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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Nov 29. 2024

섬 아닌 섬

몽생미셸 가는 길 191화

[대문 사진] 도빌의 프레스낄(Presqu’île)


뚜크(Touques) 강을 가로지르는 <벨기에 인들의 다리(Pont des Belges)>를 지나 도빌로 들어선다. 도빌은 파리 21 구라는 별칭이 붙은 도시다. 파리에는 모두 20개의 구(區)가 있다. 행정구역상 동(洞)은 존재하지 않으니 구가 행정구역의 최소단위인 셈이다. 21번째로 이어지는 구가 아이러니하게도 파리지앵들의 여름 별장이 몰려 있는 도빌이라고 프랑스 인들은 비아냥댄다.


도빌에 있는 집들 가운데 파리지앵들이 소유한 별장들이 많기 때문이다. 반들반들한 거리에다, 럭셔리한 가게들, 거리를 걸어 다니는 이들의 옷차림도 남다르다. 식당은 어딜 가도 음식이 맛깔지며, 호텔은 등급을 표시하는 별의 숫자가 아무리 적어도 깨끗하고 안락하기만 하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요트들만 봐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소득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케 해 준다. 그런 이유로 이 도시는 파리 21번째 구청소재지로 불린다.


뚜크 강변에 섬 아닌 섬 같이 생긴 곳이 있다. 도빌 주민들은 그곳을 프레스낄(Presqu’île)이라 부른다. 도빌 시당국은 엄청난 개발사업을 벌여 이 땅을 아주 화려한 주거지역으로 바꿔 놓았다. 이른바 환골탈태란 말이 어울리는 곳이다. 대체 아파트 크기가 몇 평이나 하는지, 시세는 어떤 지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벨 에포크라 부르는 시대에 네오 노르망디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빌라를 초월하는 현대식 아파트 단지는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주거지역이 되었다. 교회도 없는데 복고풍으로 종탑도 하나 세워 놨고 바라보는 풍경 자체가 산뜻하기만 하다. 신도시 개발이란 슬로건에 부합하는 단지가 이른바 ‘섬 아닌 섬’이란 뜻의 <프레스낄(Presqu’île)> 지역이다.


20년 전 도빌 프레스낄(Presqu’île)은 이러했다.


그러나


20년 뒤 도빌의 프레스낄(Presqu’île)은 이렇게 바뀌었다.


아래 사진에서 증명되듯 신 주거지역 개발사업 덕분이었다.



2002년에 시작된 뚜크(Touques) 강 주변 지대를 개발하고자 한 도시 프로젝트를 살펴보자.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이 6헥타르의 땅은 이 지역에 사는 주민들과 충분히 협의하여 설계되었다. 목표는 뚜크 강을 따라 새로운 주거지역을 우선적으로 신설하고 주상복합건물 및 3차 산업을 이끄는 오피스빌딩, 호텔, 조경, 산책로 조성 등 활기찬 지역으로 재개발하는 데 있었다.


피에르 앤드 바캉스(Pierre & Vacances) 호텔 레지던스에 통합될 상징적인 세관 건물의 복원사업을 포함하여 아직도 새로운 건물들을 계속해서 짓고 있다. 이 복합 단지는 이미 기존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의 흐름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나름의 독특하면서 혁신적인 정체성을 지닌 곳이며, 우수한 주거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1]


도빌 시당국의 설명이다.


원래 도빌은 해수욕장으로 개발한 휴양지였다. 나폴레옹 3세 때 해수욕장이 처음으로 개장된 곳은 그가 신혼여행을 간 디에프(Dieppe)였다.


디에프로부터 프랑스 서남쪽 대서양 연안의 끝단에 해당하는 비아리츠까지 해수욕장의 개발되면서 프랑스에서 ‘해수욕’의 시대가 열렸다.


몰려오는 피서객들을 위해 1868년 철도가 부설되고 이를 이용해 여름마다 엄청난 유동 인구가 발생했다. 철도는 항구와 연결됨으로써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사과, 사과주인 시드르와 칼바도스, 육우, 치즈를 수출하고 목재와 석탄을 수입하는 등 무역이 발달했지만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1880년 보트의 부상은 이 여름 휴양지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당시 저녁마다 영국 런던의 워털루 역을 출발한 기차를 타고 사우샘프턴까지 이동한 영국인들은 하룻밤만에 르 아브르 항구까지 증기선을 이용하여 바다를 건널 수 있었다. 이어 30분안에 도빌까지 기차로 이동이 가능했다.


이러자 여행자가 급증했다. 더해 당시의 영국 귀족들은 범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왔다. 그들은 사교 생활을 즐겼고, 카지노(영국에서는 금지됨)에서 도박을 했으며, 인기 있고 값싼 프랑스 생활 방식을 즐겼다. 이 열풍은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지속되었다.


1903년 요트 분지가 이 지역에 들어서면서 외항이 신설되었다. 바야흐로 도빌의 요트 항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요트 클럽도 서서히 생겨났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은 이 모든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이 도시를 풍비박산 내고 말았다.


전쟁이 끝나자 요트 클럽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1949년부터 프랑스 드래건 챔피언십(France Dragon Championship), 프랑스 샤크 챔피언십(France Shark Championship), 투어링 클럽 드 프랑스(Touring Club de France)의 랠리 노티크 인터내셔널(Rallye Nautique International)을 여러 차례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요컨대 국제 요트 경주대회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큰 드래건 요트 협회는 도빌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많은 회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1962년에는 ‘위대한 고전 요트 경주 대회’라 불리는 카우스-도빌(Cowes-Deauville) 요트 경주가 처음으로 시작되었으며, 이 경주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매년 봄에 개최되고 있다.


1970년대에 들어 새로운 항구인 도빌 항(Port Deauville)이 들어섰다. 당시까지 요트 항구 역할을 하던 모흐니 및 요트 분지(les bassins Morny et des Yachts)가 새롭게 개발되고 요트에 대한 열정이 커지면서 1970년대 초에는 포흐 도빌(Port-Deauville)이라는 두 번째 개인 요트 항구가 개발되었다.


이 항구에 지어진 아파트의 건축은 아보리아즈(Avoriaz) 건설회사에 소속된 건축가 라브로(Labro)와 오르지니(Orzini)가 설계했다. 10헥타르가 넘는 면적에 걸쳐 770m 길이의 화강암 블록 방파제로 만든 이 새로운 항구는 하루 16시간 접안이 가능했다.


2001년 21세기를 맞이한 도빌 시는 모흐니 바생(Morny Bassin)과 뚜크(Touques) 강어귀 사이에 위치한 프레스낄(Presqu'île), 즉 <섬 아닌 섬> 지역의 활성화가 제기되었다. 일부의 땅이 건물도 없고 그렇다 해서 농작물 경작지로 활용되지도 않던 이곳은 그러나 바다 앞에 이상적으로 자리한 말 그대로 ‘방치된 땅’이었다.


도빌 시당국은 마침내 이 지역에 대한 공동 개발 구역 조성 절차를 시작한다. 도빌 시와 트루빌 시는 사전 협의의 일환으로 이 전 과정에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 2002년 말, 6개월의 연구와 상담을 진행한 후, 개발 프로젝트는 도빌 시의회에 의해 4가지 목표를 설정하고 개발에 착수할 것을 의결한다.


양질의 도시 계획: 도심과의 긴밀한 연결, 신속한 서비스 및 교통 체증 없는 도시 건설, 주차장 신설(상업지구및 주거지역), 건물 높이 제한 및 기존 세관 건물 보존.


실제 동네 생활: 상업 활동 활성화 및 상점을 위한 햇볕이 잘 드는 테라스 건설.


항해 활동의 활성화: 항구 서비스, 항해 및 어업 수산 활동의 재편성, 도빌 요트 클럽의 이전.


<벨기에 인들의 다리(Pont des Belges)>에서 도빌 항(Port Deauville)과 해변 백사장에 설치한 나무 판 보도인 <레 플랑슈(Les Planches)>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도보 거리에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를 위한 길 조성.[2]


2024년 마침내 <섬 아닌 섬>은 위의 4가지 개발 목표를 성공리에 완수하고 그 멋진 모습을 드러냈다.


새로 조성된 프레스낄(Presqu'île) 아파트 단지.






[1] <프레스낄(Presqu'île)의 역사>, 도빌 시 공식 웹사이트에서 인용.


[2] 같은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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