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르드, 리지유, 바뇌

몽생미셸 가는 길 104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루르드 동굴의 성모상


널찍한 호텔식당에서 아침 대신 점심을 들고 리지유 시내로 들어선다. 오늘 내가 제일 찾아보고 싶은 곳은 성녀 소화 데레사 기념성당도 아니요, 그녀가 입회한 맨발의 수도회 가르멜(Carmel) 수녀원도 아니고, 그녀가 어린 시절을 보낸 뷔소네(Buissonnets)도 아니다.


나는 그 모든 곳을 이곳에 올 때마다 잊지 않고 찾아다녔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 그곳은 내게 더 이상 새로운 장소일 수 없었다.


프랑스에서 성녀와 관계된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종교적 성지는 루르드와 리지유다. 루르드는 성녀 벨라뎃다와 관련이 깊은 곳이며, 리지유는 성녀 소화 데레사와 연관된 곳이다. 이 가운데 순례자들이 더 많이 찾는 성소는 루르드다. 아마 기적수가 나오는 곳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벨기에의 리에쥬 근처 바뇌(Banneux) 성지도 기적수가 나온다. 그러나 그곳에서 성모님이 발현한 것이 기적일 만큼 마리에뜨라는 벨기에의 한 여인의 인생은 너무도 기구했다. 만일 그녀 역시 수녀였다면 성녀가 되었을 수도 있고 그곳 또한 루르드처럼 천주교 신자라면 반드시 들려야 할 종교적 성지로 각광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에뜨는 결혼하여 누가 봐도 못난 남편과 삶의 파탄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불행으로 점철된 삶으로 인생을 마감한 불쌍하고도 가엾은 여인이다. 모파상의 『어느 인생』에 나오는 주인공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당연히 그녀가 보았다는, 그녀에게 현시되었다는 성모님 발현에도 불구하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성녀가 되지 못한 채, 바뇌 역시 기적수가 나온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천주교인들의 주목을 그다지 받지 못하는 성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루르드에 비하면 아니 리지유에 비해도 그곳을 찾는 순례자들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 평범한 여인에게 발현한 성모, 꿈속에서 흰 소복을 한 여인을 보았다면 그건 귀신이다. 내 두 눈이 떠있는 맑은 의식 상태에서 마주친 여인이라면 그건 분명 성모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 결과가 뒤따라야 한다. 내 몸의 불치병이 낫거나 어떤 기적이 일어나야만 한다.


마리에뜨에게 일어난 기적은 기적수 ‘물(水)’이었다. 루르드와 똑같은 물이었지만 루르드와 같은 영광과 기적은 더디기만 했다. 이런 비유가 가능하다면, 그건 2천 년의 기나긴 기독교사에서 진행되어 온 성모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흠숭의 차이와도 같다.


정초에 이 맑은 겨울 하늘 아래 내가 다시 찾아가 보고 싶은 곳은 어울리지 않게 리지유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은 대성당(카데드랄)이다. 리지유 대성당은 노트르담이 아니라 성 베드로 성당이다.


대성당은 소화 데레사 성녀가 다니던 교회였고 리지유의 번영을 촉발시킨 역사적인 장소일 뿐만 아니라 리지유의 중심이기도 한 곳이다. 나는 그런 대성당 안에서 노르망디 인들이 지은 채광탑을 올려다보면서 저 아득한 천 년 전의 시공간으로 되돌아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모처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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