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108화
[대문 사진] 샤르트르(Chartres)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로 서유럽의 거의 모든 마을들에는 교회가 들어섰다. 마을 한복판이나 마을에서 가장 높은 지대인 언덕에 세워진 교회들은 마치 바닷가 비바람 몰아치는 해안에 세워진 등대처럼 마을의 상징이었다.
빛의 상징, 그 빛 한가운데에로 달려가는 마을주민들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물론 은수자의 기도처나 수도원 교회는 이와 달리 길이 나 있지 않은 첩첩산중 속에 자리 잡거나 바닷가 해안 절벽과 같은 도저히 인적이 닿을 수 없는 곳에 들어섰다.
세상을 구원하고자 한 교회는 그러나 지리적으로 마을의 중심에 들어섰고 중심을 이뤘으며, 혹은 천국과 가깝다는 인식을 불러일으킬만한 마을 제일 높은 곳에 세워졌다.
이후로 국왕의 권위가 점차 강화됨에 따라 지방 영주의 권력 또한 상승하면서 성곽(bourg)이 마을을 둘러쌓다. 성곽은 일차적으로 외적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서 마을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어졌다.
도성 안에 사는 사람들을 부르주아(bourgeois)라 불렀는데, 이들은 일정한 대가를 도성의 최고 권력자에게 지불하고 그들의 생명을 보호받았다. 부르주아란 말은 결국 ‘도성 안에 사는 사람들’이란 뜻이며 현대에 와서는 도시민 심지어는 중산층을 가리키는 말로까지 확대 재생산되었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기여한(?) 바일 수도 있다. 부르주아는 한때 계급투쟁을 통하여 타파해야 할 유산자 계급을 가리켰다. 프랑스 대혁명이 군주제의 타파와 귀족계급의 척결을 의도한 시민혁명이었다면, 프롤레타리아(무산자) 계급혁명은 부르주아 계급의 타파를 의도한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프랑스에서 성당이 마을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지리적인 의미와 함께 교회가 영적인 성소(聖所) 임을 뜻한다. 그 대표적인 도시 샤르트르는 이런 믿음을 철저히 구현한, 마을주민들도 순순히 이에 동화된 곳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성소, 성지란 이런 장소를 일컫는다.
“모이어스: 오늘날의 성지나 성소는 어디에 있습니까?
캠벨: 이제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찾아가 거기에서 벌어졌던 일의 의미를 생각하곤 하는 역사적인 명소는 몇 군데 남아있습니다. 가령 우리는 성지순례를 하곤 하는데, 우리 종교가 비롯된 곳이라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모든 땅이 다 성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지구상 모든 땅에서 삶의 에너지의 상징을 찾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옛날의 전통은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네 땅을 성별(聖別)했던 것입니다. (…) 그러나 우리 문명권의 영적인 상징체계는 이제 우리들에게서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사라졌기 때문에 아직도 성당이 중심이 되어 있는 프랑스의 조그만 마을 샤르트르 같은 데 가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 샤르트르 대성당에 가면 성당의 영적인 원리가 사회의 삶을 버티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마천루가 사회의 무엇을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잘 아시겠지요? 중세 도시에 가보면 성당이 가장 높은 건물 행세를 합니다. 그러나 18세기에 조성된 도시에서는 정치 중심이 가장 높은 건물 행세를 합니다. 현대 도시의 가장 높은 건물은 누가 차지하고 있지요? 업무용 건물이니까 당연히 경제 활동의 중심이 되어있지요.”
리지유 역시 성 베드로 성당이 도시의 중심이었을 것이다. 이후로 이 도시는 번영과 침체의 길고 긴 역사의 질곡을 거쳐 다시 태어나야만 했다. 미국의 비교 종교학자이자 신화학자가 우려했던 것처럼 리지외 역시 오쥬 지방의 대표적인 도시로서 경제 활동의 중심지였기는 하나 더불어 소화 데레사라는 전대미문의 성녀로 말미암아 종교적인 성소이자 영적인 도시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연합군의 포화로 그 아름다웠던 꼴롱바쥬 건축물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되었지만 리지유는 다시 부활할 것을 의심치 않았다. 한 평범한 인간의 영성이 이토록 놀랍고 끈질기며 거룩하기까지 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 부분이다.
이제 커피 한 잔이 낳은 명상을 거두고 성녀가 걸어간 길을 되짚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리지유에 와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