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162화
여행지에서의 기록은 좀 남다르다. 일상의 기록과는 다른 탓도 있지만, 여행지에서의 특별한 느낌이 감동과 버무려지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많이 찾은 곳은 노르망디 해안에 있는 작은 마을 옹플뢰르였다. 친구나 가족이나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파리에 머무를 때마다 그곳을 찾아갔다. 나는 그곳에서 평안을 느꼈으며 휴식 속에 희망을 찾았다. 또한 좌절해선 안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세느 강이 마지막 물살을 뒤척이는 곳, 옹플뢰르(Honfleur). 바이킹의 언어 노르만어에서 비롯된 이 말은 ‘항구’를 뜻하는 hon과 ‘꽃’을 뜻하는 fleur가 결합된 지명으로 우리말로 치자면 옹플뢰르는 ‘꽃 항구’란 뜻이다.
아내는 이곳에 올 때마다 성녀 카타리나 성당을 찾았다. 어느 날인가 카타리나 성당에서 리지외의 소화 데레사에게 기도하기도 했다. 또 어느 때인가는 자신의 영세명과 같은 벨라뎃다 성녀에게 간구하기도 했다. 그녀는 어느 잡지엔가 이곳을 소개했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그녀는 지난여름 이곳의 한 모자가게에서 파나마모자를 사서 머리에 씌워주었다. 에콰도르 산 모자는 산뜻하게 머리를 장식했다. 그날 모자를 선물해 준 아내가 고마워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트루빌의 근사한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해물요리 전문식당이었다.
이 날의 요리는 후뤼 드 메흐(Fruits de Mer), ‘바다과일’이란 뜻의 해물요리, 석화(굴)와 조개류는 날 것이고, 게와 새우 등은 익힌 것이다. 굴에 레몬즙을 살짝 뿌려 루아르 강 지역에서 생산한 백포도주인 뮈스카데와 곁들이니 싱싱한 대서양 바다내음이 한껏 입맛을 돋군다.
식후에는 주인장이 사과를 증류하여 만든 40도짜리 칼바도스를 손님들께 제공했다. 덕분에 팁을 넉넉히 주긴 했지만, 기분은 마냥 상승한다. 칼바도스 한 모금에 커피 한 모금, 이미 노르망디에서 수확한 사과를 저며 구운 파이를 들었기에 독주와 지독한 커피 맛이 오히려 거나한 저녁식사의 개운한 뒷맛을 선사했다.
어느 여름날, 한 밤중에 우리는 대서양으로 뻗어 나간 고속도로 A13번을 질주한 끝에 3시간 만에 옹플뢰르에 도착했다. 시성(詩聖) 보들레르의 고향, 인상파의 선구적 화가 으젠 부댕이 태어난 곳, 역시 인상주의 음악을 개척한 작곡가 에릭 사티의 마을, 그곳이 바로 옹플뢰르다.
쿠르베와 모네 역시 이 마을을 좋아했다. 이날 우리 두 사람의 희망도 무르익어갔다. 나는 내 남은 삶의 부분에 대해 알 수 없었고 그녀 역시 모르는 채였다. 허나 그녀는 우리 두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만큼은 완고했다. 그래서 그녀는 카타리나 성당 제단 앞에서 기도하는지도 몰랐다. 애처로운 성모 마리아, 그녀는 노래하고 있었다. 아베 마리아!
오늘은 2008년 9월 14일 추석. 나는 다시 그녀의 손을 잡고 옹플뢰르로 향한다. 고속도로는 시원하게 뚫렸다. 첫 번째 휴게소를 들러 생수를 사 들고 다시 구릉의 길을 질주한다. 가끔 속도위반을 하기도 한다. 시속은 130킬로미터 전후를 오간다. 130은 프랑스의 고속도로 제한속도의 임계점이다. 그리고 이 길은 항상 과속단속 카메라가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톨케이트를 빠져나온 우리는 차 안에서 세느 강을 가로지른 노르망디 사장교를 바라본다. 날렵한 몸짓으로 르 아브르 쪽으로 뻗어나간 자태가 곱기만 하다. 사장교는 어느 것이나 다 아름답다. 서해대교나 노르망디 대교 역시 곡선을 최대한 살려 늘씬한 모습으로 뻗어나갔다. 자연은 모두 곡선으로 이루어졌지만, 거기에 더해 인간은 직선을 창조해냈다. 그런 까닭에 자연을 닮은 것은 모두 아름답다. 거기에 디자인과 첨단공법이 버무려지면 절경이 따로 없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구 항구를 산책한다. 그녀는 다시 내게 가을모자를 선물했다. 갈색계통의 그 어떤 옷에도 어울린다는 베이지, 올리브 색이 혼합된 컬러, 나 역시 색조와 형태, 따뜻한 질감까지도 맘에 들어 한참을 매만졌다. 모자 값을 치러야 하니 다시 한번 근사한 저녁을 들어야 하리라.
그녀는 역시 카타리나 성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녀는 기도하고 나는 여행수첩을 꺼내 들고 재빨리 제단을 스케치한다. 독특하게 목조로 지어진 이 교회는 다른 교회와는 달리 입구에 들어설 때마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나는 여느 교회들의 돌의 육중함에 이미 짓눌려 있었던 터였다. 그녀는 아직 기도를 마치지 않았다. 그녀는 무엇을 기도하였을까? 두 사람의 희망에 대해?
“만일 당신에게 엄청난 돈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 작정이요?” 나는 그녀에게 그렇게 물은 것 같다. 아내는 대답했다.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아직도 눈망울이 젖어있는 그녀를 이끌고 ‘옛 항구(Au Vieux Port)’란 이름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요트가 늘어선 구 항구 쪽으로 난 테라스가 인상적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똑 같이 <화가의 메뉴>를 시켰다. 이 집은 화가의 메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메뉴>도 있고 <작가의 메뉴>도 있었다. 해물전문요리 집이었다. 전식은 우리 두 사람 모두 한 접시 굴을 시키고, 본식으로는 아내는 생선요리, 나는 양갈비를 시켰다. 디저트는 사과파이와 아이스크림. 술은? 노르망디 산 사과주 시드르! 와인 대신 순도 높은 사과주스를 발효시켜 만든 시드르는 물 대신 마실 수 있는 음료로도 유명하다.
못 생긴 사과로 빚은 애플와인이지만, 차갑게 만들어 마시면 그 신선한 느낌만큼은 어느 화이트 와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흔히 독일산 애플와인을 즐겨 찾지만, 음식과 함께 하는 깔끔한 맛에 있어서는 노르망디 사과주인 시드르를 따라올 수가 없다.
훌륭한 저녁 식사였다. <시인의 메뉴>도 근사했을 것이다. 식사 후 잠시 차를 마시는 동안 건너편 풍경을 수첩에 담았다. 누가 저런 집에서 사는 걸까? 고독해 보였지만, 아름다운 집. 쓸쓸해 보였지만, 기억에 남을만한 건물. 그때 보름달이 휘영청 떠올랐다.
식사를 마치고 노을이 물드는 바닷길을 따라 인근의 투르빌로 향했다. 이곳을 찾을 때마다 바라본 바다였다. 오늘따라 색조가 다르게 느껴졌다. 보름이어서 그런지 느낌마저 달랐다. 오늘 밤은 만월일 것이니 석양의 색조도 저렇듯 붉은 것인가?
아름다움은 마을 도처에서 유혹하고 있었다. 그것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는 부자연스러움, 허나 싸하게 느껴지던 바다내음만큼은 기억할 것이었다. 휘영청 떠오른 달빛에 숨 가쁘게 거쳐온 꽃항구 마을 옹플뢰르가 아련히 떠올랐다.
이제는 일출보다는 일몰이 더 장대하게 느껴지는 나이려니 하는 생각에 젖어든다. 나이를 더한다는 것은 그만큼 더 원숙해진다는 의미일 테고, 일출보다는 일몰에 더 맘이 쏠리는 것이겠거니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기록한다.
탄생과 죽음은 서로 다르지 않다. 소멸하는 것으로부터 생명은 시작된다.
모든 생명은 소멸로써 기인한 것이다. 소멸 역시 생과 다름 아니다. 하여 세상의 모든 종교와 문학과 철학은 이 소멸과 생성의 이분법적 맞물림을 나름의 코드로 풀어온 것이다.
모든 소멸하는 것은 아름답다.
생성과 소멸! 그리고 부활! 이 주제는 내가 근 이십여 년을 매달린 주제이기도 했다. 어제는 헐리우드 영화에 심취했다. 이탈리아 고전에 빠져들 때가 아니다. 인간은 제각기 삶의 주제를 갖고 있다.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사생아 격인 헐리우드의 스타들에 심취한 것도 아니다. 나는 단지 그들이 표방하는 사회 건설의 극점이 어디쯤 일지를 상상해 본 것뿐이다. 나무는 소멸로써 생명을 갈구한다. 세계는 하나다. 내가 표현한 세계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달라진 것은 없다. 세상의 지배적 논리에 따를 필요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만의 세상을 꿈꿔왔다. 살바도르 달리의 추상에 체 게바라의 피,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이지만……. (여행수첩 속의 기록은 여기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