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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Jun 21. 2024

역사와 현실의 중간

몽생미셸 가는 길 164화

[대문 사진] 시청 앞 종려나무


언젠가부터 시청사 앞 광장에 종려나무 두 그루가 화분에서 자라고 있다. 이는 지중해 도시 깐느나 니스를 염두에 둔 행정은 아닐까 의심스럽다. 베르사유 궁전의 오랑쥬리 정원처럼 반갑기보다는 생뚱맞은 느낌이 먼저 고개를 내민다.


베르사유 오랑쥬리 정원은 프랑스 역사상 유일하게 왕비를 사랑했던 국왕 루이 16세가 지중해 도시들을 찾아가기 어려운 왕비를 위해 온실에서 키운 오렌지나무를 화분으로 옮겨 꾸민 정원이다.


이와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21세기 오늘날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칼바도스 도(道)에 속한 옹플뢰르 시당국은 대서양 연안에 어울릴 만한 관상수를 마을의 이벤트로 삼을 일을 심각하게 고민할 수는 없었을까? 보면 볼수록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대목이다.


2024년 2월 모레면 구정이다. 낯선 타지에서 설을 쇠는 처량한 신세를 탓하기라도 하듯 연 사흘 계속해서 비만 내리고 있다. 밤새도록 내리는 겨울비는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듯한 처절한 분위기까지 동반한다.


돌아가지 못하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은 고향이 아니라고 우기지만, 그건 변명이나 체념에 불과한 들켜버린 속내와도 같다.


돌아가고 싶은 게 고향이다. 고향에서 보내는 구정 설만이 아니라 고향의 하늘이나 공기나 대지 그 모든 것이 그리운 것은 꼭 이방인의 설움 탓만은 아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지닌 회귀본능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고향은 얼마나 푸근한가. 또 얼마나 따뜻한 곳인가.


몽생미셸을 향한 이 끈질기고도 험난한 여정을 이어가기 위해선 반드시 옹플뢰르를 거쳐가야만 한다. 아무리 천 년 전 역사라 하더라도 지금 내가 거쳐가야 할 지방과 마을들을 도외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현재는 과거가 있기에 가능한 예기다. 거꾸로 된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현재 없이도 미래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메를리 퐁티가 한 말까지 꺼내들 필요는 없다. 20세기를 거쳐 21세기를 살고 있는 인류마저도 ‘국가주의’이자 동시에 ‘민족주의’라는 내셔널리즘의 변종에 매몰되어 가는 것이 안타까울 뿐, 그들이 어떻게 살고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다만, 세계 시민으로서 과연 사람답게 살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이 끈질기고도 척박한 여행을 지탱해 주는 유일한 힘이라면 힘이라고 자위할 뿐이다.


나는 행복했다, 프랑스에서! 이곳은 모든 이념의 분화구 같은 곳이다. 실천되지 않고 있는 이념이긴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보다 이 나라의 국가 이념만큼은 대단하다. 대혁명 이후의 자유 평등 박애, 박애를 유대로 치환해도 무리는 없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자국인 이방인 구별 없이 자유 평등 박애를 구현해 가며 살아가는 나라가 과연 지구상에서 얼마나 될까?


역사화된 사건에 매몰된 이들은 늘 ‘이념’을 앞세운다. 그림을 그릴 줄 모르면서 그림을 이야기하는 이들은 서방 세계를 모방하고자 혈안이 된 일본에서 급조된 ‘예술사조’란 용어를 마냥 꺼내든다. 작가는 모름지기 정치에 무관심한 듯하지만 가장 정치적이고, 예술가 또한 경제를 모른 척하지만 가장 ‘상업적’인 부류에 속한다. 그들 역시 늘 생존의 문제에 직결된 바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여러모로 애썼던 이들이었음은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학인이나 예술가가 정치가보다 한 차원 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이라는 점은 적어도 그들만큼은 먹고살기 위해서 이합집산 하지 않으며, 자신의 이권을 위해서 적어도 작가의 양심을 판 일조차 드물다는 사실에 있다.


특히 시인은 인류 역사상 자신의 양심을 판 적이 아주 드문 부류에 속한다. 시인들은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듯이 그저 자신이 목표로 한 인간 세상의 깨달음을 얻고자 부단히 펜을 갈아왔다.


‘시인’은 역사가 미천한 국가에서는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게 현실이다. 하지만 부강한 나라일수록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왜냐? 시인은 정직한 눈으로 바라본 세상만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 경구로 삼을 만한 아포리즘을 시구로 풀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묘비명의 경구로까지 삼을 만한 아포리즘은 ‘시(詩)’밖에는 다른 것이 없다. 그게 내 생각을 기울게 만든 문학의 풍향계다.


어느 나라든, 어느 시대든 시인은 민중을 배반한 적이 없고, 인민 앞에 진솔했으며, 동료 시민들에게는 더 없는 친구였다. 시인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자신의 신념을 돌이킨 적이 없고 형장의 이슬이 될지언정 구질구질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만일 그런 이가 있다면 그건 시인이 아니다. 우리의 소월과 윤동주가 그러했으며, 이상이 그러했고, 육사가 그런 시인이었으며, 정지용이나 백석 또한 그러했다.


옹플뢰르는 ‘인상주의’ 마을이기전에 ‘시인’의 마을이었다. 시성(詩聖)이라 일컫는 샤를 보들레르의 어머니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보들레르 역시 이곳 옹플뢰르를 좋아했다. 그건 보들레르의 시구를 현수막으로 삼은 옹플뢰르 관광 안내 사무소 유리벽에 적혀 있는 문구만 봐도 알 수 있다.


옹플뢰르 관광안내사무소 유리벽에는 샤를 보들레르의 시구가 적혀 있다. “옹플뢰르로 이사하는 것이야말로 늘 제가 품고 있던 가장 값진 꿈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잘츠카머쿳을 가보면 알 수 있다. 장크트 길겐(Saint Gilgen)이란 마을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하늘이 재능을 선물했다는 작곡가이자 연주가였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어머니가 태어난 곳이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그곳에서 촬영했다. 음악가의 모친 고향이 뭘 대수이랴? 대수이어야만 한다!


샤를 보들레르의 모친의 고향 옹플뢰르는 장크트 길겐처럼 유럽인들이 제일 여행하고 싶은 마을이다. 프랑스 관광청에서 부여한 꽃송이도 세 개나 된다. 그런 긁어 부스럼밖에 남지 않을 이야기보다는 더 속 깊은 이야기를 하자면, 모친의 고향은 어머니 품처럼 일단 푸근하다.


시인 샤를 보들레르에게 있어서 옹플뢰르는 더없어 따뜻하고 푸근한 곳이었다. 마찬가지로 모차르트에게도 모친의 고향인 장크트 길겐은 늘 따뜻하고 푸근한 곳이었다. 여행해 보면 이런 인상에 쉽게 몰입되어 간다.


옹플뢰르하면 마치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옛 항구에 함박눈이 한없이 내리는 풍경처럼 인상주의 작곡가 에릭 사티의 경쾌한 피아노 건반음이 생각나지만, 모차르트가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는 장크트 길겐에서 시작하는 볼프강 호수의 검푸른 깊이로 가라앉아가다가 어느 순간 불현듯 알프스의 산그림자 높이로 솟구치는 강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흠씬 젖어들게 만든다. 나는 이 두 작곡가의 피아노 소나타를 들을 때마다 그런 느낌에 젖어든다. 내가 여행한 장크트 길겐과 옹플뢰르는 그렇게 대비된다.



옹플뢰르에 올 때마다 진정 ‘아름답다’란 생각이 든다. 아름답다란 말의 뜻은 과연 뭘까? 실용적이고 편리한 도시를 우리가 아름답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아니면 건축의 전체주의에 사로잡혀 철근 콘크리트만으로 처바른 신도시를 아름답다고 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시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아름답다’란 말이다. 그들은 더 적확한 용어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修辭)는 꼭 시인들만의 전매특허는 아니다. 그러나 시인들은 적재적소에 적합한 어휘를 일일이 찾아내 시를 짓는다. 그래서 시인 가운데 어느 누구도 함부로 시를 짓지 않는 것일 게다. 시인은 ‘시를 짓는다’하지 ‘시를 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종교인이라 해서 시인을 폄하하면 안 된다. 대우그룹 총수였던 김우중 회장도 시인만큼은 극진히 모셨다. 그게 도올에게까지 손이 닿아서 망정이지.



옹플뢰르는 모든 게 시적이다. 풍겨오는 테라핀 냄새도 참으로 인상적이다. 풍경은 말할 것도 없다.



2023년 바깥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어느 상점의 유리창 앞에서 내려다본 옹플뢰르의 옛 항구 풍경.


2024년 너무도 힘든 시기에 옹플뢰르를 다시 찾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기잡이 배들이 떠났다 돌아오는 항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추억의 먼바다로 가라앉아버린 이 마을을 기억의 힘을 빌려 재구성할 용기조차 나지 않는다.


마을을 처음 찾아온 것이 어느덧 20년도 더 되었다. 기억이 모두 소진되어 버린 탓인가? 이제는 누군가 내 소맷자락을 당길 때까지 멀리 불빛을 쏘아 올릴 등대만 멀건이 바라보고 있을 참이다. 아뿔싸! 내 등뒤 너머로 해가 기우는지 사위가 시나브로 어둑해 지고  있다.


등 뒤로 해가 진다.
먼바다로부터 고깃배가 들어온다.
둑을 걸으며 나 또한 어딘가로 숨어 들어가야 하리라.


해가 진다. 사물이 숨어들 때다. 시간의 옷을 벗고 나 역시 어딘가로 숨어 들어가야만 할 때다. 이제 공간의 아늑함에 취해 휴식을 취할 때가 된 것이리라. 하지만 아직도 서성일 거리가 남아있다.


좀 더 부둣가에서 멀리로 걸어갈 참이다.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어둠이 신경의 날카로운 깃들마저 차분히 접어 놓을 때까지 둑길을 걸어가면 마음만큼은 피로하지 않을 것도 같다. 여행 중에 과한 상상은 금물이다. 바람에 사납게 솟구친 생각의 머리칼을 차분히 쓸어 넘길 수만 있다면, 이 밤 역시 더없이 평안할 수도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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