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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Jun 16. 2024

하룻밤 묵을 호텔이 없다

몽생미셸 가는 길 163화

[대문 사진] 으젠 부댕을 비롯하여 클로드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이 드나들었던 호텔 생 시메옹(Saint Simeon).


여름에 여행하면 묵을 호텔이 없다. 그곳이 옹플뢰르다. 아직 봄이 오기 전이니 이번에야말로 호텔을 쉽게 찾으리라 기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성격이 모난 탓인지, 아니면 인터넷 예약을 못 미더워서인지 호텔을 인터넷으로 예약하는데 영 서툴렀다. 여러 번 실패한 경험이 누적된 탓이었다.


섣달그믐 새 해를 맞이하려고 떠난 여행지 리용 힐튼 호텔에서의 황당함, 느닷없이 떠난 도빌 노르망디 호텔에서의 당혹스러움,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의 때 늦게 밀려든 쓸쓸함, 동유럽에서의 정처 없는 배회, 프로방스에서의 악몽 등 인터넷으로 호텔 예약하는 것이 영 서툴러 실패한 경험이 결국 고리타분한 습관을 고정시켜 놓고 말았다. 하여 되도록이면 겨울철에 여행하기로 작정했다는 것 말고도 호텔은 직접 가서 잡는다는 두 가지 원칙이 여행 스케줄 내내 따라다녔다.


몽생미셸을 향한 길은 그처럼 멀고도 고달프다. 숙박할 곳을 찾느라 허비하는 시간 또한 허투루 여길 수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쏠쏠한 재미는 단 한 차례만이라도 밤을 지새우고 싶은 호텔이 있고 어떡해서든지 그 호텔에서 밤을 보내리란 작심 때문이다. 인생에서 꼭 한번 자보고 싶은 호텔에서 머무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랴 싶기도 하지만 이왕이면 점찍어 둔 호텔에서 자는 것 또한 행복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루체른 고성호텔에서의 밤처럼 삐그덕 거리는 계단, 온통 나무장식으로 꾸며진 방, 거기에 더해 요란한 중세풍의 가구들과 소품들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도구들이다. 중세를 여행한다는 건 그래서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세계에 직접 발을 디민다는 것 이상의 의미이기에 항상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호텔 로비 한쪽 서가의 책꽂이에 꽂힌 책들 또한 양피지 필사본으로 보이고 세워져 있는 방패와 창은 정복왕 기욤의 시대 것이라 혼란스럽지만, 이 모든 것이 실상은 중세를 여행하는 나그네를 흥분시키는 요소이며 그로 인해 기쁨 또한 배가된다는 사실, 나는 그걸 늘 직감한다.


예를 들어 트루빌(Trouville)에 가면 그곳에서 작품 활동을 했던 소설가 귀스타프 플로베르의 이름을 딴 호텔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날 밤 틀림없이 플로베르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칼바도스(Calvados) 지방을 여행하면서 나는 그렇듯 에두아르 마네는 어디서 묵었을까? 모네는 어느 곳에서 밤새 그림을 완성했을까? 시인 보들레르가 정처 없이 떠돌다 돌아온 어머니의 집은 어떤 곳이었을까? 사티는 어느 집에서 그와 같이 아름다운 선율을 떠올렸을까? 마르셀 푸르스트는 과연 어느 카페에서 마신 차 한 잔을 기억하였던 것일까? 등등, 머릿속을 선회하는 온갖 괴상망측한 상상들이 떼 지어 날아다니는 꿈을 꼭 한 번 머물고 싶은 호텔에서 꿈꿀 수 있을 것 같은 망상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탓이다.


옹플뢰르에 도착하니 밤이 되었다. 겨울이라 상점들이나 식당들도 일찍 문을 닫았다. 구 항구의 레스토랑 불빛만이 쓸쓸히 허공을 유영하고 있었다.


겨울철이라 상점들마저 일찍 문을 닫고 인적마저 끊긴 거리가 더욱 휑하게 다가오는 가운데 한적한 옛 항구를 밝히는 불빛만이 허공에 불 타오른다.


가보고 싶은 호텔, 잠을 이루고 싶은 호텔 <매종 드 레아(Maison de Léa)>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사전 예약이 꽉 차 있단다. 서둘렀어도 묵을 수 없는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인터넷 예약이 이토록 중요한 것이었다면 도착 전날이라도 숙박한 호텔 측에 부탁해서 다음 호텔을 예약해 두었어야 마땅했으리라 다시 한번 게으름을 채근한다.


카타리나 성당 앞에 위치한 16세기 풍의 건물로 된 호텔 <매종 드 레아(Maison de Léa)> 는 내 인생에서 단 한 차례도 묵어본 적이 없는 호텔로 기록되고 말았다.


쓸쓸히 주차해 놓은 차의 시동을 다시 걸고 어디로 가나 망설인다. 르 아브르의 메르뀌르 호텔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사정이라면 여행은 이쯤에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잘 안 풀릴 때가 있다. 그땐 기다리든지, 다른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 르 아브르로 되돌아가는 길에 떠오른 추억 한 줌.


그땐 여름이었다. 한 밤중에 겨우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자지 않고 나의 밤늦은 귀가를 기다리던 아내가 애처로워 그녀를 채근하듯 데리고 나서 바닷가로 향했다. 그곳이 옹플뢰르였다.


밤새 운전하여 달려왔던 탓으로 새벽 5시쯤 옹플뢰르에 도착했다. 여름철이라 동이 터오고 있었다. 옹플뢰르 몽 졸리(Mont Joli) 언덕으로 올라가서 몰려오는 잠을 못 이겨 차 안에서 두 사람은 그만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시간이 얼만큼 흘렀던 탓일까? 차창밖으로 왁자지껄한 소리에 잠을 깨 문을 열고 나가보니 은총의 성모 마리아 성당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누군가의 결혼식인 모양이었다. 그 광경을 한참 지켜보다가 문득 마을 쪽을 내려다보니 거기 황홀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옹플뢰르였다! 그게 바로 옹플뢰르의 참모습이었다.


몽 졸리(Mont Joli)에서의 여름날을 되살려 줄 기억 속의 사진은 안타깝게도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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