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102화
리지유(Lisieux)에 와 있다. 늦은 밤에 도착하여 반쯤 마시다 만 포도주 잔과 함께 포도주 병이 탁자 위에 놓여있고 포도주 곁에는 엿처럼 흐물흐물 녹아버린 꺄망베르 치즈가 접시 위에 엉겨 붙어있다.
한쪽에는 오쥬 지방(Pays d’Auge)의 풍경을 그린 스케치북 그리고 그 옆엔 읽다 만 책이 또 그 옆으로는 펼쳐진 노트와 함께 잉크와 펜 또한 가지런히 놓여있다.
사물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그 모든 것들은 어젯밤 리지외에 도착하자마자 호텔방에서 이루어진 나만의 제의에 사용한 도구들이다.
그러한 도구들을 가지고 혼자만의 제식을 치르면서 가장 최근에 리지외를 찾아왔던 때가 2007년 4월 어느 봄날이었을 것이라고, 또는 그보다 먼저 리지외를 여러 번 이곳을 찾아왔다는 기억을 떠올렸다.
중세 건축가들은 돌로 만든 세계관에 하나하나의 의미를 새겨놓았다. 중세 예술은 기호나 상징 그 어느 것을 막론하고 의미가 깃들어있었다. 그러나 내 혼자만의 의식을 거행했던 어젯밤, 나는 중세 예술가들처럼 돌로 새긴 문장이나 문양에 목말라하지 않으면서도 어쩌다 다시 찾아온 오쥬 지방의 추운 겨울밤의 써늘함만을 몸서리쳐가며 느껴가고 있었다.
호텔은 리지유 근교에 위치해 있는 관계로 밤의 차가운 공기가 더욱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호텔 측이 고맙게도 밤새 켜놓은 조명등 탓으로 쭈뼛쭈뼛 서있는 나무들과 조명을 받아 더욱 푸르른 잔디가 쓸쓸한 겨울밤을 전혀 쓸쓸하지 않게 환히 밝혀주었다.
열린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호텔 주변의 어두운 숲은 ‘습기 가득한 지역’이란 뜻의 오쥬 지방 한가운데 들어섰음을 실감케 했다. 글을 쓰면서 습기가 어디로부터 연유한 것인지를 캐묻기보다는 한겨울밤의 습기가 가둬놓은 쓸쓸함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를 더 고민하게 되었다.
그 같은 의미부여로 말미암아 나는 지난 30년간을 오간 길 위에서 수없이 자기 혼란에 빠져들었다. 검은 숲 같은 노르망디의 밤을 헤집고 다니면서 과연 이 행위가 내 인생에 어떤 의미일 수 있는가 하는 자기 회의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어젯밤 그린 풍경은 저물어가는 오쥬 지방 들녘의 아름다움이었고 숲 가까이 자리한 꼴롱바쥬 형태로 지은 농가였다. 그 고즈넉한 풍경은 이 지방을 수 없이 오가면서 보았던 풍경이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내 기억 깊숙이 자리한 정취이기도 했다.
어느 날 모든 것을 작파하고 뛰어들고 싶었던 풍경의 바다이기도 했다. 고요함, 정적, 말없는 응시가 빚은 일상의 고즈넉함은 한때 내가 바라던 삶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장은 덮여있다. 노트에는 깨알 같은 무언가가 어지러운 흔적으로 나뒹굴고 있다. 때 늦은 시각에 눈뜬 아침이 시작되자마자 어젯밤 마시다 만 포도주를 들이켠다.
꺄망베르 치즈를 먹기엔 치즈가 너무 녹아 말라비틀어졌다. 딱딱하게 굳어져서 도저히 손댈 수조차 없다. 가끔 아침 일찍 일어난 날에 샴페인을 마시고 싶어 하던 생각이 들었다. 갸름하면서 길쭉한 잔에 황금빛으로 흘러넘치는 샴페인의 기포로 말미암아 삶에 대한 재충전을 다짐하던 때도 있었다.
샴페인과 함께 하는 기억은 늘 나를 흥분시켰다. 그건 마치 겨울이 끝나갈 무렵 에페르네를 여행할 때의 봄을 애달프게 고대하던, 그 벅찬 기대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침 일찍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아내와 함께 마시던 샴페인에는 삶의 부활과 희망이 늘 무지개 빛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오늘 아침은 너무 늦었다. 너무 늦게 일어나 그나마 아침식사 시간도 놓쳐버렸다.
간밤 조명이 밝히던 호텔 정원은 이미 티 없이 맑은 겨울햇살의 정오를 향한 눈부심에 갇혀버린 상태,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커피나 마셔야 할 판이다. 작은 커피 알갱이들이 녹아들면서 투명한 물이 검은빛을 띠어갈 때쯤 한 모금 머물고는 메마른 입안을 축이면서 생각에 잠긴다. 그렇다. 시간이 빠듯하다. 하루 더 묵을 건지 아니면 체크아웃을 할 건지 결정해야 할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