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107화
[대문 사진] 레오나르도 다빈치, 성당 삽화
대성당 앞 광장 카페에 앉아 커피를 되질하다 어젯밤 읽던 책에서 본 삽화를 다시 펼쳐본다.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프랑스 르네상스까지 견인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스케치한 성당 삽화다. 정확히 어느 성당을 그린 것인지, 앞으로 지어질 성당을 그린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다빈치가 그린 스케치는 성당의 정사각형 도면까지 담았다.
그가 그린 성화(聖畵)는 21세기인 지금까지도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가 천주교 신자였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당대에 어쩔 수 없이 가톨릭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예술가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교회에서 거행되는 혼배성사를 통하여 성가정을 이룬 유럽인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교회에서 유아영세를 받곤 하는데, 아이에게는 당연히 성인 이름 가운데 하나가 택해진다. 그 많고 많은 이름 가운데에는 예수란 이름도 존재한다. 주로 남미 계통에서 많이 발견되는 이 이름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할 자 즉 절대자이며 모든 성인을 넘어선 초월자라는 이유에서 취해진 것이라 짐작된다.
로마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과 동격이고 우리를 구원할 자 예수는 속인이 자신의 이름으로 취할 성격은 아니지만, 현실은 다르다. 교회가 그걸 허용할 리도 만무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절대자의 이름까지도 따라 짓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심지어 마리아란 이름까지 등장한다. 남자든 여자든 성별과 무관하게 성인의 이름을 취해도 상관없다. 성서 속에 등장하는 이름도 가능하다. 남자아이에게 이브를 여자아이에게 모세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아이러니하게도 다빈치에게는 레오나르도란 이름이 붙어있다는 사실이 돋보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빈치 마을에서 태어난 레오나르도’란 뜻이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주로 통용되던 이 이름은 프랑크 왕국이 번성하던 때 고대 게르만어권의 인명 레온하르트(Leonhard, Leonhardt)에서 기원했다. ‘사자’를 뜻하는 접두사 레온(Leon)과 ‘용감한, 강한’을 뜻하는 하르트(Hardt)를 합한 것이다. 즉, 사자의 힘, 용맹을 뜻한다.
다빈치가 그린 성화 가운데 가장 뛰어난 걸작은 밀라노의 수도원 식당 벽에 그린 「최후의 만찬」이다. 「최후의 심판」은 미켈란젤로가 교황이 묵상을 하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소성당에 그린 벽화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베로네제가 그린 예수 최초의 기적을 다룬 그림 「가나의 혼인 잔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탁월하다.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있는 「가나의 혼인 잔치」는 너무 거대할 뿐만 아니라 혼인 잔치에 참석한 인물들도 참으로 어색하게 「아테네 학당」을 배경으로 앉아있다. 한마디로 베로네제는 예수의 첫 기적, 즉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림을 그처럼 크게, 이제까지 그린 모든 그림을 압도할 만큼의 크기로 그렸을 것이다.
그러나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기 전날 밤의 상황을 담은 것으로 엄숙하다 못해 엄중하기까지 하다. 이날 저녁에는 예수의 그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다. 예수는 최후의 만찬이 있기 전날밤 겟세마니 동산에 올라가 “주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 죽음의 잔을 거두소서.”하며 흐느꼈다. 십자가 처형을 앞둔 예수는 우리처럼 하늘에 대고 절규했을 따름이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제자들을 모아놓고 곧 십자가에 처형될 것과 인류를 대신한 고통과 희생을 통하여 죽은 뒤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여 인류를 구하고자 인간 세상에 재림할 것을 엄숙히 예고하듯 늠름하고 전지전능한 모습으로 이를 세상 곳곳에 전파할 제자들과 당당히 최후의 저녁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에서 곧 도래할 세상 구원이라는 화두를 예술로까지 승화시킨 진정한 예술가였는지도 모른다. 그가 그린 당당하고 늠름한 예수의 모습은, 마치 죽음을 불사할 것 같은 예수의 성상은 이전에 바실리카와 로마네스크, 고딕 성당에서 돌로 구현된 그 위풍당당하고도 전지전능한 예수의 모습과도 같다.
그런 연유로 한 여인의 인물화에 해당하는 「모나리자」까지도 성녀를 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동시대 작가 조르지오 바사리의 말을 빌어 단언컨대 「모나리자」는 당시 24살의 한 아이를 둔 평범한 피렌체의 여성에 불과하다. 이 여성이 신화화된 것은 모나리자의 배경이 다빈치 자신이 고안해 낸 천국의 풍경일 뿐만 아니라 그 독특한 시선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눈은 한 방향만을 응시할 수밖에 없지만 그녀는 180도 전방을 다 바라보고 있다. 아니 어느 방향에서 그녀를 바라봐도 바라보는 이의 시선과 일치하는 이 눈빛은 감탄스럽다 못해 의아하기까지 하다. 그가 즐겨 사용한 명암법에 근거한 결과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구세주의 눈빛과 닮았다. 전지전능함까지도 느껴지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녀 또한 신화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런 다빈치가 비록 스케치이기는 하나 성당을 그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깨알 같은 그림 밑에 적어 놓은 글귀가 뜻하는 바는 읽을 수도 해독할 수도 없지만 둥근 돔 지붕은 교회가 곧 성소요, 천국이란 점을 상징하고 있다.
동서남북 네 개의 지붕 종탑은 천사, 사자, 황소, 독수리를 상징한다. 예수의 말씀을 전하는 4 복음사가인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을 일컫는다.
다빈치는 성당 바닥 도면까지도 그렸다. 큰 원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원 4개, 그리고 그보다는 큰 둥근 원과 마지막 꼭짓점에 해당하는 작은 원 4개씩 원은 그러니까 도합 4 x 3 = 12개다.
중앙의 제일 큰 원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요 주변의 크고 작은 원 12개는 열두 사도를 가리킨다. 교회의 입구는 그림 맨 아래 작은 원 바깥에 나있다. 서쪽이다. 그림에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제단은 모든 서양 교회가 그렇듯이 동방의 예루살렘을 향해 있다.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있을 때 석가는 동쪽을 향하여 앉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성당은 성사의 중심이고 성(城)은 성당을 보호하는 세력의 중심이다.” [1]
[1] 조셉 캠벨, 『신화의 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