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이야기

몽생미셸 가는 길 127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동종 생 클레흐 호텔에서 바라본 에트르타


프랑스에는 좀 유별난 호텔들이 많다. 고성(古城)을 개조한 호텔이거나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은 것은 물론 그 지방 특유의 건축물을 자랑하는 호텔들이 하룻밤 묵고 가는 나그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주곤 한다. 에트르타 산 언덕에 자리 잡은 생 클레흐 동종 호텔(Hôtel Donjon Saint Clair)도 그 한 예라 할 것이다.


10년 전인가? 문학인들과 함께 여행을 즐길 때 이곳까지 찾아와서 점심을 든 적이 있다. 주인장 내외가 참 친절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정갈한 식당 분위기는 물론이고 음식 맛도 기막혔을 뿐 아니라 창 밖으로 보이는 전망 또한 일품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와 단 둘이서 그 호텔 레스토랑을 다시 찾아갔다.


레스토랑 유리창 가득 에트르타 해변 풍경이 들어찼다.


겨울이었다.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은 날씨에 춥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고조되어 갈 즈음, 왠 고성호텔? 여행의 분위기마저 싸할 것 같은 긴장감마저 드는, 모든 게 시큰둥해질 즈음 호텔에 도착하니 사위가 어두워져 금방 캄캄한 밤이 되고 말았다. 이를 어떡하나? 억눌렀던 초조함이 다시 고조되기 시작했다.


해가 바다에 빠져들자마자 바다는 주홍빛으로 물들어 갔다.
밤, 호텔 풍경


생각보다 훨씬 널찍한 호텔방은 오히려 썰렁하기까지 했다. 휑한 바람마저 불 듯 자꾸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그런 분위기였다. 호텔 리셉션에서는 방이 맘에 드냐고 상냥한 얼굴로 자꾸만 묻는 바람에 ‘그래 예전을 생각하자’ 다짐하며, 잘 만 하다고 나쁘지 않다고 욕조가 맘에 들지 않지만 밤이 깊었으니 괜찮다고 스스로를 달래듯 대꾸했다.


그렇게 밤이 써늘한 가운데 흘러갔다. 포도주 기운에 온몸을 맡기고 운전 중의 피로를 풀려고 자리에 누우니 스르르 눈이 감겼다. 얼마나 잤을까? 유리창밖이 환해지는 느낌에 눈을 떴다. 동이 터오고 있었다. 꽤 긴 시간이 흐른 모양이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유리창을 덮고 있는 커튼을 활짝 젖히자 창 밖은 보랏빛 노을에 새벽의 푸른 기마저 가시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주황빛 아침노을, 그 장관이라니! 차가운 공기가 창 밖을 에워싸고 있었지마는 창문을 열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침이 밝아지자
세상이 다시 환해졌다.


폐 깊숙이 숨을 들이마시자 더 이상 침대에 뒹굴 수만은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오랫동안 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때 문득 클로드 모네가 떠올랐다. 모네도 일출을 바라보았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그래서 느낌 그대로 「해 뜨는 인상」을 화폭에 담은 것일까? 뜨거운 차 한잔을 스푼으로 되질하며 생각에 잠겼다.


클로드 모네, 해 뜨는 인상, 파리 마르모땅 미술관


오랜만에 호텔에서 맛있는 아침을 들었다.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에 매일 먹는 빵인데도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식사를 한 뒤 로비에 있는 비스트로(Bistro)에서 생애 처음으로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했다. 그런 뒤 로비에만 있을 수 없어 밖으로 나왔다. 본격적으로 호텔 주변을 산책하리라 마음먹은 뒤라 기분마저 자꾸만 상승하는 느낌이었다.


비스트로는 옛 고성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렸다.


호텔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이 복받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스페인의 그라나다 인근 시에라네바다 산에서 맞이했던 일출, 남불 코다쥐르 로크브륀느 마을에서 바라보던 지중해, 이탈리아 아말피 해변에서 눈부시도록 마주하던 지중해의 아침, 스위스 인터라켄 호텔 레스토랑에서 바라보던 저녁 호수, 오스트리아 잘츠카머쿳 고성호텔 식당에서 바라보던 호반의 아침, 그랑빌 메르퀴르 호텔 아침식당에서 바라보던 대서양 등 아득한 기억 저편에 묻힌 여행의 기억들이 함께 부활하는 느낌이었다.


Etretat, Hotel Le Donjon.JPG 호텔에서 바라다 본 풍경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광대무변한 것인가? 산책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창 밖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늘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화첩에 담기 시작했다. 황홀한 하루가 시작될 찰나였다.


여행화첩에 담다.





[사족(蛇足)] 2023년 11월 현재 나는 아침 일찍 파리를 출발하여 호텔을 다시 찾아가는 중이다. 동종 생 클레흐 호텔 레스토랑은 2021년 미슐랭으로부터 별을 받았다. 주인도 바뀌었다. 오늘 저녁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지 말지는 여전히‘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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