있었다.
그녀의 삶을 웅변해 주듯 부른 수많은 노래 가운데 가장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 노래는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이란 노래다. 장미(rose)란 철자만 바꾸면 에로스(eros)가 된다. 로마(Roma)란 단어 역시 철자만 바꾸면 ‘사랑’이란 뜻의 아모르(amor)가 되듯이.
그녀는 노래를 사랑했다. 노래도 그녀를 사랑한 것 같다. 그녀가 노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노래가 그녀를 선택한 듯이 그녀는 노래를 잘 불렀다. 가사까지 의미심장한 샹송을 그녀는 항상 검은 옷을 걸치고 마이크 앞에 우뚝 서서 우렁차게 불러댔다.
그녀의 가냘프면서도 떨리는 듯한 음조는 세상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녀를 한 때 사랑했던 이브 몽땅 역시 노래를 잘 부르던 이탈리아 청년이었다.
사랑의 고통만 안겨주고 떠난 연하의 남자 이브 몽땅과는 달리 전설의 권투선수였던 마르셀 세르당은 진실로 그녀를 사랑했다. 함박눈이 펄펄 휘날리던 어느 겨울날 뉴욕에서 시작된 그 둘의 사랑은 틈만 나면 리지유를 찾곤 했다. 소화 데레사 성당에서 두 사람은 기도했다. 사랑을 위하여, 오직 사랑만을 위하여!
마르셀 세르당은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 권투선수였고 이미 알제리에 아내와 아들 둘 가족을 둔 유부남이었다. 몽마르트르 물랭루즈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그러나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더 이상 권투시합이 끝나기만을 기다릴 수 없었던 에디트 피아프는 권투시합이 있는 날마다 마르셀 세르당에게 자신의 헬기를 보내주었다. 어느 날 헬기를 타고 오다 추락해서 죽고 마는 권투선수 마르셀 세르당, 에디트 피아프는 2년 동안 파리 아파트에서 두문불출 울기만 하다가 물랭루즈의 무대에 다시 서서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가 「사랑의 찬가(L’hymne de l’amour)」다.
“그대여! 죽었다 슬퍼하지 마시오. 나 또한 저 세상으로 가리니. 이 푸른 창공과 주님께서는 더 이상 우리를 갈라놓지 않을 터이니.”
두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은 영원한 것이었을까? 그녀는 이렇게 노래한다.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그대가 내 곁에 있음으로 해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Ne regrette ri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