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109화
[대문 사진] 소화 데레사 생가 레 뷔쏘네
성녀가 살았던 레 뷔쏘네로 향한 길은 오르막길이다. 성 베드로 성당에서 3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언덕바지에 전형적인 프티 부르주아 풍으로 지어진 건물은 퐁 레베크를 향한 대로에서 다시 언덕길을 10여분 올라가야만 나타난다.
높은 담장에 가려져 길가에서는 집 전체가 한눈에 보이지 않지만,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정결하고도 고풍스러운 저택이 고스란히 눈길을 사로잡는다. 앞의 뜰은 작고 아담하다. 고요함마저 진득하게 묻어나는 앞뜰을 지나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면 오르막 경사면에 뒤뜰이 또 하나 있어 저택 전체를 시원하면서 널찍하게 품어 안은 듯한 인상에 사로잡힌다.
이 뒤뜰 정원에는 어린 데레사가 아버지 루이 마흐탱에게 리지유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할 것을 간청하는 흰 대리석 조각상이 순례자들로 하여금 나이 15살에 성소에 뜻을 둔 어린 소녀의 간절한 꿈을 되새기게 만든다.
건물은 성녀를 포함하여 여섯 식구가 산 저택은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지은 19세기 전형적인 3층짜리 건물이다. 이 건물은 데레사 성녀의 외삼촌 이지도르 게랭이 수소문하여 구한 집으로 여기서 루이 마흐탱과 다섯 자매가 1877년 11월 15일부터 1888년까지 11년간을 살았다. 다섯 자매 모두 수녀원에 입회한 뒤 루이 마흐탱마저 사망하자 리지유 순례회 재단은 저택을 구입하여 현재 성녀 소화 데레사 기념관(생가)으로 꾸며 놓고 전 세계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리지유 레 뷔쏘네 성녀 생가는 알랑송의 생가와 함께 어린아이가 영성에 눈떠 성소에 뜻을 품고 수도회에 입회하기 전까지 살았던 장소로 연중 내내 성녀를 공경하는 많은 가톨릭 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정초인데도 불구하고 각국에서 찾아온 외국 순례자들이 생가를 돌아보며 성녀를 흠숭하는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안내를 맡은 수녀님들도 애잔하기는 마찬가지다. 리지유 순례자 재단 소속으로 봉사하는 이 분들은 1층 현관서부터 3층 마흐탱 씨가 홀로 독서를 하거나 서류정리를 하던 방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입장료가 없으니 그분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뜻으로 봉헌함 통에 약간의 감사의 뜻을 표하면 바로 재단 기부금으로 활용된다. 이 기부금은 더 많은 순례자들을 위해 기념관을 유지하는 비용으로 쓰일 것이다.
레 뷔쏘네(Les Buissonnets)란 말은 레(les)는 정관사 복수형이고, 뷔쏭(Buisson)이란 말은 성서에도 등장하는 ‘떨기나무’ 혹은 ‘관목’, ‘수풀’을 가리키는 단어다. 접미어 네뜨(net)는 ‘정결한’, ‘단아한’이란 뜻을 지닌 말로써 뷔쏘네란 말은 곧 ‘정결한 수풀(저택)’을 가리킨다.
이 조용하고도 아늑한 집에서 성녀는 리지유 갈멜 수녀원에 입회하기까지 믿음에 기초한 정결한 신앙을 꿈꿨다. 5살 때부터 16살 때까지 살았으니 도합 11년을 이 집에서 산 셈이다.
오흔느 지방의 도청 소재지인 알랑송에서 부유한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난 성녀는 수녀가 된 언니들처럼 아니 성자를 꿈꾸었던 부모처럼 수녀로 살다가 24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아주 짧고도 평범한 삶을 산 인물이다.
그녀가 남긴 『어느 영혼의 이야기(L’histoire d’une âme)』에서 알 수 있듯, 한 평범한 인간의 신앙심이 수녀로서의 삶으로 전환되었고 죽음을 통하여 평범한 영혼으로서는 다다르기 힘든 절대 믿음과 신앙의 세계에 도달했음을 증거 해주고 있다.
1925년에 교황 비오(피우스) 11세에 의해 성녀로 시성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 성녀로 말미암아 평범한 세인들처럼 아주 소박한 삶을 살다 간 그녀의 부모 또한 성인으로 시성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2008년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성인으로 시복되고 2015년 성인으로 시성된 성녀의 부모 루이 마흐탱과 젤리 마흐탱 부부는 성가정을 이루고 다섯 명의 딸들 모두를 수도원에 입회시킨 정결한 삶을 산 인물들로 평가받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 재산을 교회와 수도원 그리고 사회에 환원한 범상치 않은 삶을 산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제 그들 또한 성녀인 딸 덕분에 소화 데레사 기념성당에서 성녀와 함께 이곳을 찾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공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들 부부 성인의 축일이 그들이 결혼식을 올린 7월 12일이란 점 또한 특별하다.
『평범한 성인들 : 루이와 젤리 마흐탱』[1]에 따르면, 한 평범한 성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여자아이가 종교적 열망으로 말미암아 성소에 뜻을 품고 수녀가 되어 종교적 삶을 치열하게 살다 이 세상을 뜬 이야기가 이처럼 강렬한 자장을 갖게 된 바탕에는 너무도 평범한 부모 슬하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성스러운 삶으로 승화하여 현대사회에서 평범하지만 고귀한 믿음을 토대로 치열한 신앙인의 삶을 산 것 역시 기적이나 순교에 버금가는 성스러운 삶을 산 것과 같다는 교황청의 결정에 따른 합리적인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성녀 소화 데레사는 그렇듯 평범하고도 복된 성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로부터 정결한 신앙심을 갖게 되었고 이 믿음을 바탕으로 성스러운 삶을 살다가 죽음에 이른 것이다. 24살이라는 짧고도 강렬한 삶은 그러나 그 어떤 삶보다도 종교적으로 열렬한 신앙심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녀가 세상에 남긴 『어느 영혼의 이야기』는 그렇기에 짧지만 그 어느 누구보다도 열렬한 믿음의 삶을 살다 간 그녀의 생애를 압축해서 들려주고 있다.
성녀의 부모 또한 독특한 삶을 산 인물들이다. 성녀의 아버지는 루이 마흐탱으로 보르도에서 태어나 부친을 따라 알랑송으로 이주해 와서 시계공으로 인생을 시작했다.
젊은 시절 성소에 뜻을 품고 알프스에 있는 성 베르나르도 수도원에 입회하고자 시도했지만 라틴어를 읽을 줄 모른다는 이유 때문에 입회를 거절당하자 파리를 2년간 떠돈 뒤 고향으로 돌아와 부친의 일을 돕다가 스스로 시계제조 수리전문 업체를 차리고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35살이 될 때까지 결혼도 하지 않고 일만 하면서 평범한 신자의 길을 걸어간 탓에 모친을 절망감에 빠트리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역시 한 때 성소의 뜻을 품고 수녀원에 입회하고자 했던 젤리를 만나 그녀가 27살이던 1858년 7월 12일 알랑송 바실리카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전생에 어떤 연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두 사람은 한때 수사와 수녀를 꿈꿨던 노총각 노처녀였다. 그런 두 사람이 집과 가게와 성당을 오가다 눈이 맞아 결혼하여 단란한 가정을 이룬 것이다.
둘 다 군인의 자식으로 태어나 평범한 삶을 시작한 경우였지만, 루이보다는 젤리가 질곡이 심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다. 나폴레옹 군대에서 군인으로 수많은 전쟁터를 떠돈 아버지도 아버지이지만 전형적인 거친 농촌 일을 하던 투박한 여인이었던 그녀의 어머니로 말미암아 평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탓으로 그녀는 스스로 증언했듯이 ‘죽음과도 같은 지극히 불행한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을 정도다.
그녀는 3남매 가운데 둘째 딸로 언니 마리 루이즈와 함께 신앙에 남다른 열정을 지니게 되었다. 훗날 함께 레이스 가게를 차리고 일하던 언니가 어느 날 갑자기 수녀원에 입회한 것도 이런 사연과 무관하지가 않다.
젤리는 성소에 뜻을 품고 종교적 삶을 살아가기로 작정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중도에 작파하고 레이스 제조업에 뛰어들어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사업도 번창하여 한 때 20명의 직원을 둘 정도로 사업 수완도 대단했다.
이때 루이를 만나 결혼에 이르렀는데, 두 사람은 수사와 수녀처럼 평생 형제, 자매로 살 것을 맹세한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광적으로 좋아했던 젤리는 루이를 만나 경건한 삶을 살면서 모두 9명의 아이를 낳았다.
이 가운데 네 명이 병사함에 따라 다섯 딸만 남았는데, 그 가운데 막내딸이 데레사였다. 남은 자식들을 키우며 오로지 레이스 사업에만 몰두하던 젤리는 신앙심으로 자식을 잃어버린 슬픔을 지워나가다 병에 걸려 결국 45세의 나이로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평탄치 않은 삶을 산 것은 아니지만, 수녀가 된 언니 마리 루이즈도 결핵으로 사망하고 자신도 유방암을 앓다가 세상을 뜨고 만 것이다. 리지유에서 약사였던 남동생이 누나를 수술시키려고 외과 의사를 찾아다녔지만 이미 때가 너무 늦어버린 관계로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젤리는 마지막 순간에 남편 루이와 함께 루르드를 찾아 기적을 바랐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루이는 아내가 죽자 모든 사업체를 정리하고 다섯 딸과 함께 처남이 제안한 리지유로 이사를 왔다. 어머니를 여의고 둘째 언니인 폴린 품에서 자란 데레사가 나이 네 살에 여덟 달이 되던 때였다.
데레사는 리지유의 레 뷔쏘네에서 아버지와 네 언니들과 함께 살았다. 큰 언니였던 마리아는 어머니 역할을 대신했고 둘째 딸인 폴린은 아버지와 함께 집안 살림을 도왔다. 데레사가 어머니처럼 따랐던 두 언니들은 바로 마리아와 폴린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자 두 언니는 차례차례 리지유의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했다. 그 밑으로 두 명의 언니들도 각각 르망 수녀원과 캉 수녀원에 입회했다.
어려서부터 병치레를 심하게 한 데레사는 언니들이 모두 수녀원에 입회하자 자신도 수녀원에 들어가고 싶다고 아버지께 간청한다. 이때가 나이 15살 때였다. 뷔쏘네 뒷 정원에는 15살의 나이에 수녀원 입회를 아버지께 간청하는 데레사 조각상이 서있다. 병을 앓던 어린 시절 창문을 통하여 환하게 미소 짓는 성모를 바라보면서 병을 이겨낸 그녀였기에, 더해 언니들의 수녀원 행에 자극받아 자연히 자리하게 된 이러한 성소의 뜻은 로마로의 성지순례로 이어지고, 아버지와 함께 찾은 교황청에서 교황을 알현한 자리에서 당돌하게도 자신의 꿈, 즉 수녀원 입회를 간청하는 데에까지 이어졌다.
16살이 되던 이듬해 교황의 윤허가 내려지고 이를 전해 받은 루앙의 대주교는 어린 데레사의 가르멜 수녀원 입회를 허가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둘째 언니인 폴린이 수녀원장으로 있는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수녀로 살다가 『어느 영혼의 이야기』라는 자서전을 남긴 채 1897년 9월 30일 결핵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뷔쏘네는 오후 한낮의 열기에 붉은 벽돌을 한 건물이 더욱 붉게 타오른다. 3층 처마 밑 다락방에 이르기까지 우아하고 기품 있는 저택은 살아생전 사업에 성공했던 성녀의 부모의 재력을 엿보게 해 주기에 충분하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집은 딸들을 모두 수도원에 입회시킨 뒤 모든 재산을 교회와 수도원 그리고 사회에 공헌한 성녀의 부친 루이 마흐탱이 세 들어 산 집이다. 루이는 아내 젤리와 함께 상당한 재산을 모은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아내를 저 세상에 떠나보내고 처남의 제안을 받아드려 리지유의 뷔쏘네로 이사를 와 세 들어 살면서 루이는 전 재산을 교회와 사회에 기증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고아원 양로원 병원 등을 찾아다니며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헌신했던 그는 아내 젤리가 이야기한 것처럼 모든 여성이 꿈꾸는 살아있는 성자였다. 이런 아름다움도 있다. 세상에는 프티 부르주아의 횡포만 있는 것이 아니다.
[1] 『평범한 성인들 : 루이와 젤리 마흐탱(Louis et Zélie Martin : Les saints de l’ordinaire)』, 에마뉴엘 출판사,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