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168화
[대문 사진] 파리의 왕비의 산책로(Cours la Reine)에 세워진 탐험가 사무엘 드 샹플랭
옹플뢰르 구항에는 예로부터 항구를 드나들던 상선들에게 세금을 거둬들이던 세관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는 옹플뢰르를 방어하던 성벽이었는데, 성벽을 개조하여 세관 건물로 개조한 것이다.
건물 오른편엔 아케이드가 나 있어 도보 여행객들은 건물을 관통하는 아케이드를 지나 도심을 동서로 오간다. 바로 이 아케이드 벽에 여행객들에겐 낯선 조각상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조각상은 다름 아닌 1603년 옹플뢰르를 출발하여 선구적 탐험가였던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가 처음 발견한 신대륙 북아메리카에 도착하여 1608년 마침내 퀘벡을 건설한 사무엘 드 샹플랭(Samuel de Champlain)을 기리기 위한 청동 조각상과 명판이다.
사무엘 드 샹플랭의 추모 돌판은 명판에 기록된 바와 같이 1899년 9월 3일에 처음 부착되었다. 옹플뢰르 구항 항만회사가 사무엘 드 샹플랭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제작하여 설치한 것이다. 명판에는 그렇듯 샹플랭의 업적이 간명하지만 뜻깊게 새겨져 있다.
1603년 샹플랭의 지휘아래 선원들과 탐사대원들을 태운 배는 옹플뢰르 항구를 출발하여 긴 항해 끝에 이른바 이들이 ‘새로운 프랑스(Nouvelle France)’라 일컫는 미지의 신대륙에 도착한다.
탐사를 끝낸 샹플랭은 1607년에 옹플뢰르로 되돌아온다. 1608년 샹플랭은 2차 탐험에 나서는데, 이 해에 그는 오늘날 캐나다의 퀘벡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샹플랭은 모두 8차례 신대륙을 탐험하였다. 그 같은 사실을 일러주듯 명판 하단부에 샹플랭이 옹플뢰르 항구를 출발한 날짜마저 등장한다. 아직도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는 캐나다 퀘벡과 몬트리올에 사는 시민들로서는 이 샹플랭의 청동 조각상과 기념비가 마냥 반가울 수밖에 없다.
샹플랭의 조각상은 알퐁스 떼루아(Alphonse Terroir)가 1932년에 진수된 대서양 횡단 여객선 샹플랭(Champlain)의 살롱 도뇌르(Salon d'honneur)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청동 흉상이다.
그러나 이 여객선은 1940년 라 호셸(La Rochelle) 해안에서 침몰했고, 흉상은 1970년대에 잠수부들에 의해 인양되어 몬트리올 후원자 다니엘 맥도널드 스튜어트가 옹플뢰르에 기증한 것이다. 흉상은 1983년 9월 17일 세관건물(Lieutenance) 서쪽 벽에 설치되었다.
해가 점점 기울어져만 가는 햇살 환한 오후 구항에 자리한 세관 건물을 향해 길을 나선다. 옹플뢰르를 빛낸 탐험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의 조각상과 명판이 붙어있는 벽 앞에 서서 청동 조각상과 명판을 찬찬히 뜯어본다.
겨울철이라 그런 나를 방해하는 사람조차 없다. 여름철이었으면 나 말고도 여러 명이 달라붙어 사진을 찍는다, 명판을 훑어본다 난리법석을 떨었을 것이다. 겨울철은 여행하기에 썩 좋은 날씨는 아니지만 역설적이게도 파리떼처럼 달려드는 단체관광객이 없어 홀로 여행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절기는 없다.
청동 조각은 이미 여러 번 마주한 조각상이지만 바라볼 때마다 낯설기만 하다. ‘탐험가’란 수식어도 그렇고 1603년이란 연도도 마냥 낯설다.
이방인의 눈에 낯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렇다면 조각가는 샹플랭의 얼굴을 어떻게 추론했을까? 저 얼굴이 과연 맞는 것일까?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배우 얼굴도 조각상과 비슷한 용모이긴 한데 제작진은 그 많은 인물가운데 샹플랭의 역할을 맡은 배우를 어떤 기준으로 골랐을까? 사진기술조차 발명되지 않은 저 아득한 중세 때의 인물을? 이 단순한 의문에 샹플랭은 자신이 제작한 지도를 통해 답을 준다.
위 지도는 1612년에 탐험에 나선 프랑스 해군 장교였던 샹플랭이 앙리 4세 국왕을 위해 제작한 지도다. <새로운 프랑스 지도의 세부 사항(1612)>이란 제목이 붙어있다. 주목되는 바는 나침반 중앙에 있는 얼굴이 불쑥 솟아올라 있다는 점이다. 이로 말미암아 대략이나마 샹플랭의 용모를 짐작하기가 그리 어렵지가 않다.
그렇다면 대체 샹플랭은 어떤 인물이고 1608년 캐나다의 퀘벡을 건설했다는 이야기는 뭘 이야기하는 것일까?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400년 전 프랑스 마지막 왕조인 부르봉 왕조를 활짝 열어젖힌 앙리 4세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492년 크리스토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지 1백 년이 지난 시점, 서구 열강들 틈에 끼어 있던 프랑스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