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126화
화창한 날씨엔 파리지앵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주말이라 할지라도 날씨가 화창하면 평일을 방불케 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거리마다 사람들로 넘쳐나고 피크닉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파리 공원들마저 몸살을 앓는다.
동네마다 장바구니를 들고 집 밖을 나서는 파리지앵들도 있다. 거리마다 아침 장이 서기 때문이다.
차를 끌고 도심을 누비는 파리지앵도 많다. 햇빛 사랑은 젊은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가릴 것 없이 모두가 한결같다. 화창한 날엔 나 역시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이 카페 저 카페 기웃거리며 다닌다. 화창한 날이 1년에 100일도 안 되는 파리에서 살다 보니 삶 자체가 우중충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듯 햇빛을 마다할 파리지앵은 없겠지만, 내 젊은 날은 그렇지 않았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이 싫어 그늘만 쫓아다니던 시절도 있었다.
시골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에트르타가 한창 개발 붐을 탈 때 파리지앵들이 대거 이곳에 몰려들어 전망 좋은 곳마다 집을 짓고 대서양의 햇볕을 즐겼다. 그들은 에트르타를 제2의 고향쯤으로 생각했다. 여기저기 들어선 멋진 집들은 아예 이곳에 정주하려고 들어선 파리지앵들이 지은 집들이라 여겨도 무방할 정도다. 파리지앵들에겐 에트르타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지역 인터넷 언론매체들은 한결같이 “파리지앵들이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하면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은 바다가 에트르타“라고 전한다.
지역 언론매체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에트르타로 몰려든 파리지앵들은 곳곳에 집을 짓고 살면서 화창한 날에 자갈밭 해안을 찾아 일광욕을 즐기거나, 수영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요트를 타고 먼바다까지 나아가길 즐겼다.
지금은 한걸음 더 나아가 말을 타고 알바트로스 해안을 산책하는 이들도 있고 코끼리 바위 언덕 꼭대기에 자리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기는 이들도 있다. 그마저도 귀찮으면 산책 삼아 이리저리 쏘다니면서 새로 생긴 가게를 구경하기도 하고 새로 나온 신기한 물건을 고르거나 하면서 소일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매주 목요일마다 마을 한복판에 장이 서면, 온갖 신선한 야채며, 생선이며, 육류며, 치즈, 과일 등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주민들과 어울린 관광객조차도 신바람이 난다. 목요일을 전후하여 며칠을 에트르타에 묵어 본 사람은 안다. 19세기 인근의 마구간이나 헛간에서 골라온 목재로 지어진 에트르타 시장(이들 말로는 ‘마흐쉐(marché)’라 한다)이 목요일 아침만 되면 왜 시끌벅적한 지를.
11월이 되면 가자미, 농어, 굴, 조개류 특히 청어가 쏟아져 나온다. 흔히 과메기라 부르는 청어는 알바트로스 해안에 집중적으로 모여들어 이보다 더 큰 물고기의 먹이가 되는 바람에 인근 해역의 어부들에게는 노다지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11월만 되면 에트르타 마을을 포함한 알바트로스 해안의 마을들에서는 ‘청어 축제(Fête d’Hareng)’[1]가 열린다. 숯불에 청어가 든 석쇠를 올려놓고 노릿노릿하게 구워 먹는 맛은 일품이다. 굳이 네덜란드 바닷가를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거기에 더해 시큼 달콤한 맛을 자랑하는 뮈스카데(Muscadet) 백포도주를 곁들이면 이들 말로 트레 봉(Très bon : 우리말로 ‘맛있다’라는 뜻)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그것만이 아니다. 사과를 발효시키고 숙성시켜 담근 시드르(Cidre, 애플와인)는 어떤 음식에도 잘 어울린다. 심지어 요리를 할 때 첨가하면 맛의 풍미를 더해준다.
양식장에서 방금 건져낸 석화 한 점에 레몬즙을 뿌려 입 안에 넣고 음미하듯 천천히 삼키다 입안에 내용물이 조금 남았을 때 뮈스카데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면 굴과 화이트 와인의 기막힌 조화까지 느낄 수 있다.
굴에 레몬즙을 뿌리는 이유는?
석화(石花), 이른바 껍질 속의 굴은 살아있는 굴을 먹을 때 최고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시큼한 레몬즙은 비릿한 굴 맛을 살짝 잠재우는 효과가 있다. 이들은 고추장 같은 소스가 발달하지 않아 레몬즙을 뿌리는 게 아니라, 굴 껍질을 깐 뒤, 입 안에 넣기 좋게 굴을 도려내어 그 위에다 살짝 레몬즙을 뿌리면 살아있는 굴은 꿈틀거리기 때문에 굴이 생굴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신선도 확인 차원에서 레몬즙을 뿌리기도 한다. 일설에 의하면, 날것을 그대로 먹는 까닭에 시큼한 레몬즙이 일종의 ‘소독’ 효과가 있다는 설도 있다. 비릿한 굴 맛을 감퇴시키는 데는 레몬즙만큼 탁월한 것이 없다. 그래서 굴을 시키면 굴 접시에는 늘 레몬 조각이 따라 나온다.
이마저도 싫다면 껍질을 깐 굴을 살짝 도려내고 그대로 흡입하면 된다. 시원하면서 짭짤한 맛이 입안에 향긋하게 감돈다. 지중해의 강렬한 햇볕을 자양 삼아 영근 레몬과 대서양의 차가운 바다에서 온갖 자양물을 흡입하고 자란 굴의 어울림이 만든 대서양 연안의 ‘굴 축제’가 그래서 겨울이면 매일 벌어진다. 그 정점이 성탄절이다! 이들은 성탄절 최고의 요리로 샴페인과 함께 해물요리를 내놓는다.[2] 그래서 성탄절 가족과 함께 하는 최고의 음식은 이른바 이들이 ‘Fruit de Mer’라 일컫는 해물모듬요리다.[3]
기념품 될만한 것이 있을까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리다 좁은 골목길 허공을 올려다본다. 노르망디 특유의 꼴롱바쥬(Colombage) 집들이 시선을 확 잡아끈다. 돌을 쌓아 집을 지을 줄 몰랐던 노르망디 인들은 나무를 재료로 삼은 서까래와 다진 흙 또는 석회반죽, 옥수숫대, 밀짚 등을 이용하여 정교하고도 아름다운 집들을 지었다.
지면으로부터 습기가 올라오는 맨 아래층은 석회암 덩어리를 매끈하게 잘라 올려 쌓고 그 위에 대들보와 서까래를 이용하여 뼈대를 형성한 뒤 벽으로 마감하면 훌륭한 꼴롱바쥬 건물이 완성된다. 이런 건물들이 노르망디 지역 도처에서 발견되는 이유는 돌을 쌓아 건물을 짓기가 어려워 생긴 이들 나름의 노하우에서다.
그러나 꼴롱바쥬가 꼭 노르망디 인들만의 지혜라고는 볼 수 없다. 오랜 세기 동안 유럽인들이 발전시켜 온 건축술이 바로 꼴롱바쥬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유럽 어느 도시를 가도 그 지역 스타일의 독특한 꼴롱바쥬 건축물들을 만날 수가 있다. 심지어 브라질에도 있다. 이주해 간 포르투갈 인들의 작품이다.
노르망디 꼴롱바쥬 건물은 좀 독특하다. 노르망디 지방의 농가는 원래 튼튼한 억새로 엮은 초가지붕 형태였는데, 도시에서는 이런 농가가 어울리지 않아 3층 이상 짜리 건물을 짓다 보니 자연 이 지방 특유의 꼴롱바쥬 건축술이 발달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이유로 건물들을 가만히 뜯어보면 건물들이 다 다르다. 똑같은 건물이 단 한 채도 없다. 뭔가가 다르다. 남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개성 또한 맘껏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유럽인들 답다! 그래서 거리를 산책하면서 이 건물 저 건물 올려다 보고 찬찬히 뜯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 재미가 여행의 흥취를 한껏 북돋아준다.
해안가의 집들은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이기지 못해 덧창에다 덧문까지 잇대어 달아 놨다. 그런 형국이다 보니 바다를 등진 쪽의 건물보다는 외관이 덜 수려하기는 하지만 나름 독특한 디자인을 살려 멋 낸 흔적은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아름다워지려는 노력처럼 아름다운 건물을 지으려는 노력 또한 가상하다. 집 지은이의 노고가 그대로 읽히는 집들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그렇듯 원더풀(Wonderful)을 외친다. 이럴 때는 “환상이야!”란 말이 더 어울리는 표현일까?
[1] 청어는 프랑스어로 ‘아랭(Hareng)’이라 발음한다.
[2] 굴(석화)은 이들 영어 알파벳 표기로 R자가 들어가는 달에만 먹는 게 좋다. 위장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R자가 들어가지 않은 달은 생굴을 피하는 게 좋다. 예를 들어 9월(SeptembeR), 10월(OctobeR), 11월(NovembeR), 12월(DecembeR), 1월(JanuaRy), 2월(FebruaRy), 3월(MaRch), 4월(ApRil)까지는 생굴을 먹어도 괜찮고 5월(May), 6월(June), 7월(July), 8월(August)은 익혀서 먹는 게 좋다. 생굴을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절기는 겨울이다. 그 정점이 12월 25일 성탄절이다! 꼭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날에 육고기를 섭취하지 않는 관습은 이들이 꼭 지키고 싶어 하는 오래된 전통이다.
[3] ‘후뤼 드 메흐’라 발음하는 Fruit de Mer는 ‘바다 과일’이란 뜻으로 날 것 그대로의 석화, 조개류 등과 함께 약간 짭조름하게 삶은 바닷고동을 비롯, 버터와 소금만으로 간한 펄펄 끓는 물에 데친 새우 및 바닷가재, 랩스터까지 생선을 제외한 대서양에서 채취한 다양한 조개류와 갑각류를 보기좋게 얼음쟁반에 올려 놓은 겨울철 대표적인 해물모듬요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