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106화
[대문 사진] 성녀 소화 데레사 기념성당
간혹 리지유의 대성당이라 하면 성 베드로 성당과 소화 데레사 기념성당(La Basilique de Sainte Thérèse)을 혼동하기도 한다.
성 베드로 성당은 12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지어진 성당이고 소화 데레사 기념성당은 20세기 초에 건립된 교회라는 차이점 말고도 그 규모면에서 소화 데레사 기념성당이 훨씬 웅대할 뿐만 아니라 리지유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언덕 높이에 지어진 관계로 성녀 소화 데레사 기념성당이 리지유를 대표하는 성당이 아닐까 반신반의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리지유의 대성당(카데드랄)은 성 베드로 교회다. 성 베드로 성당 서쪽 종탑의 모양새는 짝짝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이 가미된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성 베드로 교회는 성당 내부만큼은 바실리카 양식을 고수한 십자가 형태이다.
내진의 길이는 110미터, 고딕 둥근 아치 천정까지의 높이는 20미터, 이 교회 역시 노르망디 인들만의 건축술이라 할 수 있는 채광탑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높이가 30미터에 달한다. 채광탑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은 제단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9세기 쥬미에쥬에 최초로 들어선 성 베드로 성당처럼 리지유에 처음으로 건설된 교회 역시 성 베드로에게 봉헌되었다. 중세 로마 가톨릭 입장에서는 12세기 이후 노트르담에 대한 공경의 움직임과 함께 모성(母聖)을 강조한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교회가 붐을 이루기 전까지는 당연히 주교좌성당을 성 베드로에게 봉헌하는 것이 관례였다.
지금으로부터 870년 전 파리의 유일한 언덕인 순교자의 언덕(몽마르트르)에 세워진 교회 역시 성 베드로에게 봉헌된 교회다. 이 시대의 교회들에게서 성 베드로라는 이름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낯설지 않다.
리지유의 번영을 가져온 성당, 앞으로 소화 데레사가 갈멜 수도원에 입회할 것을 기도하고 묵상했던 교회, 리지유는 ‘새로운 장터’ 또는 ‘새로움으로 가득 찬 곳’이란 뜻이다.
역사의 질곡과 함께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집중포화로 시가지와 함께 옛 건물들이 모두 날아갔지만 리지유는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감행되던 대서양 연안 꺄부르그 해안으로부터 아호망쉬를 거쳐 생트 에글리즈 쉬흐 메흐에 이르는 광대한 노르망디 해안을 그 시발점으로 해서 몽생미셸 다음으로 수많은 여행객들을 끌어 모으는 관광명소이면서 동시에 가톨릭 신자들이 살아생전 한 번쯤 반드시 들리고자 열망하는 종교적 성지로 자리 잡았다.
리지유가 영성의 도시 묵상의 도시로 발전한 것은 아버지의 성스러움을 강조한 성 베드로 성당으로부터 24살의 나이에 죽은 성녀 소화 데레사의 영성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성베드로 성당을 바라보기만 하면 도시의 운명까지도 점쳐지기까지 하는 것은 왜일까?
나는 프랑스 최고의 점성술 대가로 알려진 노스트라다무스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사실이 별로 없다. 앙리 2세의 왕비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에서 시집온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카트린느 드 메디치가 점성술가 노스트라다무스를 찾아가 미리 알게 된 앙리 2세가 파리 보쥬 광장에서 개최한 마상시합에서 죽는다는 예언에 기초한 역사적 사실 이외에는 노스트라다무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전무하기까지 하다.
성당에서 나와 광장 맞은편 카페로 들어서서는 테이블을 마주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짝짝이 종탑 두 개가 시선을 압도해 온다. 종탑 꼭대기엔 따사로운 겨울 햇살이 내리쬐는 속에 더욱 푸르른 하늘이 마치 천국 열쇠를 열고 들어선 성당의 궁륭만큼이나 숭고한 높이로 빛나고 있다. 경계의 이쪽저쪽, 교회의 문턱은 확실히 세속과 성스러운 영역의 경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