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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Jun 08. 2024

노르망디 대교에서

몽생미셸 가는 길 161화

[대문 사진] 세느 강을 마지막으로 가로지르는 노르망디 대교. V. 파코(Pacaut) 사진


길의 방향을 틀어 대서양 연안에 자리 잡은 꽃 항구 옹플뢰르(Honfleur)를 찾아 나선다. 알바트로스 해안의 단애마저 이제 발뒤꿈치의 껍질처럼 까끌까끌하면서 점차로 가물가물해진다.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만 되살아날 것이다. 바닷길을 따라 걸었던 아득함도, 고적함도 그러다 행복한 추억의 한 순간마저 끊어졌다 이어지는 흑백 필름처럼 사라졌다 되살아나고는 할 것이다.


바다에서 세느 강 쪽으로 방향을 튼다. 다리 하나가 가로 놓여있다. 노르망디 대교다.


세느 강을 가로지르는 마지막 다리인 노르망디 대교. 르 아브르와 옹플뢰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며칠 전 다리를 건넜다. 알바트로스 해안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파리에서 시작하는 A13 고속도로는 루앙(Rouen)을 지나면서 여러 갈래로 나뉜다. 그 가운데 르 아브르 방향으로 들어서면 고속도로가 끝나는 세느 강이 나타나고 강 이쪽저쪽을 연결하는 탕카흐빌(Tancarville) 다리가 나타난다.


탕카흐빌 대교는 1990년까지만 해도 세느 강 하구에서 제일 근사한 다리였다. 그 날렵한 모양에 1959년 처음 개통했을 때 철탑 높이가 123미터로 세계에서 제일 높은 철탑을 자랑하는 현수교(Pont suspendu à câble porteur) [1]였다.


아름다운 외모에 반해 르 아브르로 향할 때마다 탕카흐빌 대교를 건너곤 했다. 탕카흐빌 대교 홈페이지 화면에서 캡처.


하지만 교통량이 너무 늘어나자 1991년 1월 새로운 다리가 개통됐다. 사장교(Pont à haubans)[2]인 노르망디 대교, 이 날렵한 곡선 가도를 자랑하는 대교는 결국 세느 강 하구 풍경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파리 몽파르나스 타워(210미터)에 맞먹는 높이 214미터의 철탑이 돋보이는 노르망디 대교. 총 길이는 2,141미터에 달한다.


노르망디 대교는 파리 몽파르나스 타워(210미터)에 맞먹는 높이 214미터의 철탑이 돋보이는 참으로 멋진 다리다. 다리 한가운데 중앙 난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일품이다. 교량의 총 길이는 2,141미터에 달한다. 현재 프랑스에서 제일 긴 사장교인 미요(Millau) 다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미요 다리는 총 길이가 2,460미터로 철탑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343미터다.


2004년 겨울 미요 사장교(Pont de Millau)를 건너던 때의 차 안에서 찍은 어수선한 사진들.
하지만 미요 사장교는 달리는 차 안에서 찍은 사진처럼 결코 어수선하지 않다. 아베이홍(Aveyron) 관광청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


이제 저 다리를 건너야 한다. 칼바도스 지방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칼바도스의 보석과도 같은 마을이 바로 다리 건너편에 있기 때문이다. 조용한 어촌마을이 유럽인들이 제일 가보고 싶어 하는 마을로 손꼽히기까지는 ‘인상주의’라는 예술사조를 이해하지 않고는 납득 가지 않을 만큼 마을 전체가 마치 한 폭의 인상파 화가가 그린 풍경처럼 다가온다. 오래된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갤러리들은 그처럼 마을의 내력을 압축해서 일러주는 문패들과도 같다.


옹플뢰르(Honfleur) 구 항구(Le Vieux Port)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름 모를 화가, 사라 세흐장(Sarah Sergent) 사진.


차를 몰아 다리 쪽으로 접근하면서 과연 나는 내 인생에서 몇 번쯤 저 다리를 건넜을까 세어본다. 노르망디 대교 휴게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전망대를 향해 걸어가면서도 계속 손가락을 꼽아본다. 파리에 머물면서 지칠 때마다, 바다가 보고 싶을 때마다, 바닷가에서 신선한 해물이 먹고 싶을 때마다, 알바트로스 해안의 낭떠러지 절벽 희디흰 석회암 단애가 흐릿한 시야를 가득 채울 때마다 저 다리를 건넜으리라. 또한 친구들과 지인들이 찾아왔을 때마다 아니면 출장때문에라도 이른 아침 혹은 늦은 저녁에 저 다리를 건넜겠지 싶다.



다리 전망대에서 물끄러미 바다 쪽을 바라보며 오만가지 생각에 잠긴다. 세느 강 하구는 해가 한참 기울어진 탓에 마지막으로 쏟아내는 눈부신 빛으로 온통 갈 빛을 띠고 있다. 상대적으로 세느 강 쪽은 밝고 선명한 오후의 쾌청한 풍경이다. 저 눈부신 역광으로 마치 안개에 갇힌 듯 바다는 붉게 타오르는 노을에 점차 검푸른 빛으로 어두워져 가리라.



인생도 마치 저 붉게 퍼져가는 노을처럼 어느덧 사그라지는 어둠일지도 모른다. 환히 밝았다가도 갑자기 어둠이 몰려오리라. 여행의 감정의 변화도 하루 낮과 밤의 교차처럼 아침노을과 저녁노을의 이중의 변주를 닮은 것은 아닌지. 그토록 설레던 아침의 들뜸도 저녁때만 되면 차분해지는 것이 설렘과 차분함, 이 이중의 감정의 변화는 여행 중에 매일 되풀이된다.


처음 희미하던 노을이 점차 해가 기울면서 하늘을 붉게 물들이다가 보랏빛 색조로 바뀌어 검은빛 바다 한가운데로 가라앉아가는 것을 지켜보며 쓰잘데 없는 생각들 또한 켜켜이 쌓여만 간다.







[1] 현수교(懸垂橋) : 교각 위에 설치된 2개의 철탑 사이를 철선(체인)이 가로지르며 철선에 매달린 케이블들이 다리 상판을 들어 올리고 있는 교량. 인천 영종도 공항을 오갈 때마다 보는 <영종대교>가 대표적인 현수교라 할 수 있다.


[2] 사장교(斜張橋) : 철탑에 연결된 여러 개의 케이블에 의해 갑판이 들려 있는 교량 유형. <서해대교>가 대표적인 사장교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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