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말피 해안을 추억하다

몽생미셸 가는 길 129화

by 오래된 타자기


에트르타에서 이탈리아 아말피 해안을 추억하다.


이탈리아 그 이중의 조화로움


참으로 다행히 이탈리아를 제대로 여행한 적이 있다. 그건 내가 생각한 그대로의 여행이었다. 여행이 끝나고 나서 온전히 내가 한 여행을 되살려내기 위해 수많은 스케치와 수채화로 내가 걸어 들어갔던 풍경들을 화첩에 담았다. 그리고 다행히 책도 한 권 펴냈다.


독자들이 외면했다 할지라도 그 책은 내 인생에 있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내 젊은 광기와 고독과 번민과 우울 그리고 행복을 묘사한 기록이었다. 좀처럼 정리되지 않던 이탈리아도 어느 정도 생각 속에서 정리가 된 상태였기에 별 대수롭지 않은 글이라 생각하지만, 생각할수록 애정이 더해지는 책이다. 제목도 내가 직접 고른 것이다.


그 책 이후로 나는 이탈리아를 잊고 살았다. 이후로 찾아간 이탈리아는 내가 여행하던 그런 이탈리아가 아니었다. 나는 그때마다 당혹했다. 왜 그랬을까 지금에 와서야 어렴풋이 그 이유가 짐작되기는 하지만 여행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이전에 내가 여행한 이탈리아는 정말 아름답고 상상력을 무한 자극하는 나라였다. 그러나 이후로 찾아간 이탈리아는 한낱 틀에 박힌 무심한 유럽의 전형적인 풍경 그 자체였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에 대해 한때 고민하기도 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기는 하지만 그 결정적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요인은 심적 상태에 따른 것일 수도 있었다. 처음의 여행은 어떤 ‘구원’을 바란 것이었지만, 이후의 여행은 여행이 일상화된 상태여서 그저 아무 거리낌 없이 떠난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내가 욕망하는 것이 점차 실현되어 가는 상태였다. 이후에는 욕망하는 것을 떨쳐버려야 하는 정반대의 심적 상태가 작용했다.


이러한 곤란함은 처음 여행할 때의 상상 속의 이탈리아보다 훨씬 아름답게 다가온 이탈리아를 잊게 만든 요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이유가 샤를 보들레르가 말한 권태에 의한 것도 또는 다른 요인에 의한 것도 아니란 사실만큼은 퍽 의미심장하게 여겨졌다.


베네치아를 여행수첩에 담다.


이후로 이탈리아를 기억의 한 구석으로 밀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여행할 때의 이탈리아의 정숙함과 수줍음을 떠올리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이후의 여행은 아마도 랜드마크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의 활달함에 취해 여행을 다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나폴리, 시칠리아 등 그곳의 랜드마크에 충실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자기 회의에 빠지게 된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건 결국 나만의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상투적인 것이었고, 생각 또한 아몬드 시만큼 편협해진 데서도 기인했다. 왜 나는 홀로 거닐었던 고적한 장소들만을 고집했으며, 더불어 활기차게 오간 장소들을 외면하려 했을까를 성찰해봐야 하는 과오이기도 했다.


이탈리아 여행이 내게 가져다준 가장 큰 병폐는 꼭 교회에 들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었다. 그때는 나 또한 순진한 천주교 신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감탄해 마지않는 실체에 적응해 간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의 검증과도 같은 교회 안의 맹목적인 장식에 더 열광했던 것 같다. 여행을 통해 자유로워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더 구속한 듯한 어리석음이 오늘에 와서야 조금 교정되었을 뿐이다.


그렇듯 욕망의 뒤범벅상태였던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욕망을 다 내려놓은 뒤로 떠난 여행의 마지막 코스였던 아말피 해안을 잊을 수가 없다.


그곳에서 나는 한 마리 작은 새였다. 더 이상 날아오르고 싶지도 않고 더 이상 무엇을 꿈꾸고 싶지도 않았던, 더 이상 무엇에 사로잡힌 영혼이고 싶지 않았으며, 단지 그야말로 원시적인 환각 상태에 돌입한 허공을 나는 한 마리 작은 새가 되었던 아말피, 나는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인간 세계의 참으로 대단한 가치들을 기꺼이 내 던져 버릴 수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내 가슴은 텅 비어갔고, 그 텅 빈 가슴에 오히려 지중해 바닷물이 흥건히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소금기 어린 물로 내 모든 것을 세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불길한 한 존재의 자기 정화는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되어 아침바다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나는 더 이상 무언가를 믿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내 고독, 번민, 고통, 일상의 괴로움, 상처 등을 보듬어보려 노력했다.


인간은 스스로에 의해 다시 태어날 때 가장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상태를 사랑하게 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이 자신이 스스로에게 품은 애정은 지극히 자애로운 것이기에 광기 어린 사회와 어느 정도 거리를 띄고 있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다면 병적인 상태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스스로 한 사람, 한 존재에 의해 결코 완성될 수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인격체란 절대고독 속에서 결코 완성될 수 없다. 그게 가능하다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예수, 성자, 부처, 즉 깨달음을 얻은 이들밖에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 부족한 이가 진정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고 경계 저쪽으로 진입할 수가 있다. 참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경계 저쪽에 대하여 다만 우리는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 없을 뿐이다. 단지 우리 모두가 동의한 여러 규정만이 도사리고 있을 따름이다.


구겨진 신체, 얼룩진 시트, 엉망인 객실을 빠져나와 베란다에 서서 바라본 바다···내 태어나 처음으로 바라보았던 바다와 흡사하다고 생각한 그 바다를 나는 어느새 마음의 화폭에 담아 가고 있었다.


여행은 끝나가고 있었고 호주머니는 텅 비었으며 신용카드마저 곧 신용불량자의 플라스틱 조각으로 변모할 판이었지만, 내가 돌아가야만 하는 세상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때 아무것도 꿈꾸지 않는 자유의 순순한 상태에 몰입해 갔다.


인생에서 이탈리아 여행은 되풀이되었다. 그러나 끝끝내 그 처음의 아말피는 다시 찾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다.


마치 르네상스가 예술의 전부인양 생각하는 예술사가들처럼 늘 한 장소만을 고집스럽게 찾아갈 뿐이었다. 괴테식의 여행이 참다웠다는 그때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지금에서야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몇 번 또 다른 형태의 글에서 그때 내가 생각한 것들을 절묘하게 표현해 봤지만 별 실효성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뉴스를 통해서 아말피를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는 사실에 긴장했다. 그리고 몽마르트르 다락방에서 아말피 해안을 소개하는 글을 우리말로 옮기던 때가 생각났다.


불행했던 일은 내 인생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이탈리아의 아말피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내 독서량이 짧고 인간관계가 매우 협소한 상태였기에 아말피를 모르고 있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 어느 누구도 내게 아말피를 이야기한 사람이 없었다는 점, 시칠리아에서 돌아와 내 스스로 찾아간 아말피는 그야말로 생면부지의 땅이었고 나를 매료시킨 성소였다.


이곳을 소개하는 글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많은 문학 예술가들이 이곳을 찾았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하나 불행하게도 너무 아름다웠던 아말피는 내 서툴고 불량한 표현으로는 묘사하기가 불편한, 묘사하기 조차 벅찬 곳이었을 따름이다. 스스로를 자제할 수밖에 없는 저간의 사정과 함께 내 이탈리아 여행의 정점을 찍었던 그곳을 다시 찾아가 보고 싶다는 욕구가 비등해지면서 더는 가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는 조심조심 그 기억 속의 해안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손목이 저려오는 이 새벽 한 줄 쓰고 쉬고 다시 한 줄을 써 내려가는 이 온전치 못한 불편한 쾌감처럼 나는 그 좁디좁은 지면에 뜸을 들여가며 그려갔다.


먼저 바다를 그리고 해안을 그린 뒤, 마지막으로 소나무를 그려 넣었다. 순서가 뒤바뀌었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내가 처음으로 본 아말피 해안을 기억하고 싶었던 것이고, 내 모든 욕망을 내려놓고 바다 위를 떠돌다 바닷속으로 침잠하던 한 마리 작은 새에 불과했던 그때의 내 자신을 떠올려보고 싶어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새가 되어 날던 하늘은 어떤 상태였을까? 하늘과 바다가 분간되지 않던 새벽에 나는 어떤 하늘을 날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영혼이 닿아가던 해안은 또 어떤 상태였을까? 나는 그때까지도 영혼의 힘을 믿고 있었다. 타락한 육신에 깃들 곳이 없던 영혼의 힘이란 어떤 것인가?


마침내 바다와 하늘 모두를 완성하고 마지막으로 소나무를 그려 넣은 뒤, 흡족한 상태로 내가 그린 풍경을 바라보았다. 비록 처음 아말피를 찾았을 때의 순간 모두를 담아낸 것은 아니었지만, 내 헐거운 육신이 감지한 바다가 틀림없었다.


오늘에서야 조금 헐거워진 느낌이 드는 것은 바다가 온전히 제 빛깔을 띠었기 때문이다. 녹빛과 하늘빛, 거기에 푸른빛을 더해 칠한 바다가 남달리, 유독 맘에 드는 것은 바탕에 미리 흥건하게 바른 물기에 적절히 스며든 물감의 색다른 번짐 때문이기도 했다. 그때의 그 난폭한 여름 아침햇살도 저 부드러운 바닷물에 번져가지 않았던가?


나는 비로소 그때의 여행을 되새기며 젊지 않았던 내 이탈리아 여행을 마무리했다. 분명한 건 비록 세월이 흘러 기억 속의 모든 풍경이 잊힌다 해도 나는 여전히 아말피의 바다를 욕망할 것이란 점, 또한 그 욕망마저 내던져버리고 저 바닷가에 자유로이 다시 설 것이란 점이었다.


아말피 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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