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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Jun 22. 2024

성당 앞 광장에 마을장이 서다

몽생미셸 가는 길 165화

[대문 사진] 카타리나 성당


옹플뢰르의 중심은 카타리나 성당이다. 성당은 도심에서 제일 높은 곳을 자랑한다. 성당 주변으로 들어찬 목조가옥들은 꼴롱바쥬 양식으로 지은 노르망디 지방, 그 가운데에서도 칼바도스 지역의 아름다운 목조주택의 전형을 보여준다.


성당 앞 광장 돌길을 걸어가노라면 마치 집들이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심지어는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언어들이 끊임없이 귓바퀴에서 채근대는 시달림까지 겪는다.


나는 나무집들의 언어 생김새를 알고 있다. 어느 지방에 가나 그 지방만의 꼴롱바쥬 집들이 있는데, 이 집들은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한 것이 아니어서 나무 냄새가 난다. 나무 특유의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나는 그걸 집과의 대화라 생각한다. 그런 집에서 하룻밤 보낼 때면 나뭇결을 만져보며 수령은 얼마나 되었을까? 목수는 어디서 채벌하여 나무를 그렇게 대패질로 곱게 다듬었을까? 또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집 짓는데 사용했을까? 어떻게 이렇게 부드러운 나무만을 골랐을까? 상상해 본다.


우리네 기와집에서도 그런 냄새가 난다. 손때 묻어 반질반질한 툇마루나 서까래들을 손으로 쓰다듬어본 사람이면 알 수 있다. 나무가 얼마나 부드러운 건축 재료인지를.


옹플뢰르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언덕 오르막길에 자리 잡은 카타리나 성당(Église Sainte Catherine) 역시 나무로 지어졌다. 우리네는 상수리나무, 도토리나무, 떡갈나무 등 같은 과, 속이라 하더라도 나눠 부르는데 이들은 셴느(Chêne)라 통칭한다. 이른바 ‘참나무’라 불리는 수종을 가리킨다. 결국 참나무란 용어는 참나뭇과에 속한 모든 수종을 아우르는 용어라 할 수 있다. 우리네 참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참 재밌다.


“참나무는 어느 한 종(種)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참나뭇과 참나무속에 속하는 여러 수종(樹種)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쓰임새가 많아 유용한 나무라는 뜻이며, 이 속(屬)에 속하는 나무는 모두 도토리라고 불리는 견과(堅果)를 생산하므로 ‘도토리나무’라고도 불린다.

(…)

나무껍질에 타닌 함량이 많으므로 바닷가에서는 어망을 물들이는 데 사용한다. 재목은 매우 단단하여 쓰이는 곳이 많으며, 특히 술(와인) 통을 만드는 재료로 유명하다. 견과는 채취하여 도토리묵을 만들어 먹는다.


떡갈나무의 잎은 크고 두꺼우며 향기가 있어 농촌에서는 떡을 찔 때 사용하여 왔으나, 일본에서는 떡을 싸는 데 사용하고 있다. 굴참나무에서는 코르크를 채취하는데, 특히 난대지역에서는 코르크를 생산하는 경제자원으로써 지중해산 코르크참나무를 재배한다.”[1]


산림청 소속 단양국유림관리소에 근무하는 임업시험관이라 짐작되는 어느 공무원분께서는 우리네 참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구성지게 풀어간다.


“참나무는 어느 한 종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도토리가 달리는 ‘참나무 무리’의 여러 종류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집합적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겨울에 낙엽이 지며 잎의 모양이 밤나무 잎처럼 날렵하고 길쭉하게 생긴 상수리나무와 둥그스름하고 비교적 큰 잎을 가진 신갈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및 떡갈나무의 6종을 ‘참나무’라고 간단히 말한다.


그러나 이 녀석들은 정조관념이 별로 없어 종 사이에 교배가 잘 되므로 잡종이 많아서 더더욱 혼란스럽다.


6종의 참나무 종류는 엄밀하게 땅이 나누어진 것은 아니다. 대체로 구획을 정해두고 살아간다. 그리 높지 않은 야산이나 동네 뒷산에는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가 터를 잡았고, 경쟁자는 많아도 땅 힘 좋고 습기 많은 계곡에는 졸참나무와 갈참나무가 버티고 있다.


산을 오르다가 잠깐 고개 바람에 땀을 식히는 산마루나 야호를 외치는 정상의 능선에서 만나는 참나무는 거의가 신갈나무이다. 나무질은 단단하면서 질기고 쉽게 썩지도 않으므로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선조들이 가장 많이 쓰던 나무의 하나였다.


한반도에 처음 정착하기 시작한 우리의 선조들은 참나무로 지은 움막집에서 생활을 영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점말 동굴을 비롯한 신, 구석기시대 유적에서 많은 참나무가 출토되고 있다.


건축재로써 해인사대장경판전의 기둥, 선박재로서는 완도 어두리 화물 운반선의 외판, 관재로서는 의창 다호리 가야고분 및 낙랑고분 관재의 일부가 모두 참나무 종류였다. 그래서 참나무란 이름은 나무들 중에는 가장 재질이 좋고 진짜 나무란 뜻의 ‘참’ 나무다.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우리의 정사 기록들을 보면 참나무의 열매인 도토리는 배고픔을 달래주는 구황식물로서 임금이 직접 시식을 할 정도로 귀중하게 여겼다. 흉년이 들수록 도토리가 더 많이 달리는 나무의 특성이 바로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참나무 종류는 꽃이 피어 서로 교배가 되는 시기가 봄 가뭄이 오기 쉬운 5월쯤이다. 햇빛이 쨍쨍한 맑은 날이 계속되면 꽃가루가 쉬이 날아다녀 수정이 잘 되고 가을에 많은 열매가 달리는 ‘도토리 풍년’이 온다.


반대로 비가 자주 오면 농사는 풍년이 들어도 아 녀석들의 꽃가루는 암꽃을 영 찾아갈 수가 없어서 도토리는 흉년일 수밖에 없다. 자연의 조화 치고는 참 기막히게 합리적이다.”[2]


다시 카타리나 성당 이야기로 돌아가면, 성당은 이 지방 제일의 수종을 자랑하는 참나무를 사용하여 지은 교회 건축물로 백년전쟁 후인 15세기 후반에 처음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때 지어진 부분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지금의 형태는 16세기의 것으로 그나마도 남아있는 부분이 거의 없어 대부분 20세기 초에 재건한 형태라 보는 것이 합당하다.


성당이 나무로 지어진 탓에 화재 위험성도 심각하다. 불을 무서워하는 주민들로서는 성당에 건물을 바짝 붙여지을 생각을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 연유로 성당 가까이엔 건물이 들어서질 않고 교회로부터 멀찍이 물러나 있는 형국이다.


그 특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꼴롱바쥬 건물들이 성당을 빙 둘러싸고 있는 모습은 특이하다 못해 생경하기까지 하지만, 건물들이 성당을 포근히 감싼 형태는 정감 어린 풍경으로 다가온다.


교회 종탑 또한 본당과 분리되어 서쪽 파사드 정면입구로부터 멀찌감치 물러나 있다. 종탑의 무게를 교회 본체가 지탱할 수 없어서 강구한 어쩔 수 없는 방편이었을 것이다.


화재의 위험성으로 말미암아 종탑과 함께 건물들마저 본당에서 멀찌감치 물러났다.


노르망디 인들은 선조가 바이킹들이었기에 배는 잘 만들 수 있었지만 돌을 쌓아 건물을 짓는 데는 문외한이었다. 성당 본체나 종탑이 모두 나무로 지어졌음은 그런 사정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준다.


나무도 오직 참나무만 사용했다. 곧게 자란 나무 둥치만 사용한 게 아니라 제멋대로 자란 자연상태의 나무들을 최대한 사용하여 지은 관계로 어디서나 휘어지거나 비뚤어진 서까래와 대들보, 나무기둥의 곡선과 마주친다.



자연은 모두 곡선이지만, 인간은 굳이 직선을 만들어 냈다.



바이킹의 후예들은 심지어 교회 지붕에 배를 엎어 놓기까지 했다. 지붕을 보면 두 척의 배를 엎어 놓은 형국이다. 성당 내부에서 올려다봐도 영락없이 배 두 척이 천장에 엎어진 모양새다.


배가 세 척이 아니고 두 척이냐 하면, 이 천주교회는 바실리카 양식과는 하등 관계가 없고, 한마디로 이제까지 봐왔던 건축 양식과는 사뭇 다른 옹플뢰르만의 건축 방식을 따랐기 때문이다. 그들이 뭘 알고 지은 건축물이 아니라 영성만으로 지은 교회이기에 옹플뢰르 카타리나 성당이야말로 다른 어느 교회들보다도 더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성당 종탑은 무게를 지탱하기가 어려워 본당 몸체와 분리되었다.


성당 입구 또한 특이한 방식으로 지어졌으며(왼쪽 사진) 동쪽 교회 후진(오른쪽 사진)의 마감 또한 이들만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십자가 형태의 내진도 찾아볼 수가 없다. 3개의 회랑이 있어야 할 중앙회중석은 단 2개로 마감된 탓이다. 그래서 천장을 이루고 있는 엎어진 배가 두 척뿐이다.


천장은 배 두 척이 엎어진 형태로 되어있다. 바이킹의 배 만드는 기술이 건축술로 둔갑한 예라 짐작되는 대목이다.


성당에서는 매일 미사가 집전된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성당은 결혼식장으로 화려하게 변신한다. 꽤 많은 축하객들이 모이고 그들은 방금 혼배성사를 치른 뒤, 성당 앞 광장으로 나온 신혼부부에게 쌀과 형형색색의 종이가루들을 뿌려댄다.


이건 언제 어디서 비롯된 전통일까? 하객들과 일일이 사진을 찍는 신혼부부는 언제 봐도 예쁘기만 하다. 가끔 지하철에서 만나는 어린 중, 고생들의 여드름 자욱이 예쁜 것처럼 나이가 들었거나 젊었거나 신혼부부들은 언제나 예쁘게 생겼다.


결혼식이 토요일 오전이 아니고 오후인 것은 토요일 오전엔 장이 서기 때문이다. 성당 앞마당은 마을장터로 변한다. 옹플뢰르 시당국이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100프로 신선하고 품질이 뛰어난 자연산 유기농 농수산물이 마을장터를 통해 제공된다는 점이다. 그걸 믿어야 할지 말지는 마을장을 구경하면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성당 앞 광장은 토요일 오전만 되면 마을장터로 변한다.


마을 주민들의 믿음은 견고하다 못해 공고하다. 교회 건축물이 100프로 자연산이듯이 그들의 텃밭에서 재배한 채소와 과수원에서 수확한 과일들과 농장에서 직접 기른 가축들에게서 얻은 고기와 바다에서 어획한 수산물들은 온전히 자연산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생산자나 소비자의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이거야말로 상생의 절대불변의 법칙에 따른 믿음이어야 한다고 형용하고 싶다. 제품에 대한 신뢰가 그토록 친화적일 수 있는 이유가 하필이면 하이퍼 마켓인 카르푸(Carrefour)에 늘 속기만 한 나로서는 경이로운 일에 가깝지만 말이다.


이러한 재료에 대한 신뢰는 요리에 대한 믿음을 낳는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옹플뢰르 마을은 어느 식당을 가도 음식이 맛있다. 재료가 신선하고 좋기 때문일 것이다. 칼바도스 지방 특유의 향토음식은 그래서 이 지역 토속 음식에 대한 레시피를 전 세계에 알리는 원동력이 되었다.


옹플뢰르 옛 항구에 자리잡은 레스토랑 <르 비유 옹플뢰르(Le Vieux Honfleur)>가 자랑하는 요리들.







[1] 참나무에 관한 두산백과의 사전적 정의.


[2] 원문에 오자가 많아 바로 잡았다. 본문 내용은 전혀 손대지 않았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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