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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Oct 24. 2024

트루빌에도 멋진 미술관이 있다

몽생미셸 가는 길 185화

[대문 사진] 빌라 몬테벨로 미술관


프랑스는 어딜 가도 웬만하면 도시에 미술관이 있다. 이 어촌 해안 마을에도 어김없이 미술관이 들어섰다. 이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애착은 거의 집착에 가깝다. 풍요롭기 때문일 것이다. 자국의 예술가들에 대한 뒤늦은 배려, 지역 문화를 살리기 위한 안간힘, 상투적이긴 하지만 지역민들을 위한 문화 소양 교육에 입각한 행정의 결과만이라곤 보기 어렵다.


세스 노터봄이 정의한 것처럼 변하지 않는 것은 책, 성당, 박물관이라 했는데, 어딜 가도 박물관(이들은 박물관이든 미술관이든 오직 한 단어 Musée라 표기한다)이 있으니 여행자는 이곳을 자연 들르게 된다.


오늘도 길을 나선다. 트루빌에서 활동했던 예술가의 이름을 따서 거리명을 지은 사비냑 산책로를 거닌다. 왼편으로는 아침 바다가 눈부시게 펼쳐져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 그래서 대서양이 좋다. 그래서 무언가를 기대하게 된다. 어떤 작은 사건이나 변화의 조짐에도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모래 알갱이가 신발 속에 들어와서 아삭아삭 밟힌다. 미술관을 향하다 보니 뱃사람용 장화를 신을 수는 없다. 신발 쿠션조차 오랜만에 모래밭에서 무용지물이 된다. 허공을 나는 아침 갈매기는 인간보다 더 멀리 내다본다. 날개 짓은 떨어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기보다는 더 높이 날고자 한 원시적 욕망에서의 발현이다.


산책로에서 고개를 돌리면 벨 에포크 시대에 지어진 빌라들이 해안을 따라 죽 늘어선 모습이 한가득 시야에 잡힌다. 유리창들은 모두 바다를 바라본 채 건물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불투명한 색조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침에는 커튼을 쳐 놓은 유리창도 보이질 않는다. 커튼은 오후의 따가운 햇빛을 피하기 위한 용도일 뿐이다.


유리창에 비친 하늘과 바다가 하루 종일 너울거리는 해안의 집들은 모두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의 집처럼 소음에 민감하다. 창밖에서 무슨 소리라도 들리면 그때서야 창문이 열리면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유리창마다 밖을 내다보는 얼굴들이 나타난다. 주인들은 모두 나이가 지긋하다. 부유했던 지난날의 저간 사정이 백발에서 묻어난다. 건물은 저택을 방불케 하지만 실상 건물에 들어앉아 사는 사람은 한 가구나 남녀 가운데 한 사람뿐일 지도 모른다. 그마저 세상을 뜨면 건물은 또 누군가에게 양도된다. 그 역시 한 가구의 구성원이거나 홀로 된 남자이거나 여자일 게 분명하다.


바닷가라 창문을 장식하는 화분은 보이질 않는다. 그 흔한 제라늄이나 선인장도 모습을 감췄다. 화초는 도시 전체를 장식하고 있고 굳이 모래바람 불어오는 창틀에까지 놔둘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고운 입자의 모래는 유리창을 긁어댄다. 그러다가 창문 밑에 차곡차곡 먼지처럼 쌓인다. 손으로 쓸어내면 한 줌씩 묻어나는 모래는 개펄의 회갈색마저 띠고 있다.


바게트 빵조각을 물고 달아나는 비둘기 떼들이 날아오르는 정오를 향한 시각, 또 한 바탕 바람이 바다로부터 불어닥친다. 눈물에 모래 알갱이들이 서걱댄다. 모자를 눌러쓰고 바람 불어오는 쪽을 피해 등을 돌린다. 자연의 광기에 수그린 고개는 산책로 아스팔트길만 쳐다본다. 싸늘하다 못해 시린 바람에게서조차 결마다 만물의 태어남을 부추기는 따스함이 묻어있다. 봄이다! 어느 시인이 그토록 바라던 봄이 시작되었다.


미술관은 제라르 르클레흐 대로 62번지에 자리 잡았다. 바다 쪽에서 바라보면 언덕바지에 걸터앉은 건물이다. 이름은 빌라 몬테벨로(Villa Montebello), 빌라는 ‘대저택’을 가리키고 몬테는 ‘언덕’, 벨로는 ‘아름다운’이란 뜻이니 미술관 이름은 아름다운 ‘언덕에 자리 잡은 대저택’을 가리킨다. 이름처럼 미술관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흠잡을 데 없는 고운 자태로 서있다. 모네의 그림처럼 양산을 쓰고 언덕에서 내려오는 여인과도 같은 모습이다. 벨 에포크 시대의 건물답게 석회암과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지은 관계로 수려한 미관을 자랑하는 것은 덤이다. 돈 많은 금융가의 대저택다운 품위마저 갖추려 노력한 흔적이 여기저기서 물씬 풍겨 나온다. 후작이 소유한 건물이긴 하지만, 그 또한 전쟁을 겪었고 난민 수용소, 독일군 포로수용소, 학교를 거쳐 미술관으로 거듭났다.


후작의 저택이 미술관이 되었다.


미술관에서 만난 샤를 모쟁


19세기 화가 샤를 모쟁(Charles Mozin)은 자신의 그림들을 통하여 트루빌을 처음으로 파리에서 활동하는 화가들에게 소개한 인물로 알려졌다. 풍경화가이자 해양화가였던 샤를 모쟁은 트루빌을 발견하고 이 작은 어촌 마을의 정경을 화폭에 담아 파리의 갤러리에서 여러 차례 전시함으로써 ‘빛을 찾아 헤매는 화가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샤를 모쟁 자신 또한 이에 만족하지 않고 아예 트루빌에 눌러앉았다. 파리 생활을 접고 바닷가 어촌 마을로 이사 와서 샬레를 짓고 그 안에 아틀리에를 마련하고는 트루빌과 인근 지역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샬레(Chalet)란 산간에서 소를 키우는 목동이 여름에 가축을 돌보고 치즈를 만들기 위해 머무르는 석조 및 목조 건물을 가리킨다. 샤를 모쟁이 지은 샬레는 목조 가옥 형태로서 살림집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아틀리에의 형태를 띤 것으로 보인다.


샤를 모쟁(Charles Mozin), 조수가 밀려드는 트루빌 해안 백사장(La Plage de Trouville par grande marée), 1850년경.


그의 소개로 쿠르베, 으젠 부댕, 코로, 클로드 모네, 마네, 르누아르, 까유보트 등 많은 화가들이 이곳을 찾았다. 화가들이 대거 이 작은 마을에 몰려든 것은 1863년 파리-트루빌, 도빌을 잇는 선로가 놓이면서 기차역이 들어서면서부터다. 트루빌로 몰려드는 피서객들을 위한 휴양지가 또 하나 이웃한 도빌에 새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곳에 몰려든 화가들은 마을의 정취와 바다 풍경에 매혹되어 각자 고유의 풍경들을 완성해 가자 후발 주자들도 이를 뒤따라 트루빌에 몰려들었다.


클로드 모네가 그린 트루빌 해안 풍경.


모네는 인근의 르 아브르에 살면서 으젠 부댕의 소개로 트루빌을 찾았다. 노르망디 해안 풍경을 담은 그림을 많이 남긴 모네는 ‘빛’을 찾아 이 해안 저 해안으로 옮겨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바랑쥬빌 쉬흐 메흐로부터 브르타뉴 지방 벨 일에 이르기까지 그가 마주한 풍경 앞에서 모네는 붓질을 멈춘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가 그린 트루빌 바닷가 풍경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걸려있는 바랑쥬빌 해안 풍경을 담은 그림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클로드 모네, 바랑쥬빌 세관 건물, 파리 오르세 미술관.


모네가 그린 바랑쥬빌 바닷가 풍경이나 파도치는 벨 일 해안가 절벽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모네의 감정이 격렬하게 출렁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붓 터치가 강하고 색채도 원색적이다. 반면에 트루빌 바닷가 풍경을 담은 그림은 안온하고 차분하다. 이는 모네의 심경 상태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지형적 특색으로 인한 것이다.


모네는 자신이 바라본 풍경만을 정직하게 그렸다. 감정을 투사하기도 했겠지만, 빛에 드러난 풍경을 솔직하게 화면에 담은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트루빌은 다른 두 곳의 풍경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가가 처한 상황이나 정서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화가의 눈에 비친 트루빌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다른 그림 하나를 더 보자면, 까유보트가 그린 트루빌 빌라 모습이다. 바다색이 연한 연둣빛에 가깝다. 까유보트의 눈에 바다가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이 색조 때문에 트루빌 앞바다를 오랫동안 관찰한 적이 있다. 인상파 화가들은 순간을 포착하여 그림을 그렸다. 여행자인 나는 오래도록 이 풍경을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림을 오랫동안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이를 설명해 준다.


귀스타프 까유보트(Gustave Caillebotte), 빌라가 있는 트루빌 바닷가 풍경, 1882.


미술관 유리창 가까이에 걸려있는 쿠르베의 그림과 조우한다. 참 대단한 화가다, 쿠르베가 그린 그림은 크기눈 작지만 엄청난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그의 이리저리 휘둘린 인생살이를 고려한다면 그의 예술이 왜 이리도 침착한지를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듯 격변과 소용돌이 속에 살고 있다. 우리의 삶을 지켜내기에도 벅찬 이 변화의 물결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 앞에서 서면 내 고유한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고 과연 나는 그걸 죽을 때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되풀이 묻곤 하는 것이다.


쿠르베의 그림이 걸려있는 유리창문 앞에서 바다를 내려다본다.
노을에 물드는 바다를 보기 위해서는 너무 이른 시각이다. 뭐든지 기다림이 중요하다.


어느새 정오를 넘어서서 오후의 막바지로 치닫는다. 점심을 들 때다. 미술관을 나서면 바로 문학예술인들이 아우성치던 <증기선(Les Vapeurs) 레스토랑>으로 향해야 하리라. 그곳에는 어제 다시 만난 지배인이 식사가 끝날 때쯤이면 커다란 칼바도스 병을 흔들거리며 내가 앉은 식탁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 때문이라도 그 집의 식탁에 앉아 때늦은 점심밥을 시켜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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