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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Dec 05. 2024

A. 하우저가 예견한 영화의 시대

몽생미셸 가는 길 197화

[대문 사진] 도빌 해안에 설치된 미국 할리우드 스타들의 보드


헝가리 태생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놀드 하우저는 20세기가 ‘영화(시네마)의 시대’가 될 것을 예견한 보기 드문 예술 사학자였다.


그의 약력을 살펴보면 부다페스트와 베를린 그리고 파리 대학에서 문학과 미술사를 공부하며 게오르크 짐멜과 앙리 베르그송을 사사했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고전과 르네상스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이탈리아에 머물렀다. 1921년 베를린으로 돌아와서는 베르너 좀바르트와 에른스트 트뢸취에게 경제학과 사회학을 접했다. 1924년부터 1938년까지 비엔나에 머물면서 하우저는 드라마투르기와 영화 사회학에 대한 첫 번째 분석을 수행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영국으로 도망친 그는 리즈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57년에 미국으로 건너간 하우저는 매사추세츠주 브랜다이스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가르치기도 했다.


비엔나 학파의 거장들(당시 리글, 막스 드보르자크 등)의 영향을 받고, 게오르크 짐멜의 가르침과 문학 사회학의 창시자이자 역사와 계급의식의 저자인 게오르크 루카치(György Lukács)의 저작으로 특징지어지는 칼 마르크스의 사상을 고수한 하우저는 재빨리 예술 작품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으로 눈을 돌린 몇 안 되는 문학예술의 사회학을 연구한 이론가이자 사회학자이면서 철학가였다.[1]


문학예술의 사회사 연구에 관한 괄목할만한 저술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그가 펴낸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Sozialgeschichte der Kunst und Literatur)』는 그가 런던에 체류할 때 구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1941년 친구 만하임의 요청으로 그는 예술 사회학 선집 서문을 쓰기로 동의했다. 10년 동안 거의 저녁과 주말에만 일했던 하우저는 이 과제를 그의 유명한 작품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Sozialgeschichte der Kunst und Literatur)』로 옮겼다. 1951년 제1권의 출간은 하우저의 학계 입문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리즈 대학의 객원 교수(1951-1957)가 되어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제2권과 미술사 철학을 동시에 집필했다. 이론가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Adorno, 1903-1969)가 그를 프랑크푸르트에서 강연하도록 초청한 후, 독일의 여러 대학들이 그를 초청했다. 1958년 하우저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제2권을 출간했다.


브랜다이스 대학교의 객원 교수로 재직(1957-59)하는 동안 그는 매너리즘의 역사를 썼다. 그는 1959년 런던으로 돌아와 혼시(Hornsey) 예술대학에서 강의했다. 매너리즘에 관한 그의 책은 1964년에 나왔다. 그는 오하이오 대학의 객원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세 번째이자 마지막 권인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3권을 출판했다. 1978년 사망하기 직전, 하우저는 헝가리 과학 아카데미의 명예 회원이 되어 부다페스트로 돌아왔다.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방법론적 도입 없이 예술의 선사시대로 바로 들어간다. 그리고 맹렬한 속도로 20세기까지 예술의 역사를 추적한다. 그는 20세기를 영화의 시대로 규정하고 피카소를 당대 대표 예술가로 꼽는다. 그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의 마지막 권 현대편의 마지막 장을 온전히 ‘영화의 시대’에 할애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기술로 끝맺는 하우저의 방대한 저술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방법론임에도 많은 비평가들을 끌어들였다. 그는 건축과 음악에 대한 개인적인 애착에도 불구하고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2]


그의 저술에서 빛나는 부분을 발췌해 보자.


“영화는 유럽의 근대 문명이 그 개인주의적 도정에 오른 이래 매스관중(Massenpublikum)을 위해 예술을 생산하려 한 최초의 기도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19세기 초엽에 노변극장 및 연재소설의 탄생과 관련하여 연극 청중과 독서 대중의 구조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 예술의 민주화의 참된 시초를 이뤘었다. 그것이 영화의 대량관람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 것이다.


궁중의 소규모 극장에서 중산층의 국립및 시립극장을 거쳐 극장 체인으로의 변천, 또는 오페라에서 오페레타를 거쳐 레뷔(revue ; 원래는 프랑스식 시사풍자만극, 보통 노래, 춤, 음악 따위를 뒤섞어 엮은 경쾌한 희극을 말함 -역주)에 이르는 변천은, 증대되는 투자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점점 더 넓은 층의 소비자를 붙잡으려 한 사태 발전의 몇 가지 단계를 보여준 것이었다. 오페레타의 상연비용은 중간정도 크기의 극장으로 감당할 수 있었는데 비해, 레뷔나 대규모 발레는 대도시들을 순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규모 영화의 경우에는 전 세계의 관람객들이 그 재원 충당에 이바지해야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예술 제작에 있어 대중의 영향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아테네나 중세에 있어, 대중이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예술 발달의 방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는 없었다. 그들이 수요자로 등장하여 예술을 즐기는 대가를 돈으로 치르게 된 후에야 그들이 돈을 내는 조건 자체가 예술사상 하나의 결정적 요소가 된 것이다.”[3]


“예술의 품질과 대중적 인기는 항상 어떤 긴장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렇다고 넓은 계층의 대중들이 질적으로 우수한 예술을 언제 어디서든 원칙적으로 반대하면서 동시에 열등한 예술을 의식적으로 택했다는 말은 아니다.


물론 복잡한 예술은 보다 소박하고 덜 발달된 예술보다 대중이 감상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충분한 이해가 없다는 사실이 반드시 그들로 하여금 복잡한 예술을 받아들이는 것을(받아들인다는 것이 꼭 작품의 심미적 가치 때문에는 아닐지 몰라도) 막지는 않는다.


대중과의 관계에서 성공 여부는 미적 질(質)의 문제를 넘어선 기준에 따라 정해진다. 그들은 예술적으로 좋고 나쁜 점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그들에게 확신을 주거나 불안을 주는 여러 인상에 대해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들은 예술적으로 가치 있는 것이 그들에게 맞게, 다시 말해서 매력 있는 소재로써 제시되었을 때 그것에 대해 흥미를 갖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수한 영화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수 있는 확률은 훌륭한 그림이나 시의 경우보다 훨씬 크다. 왜냐하면 영화를 제외한 모든 진보적 예술은 특별한 훈련을 안 받은 사람으로서는 거의 접근할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의사전달 형식이 오랫동안 그 장르 특유의 발전을 거치는 사이에 일종의 암호처럼 되어버려서 본질적으로 비대중적일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아무리 원시적인 영화 관객이라도 새로 만들어진 영화의 이디엄(慣用句)을 이해하는 것은 놀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우리는 영화의 장래에 관해 굉장히 낙관적인 결론을 내릴 마음이 나기도 쉽다. 하지만 이러한 대중과의 지적 일치 상태는 일종의 근심걱정 없는 어린 시절에 불과한 것으로서, 어느 예술이건 새로 생길 때마다 되풀이 되는 상황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때 영화의 앞날을 쉽사리 장담할 수만도 없는 것이다.


어쩌면 바로 다음 세대에만 가도 영화의 표현수단을 다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며, 이 분야에서도 전문가와 문외한을 가르는 분열이 조만간 생길 것임에는 틀림없다. 오직 젊은 예술만이 대중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장르가 오래되면 그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의 발전 단계들을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4]


“오늘날 원시적이면서 동시에 가치 있는 예술을 만들어 내는 길은 없다. 오늘날 참되고 진취적이고 창조적인 예술은 복잡한 예술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예술을 누구나 똑같은 정도로 즐기면서 이해하는 도리는 없지만 넓은 대중의 참여가 확대되고 심화될 수는 있다. 문화적 독점을 해소하는 전제조건은 무엇보다도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전제조건의 창조를 위해 싸우는 수밖에  없다.”[5]




[1] 프랑스 『유니베르살리(Universalis) 대 백과사전』, 아놀드 하우저 항목 참조.


[2] 미국 『예술 사학자 사전(Dictionary of Art Historians)』, 아놀드 하우저 항목 참조.


[3] A. 하우저, 『文學과 藝術의 社會史(現代篇)』, 백낙청/염무웅 共譯, 創作과 批評社, 1993, 서울, 252쪽.


[4] 위의 책, 252-253쪽.


[5] 같은 책, 261 마지막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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