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201화
[대문 사진] 도빌 옆 마을 베네흐빌
도빌에서 꺄부르까지는 바닷길을 통해 동에서 서로 해안선을 따라 쭉 뻗어나간 길이다. 도빌을 벗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등장하는 마을은 베네흐빌 쉬흐 메흐(Bénerville sur mer)이고, 언덕에 자리한 이 마을은 마치 지중해에 위치한 깐느(Cannes) 언덕 마을처럼 호기심을 무한 자극하곤 한다. 깐느에서와 같이 언덕에 성당이 꼭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먼저 내달리고 언덕에서 바라보는 대서양도 무척 근사할 것이란 기대도 뒤따른다.
상상이 끝없이 자극하던 날 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 길로 들어섰다. 늘 지나다니기만 하다가 꼭 한번 들려봐야겠다는 장소처럼 호기심마저 발동했다. 도빌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보니 화려한 욕망의 도시가 곁에 있음으로 해서 이 시골 마을이 초라하지 않을까 실망감이 앞서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 독특한 정취를 품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마저 끼어들었다.
호기심의 발동은 무엇이든 가능케 하는 법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유럽은, 프랑스는 그런 나의 호기심에 찬물을 끼얹은 적이 없었다. 다만 미슐랭 관광 안내 책자에 나오는 나름 유명세가 있다는 도시들이 가끔 기대와 꿈을 여지없이 무너뜨렸을 따름이다. 여행 중에 그렇듯 생경한 도시의 근교들이 유령처럼 다가왔고 그 유령 같은 도시들로 빨려 들어가 진짜 유령들만이 난무할 것 같은 밤을 지새우면서 나 또한 캄캄한 밤하늘을 가르며 어딘 가로 추락해 가는 유성 신세가 되곤 했다. 나는 왜 늘 근교에서 잠을 청하면서도 도시들을 그처럼 비껴갔을까? 기억 속의 도시들은 이제 잔상으로만 남아있을 뿐, 나는 언젠가부터 대신 시골 구석을 떠돌고 있었다.
베네흐빌 쉬흐 메흐는 꽤 언덕 높은 곳에 자리한 자그마한 시골 마을이지만, 지형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이웃해 있는 블롱빌 쉬흐 메흐(Blonville sur mer)처럼 백년전쟁 기간 동안 몸살을 앓았던 동네다. 바이킹이 건설한 노르망디 마을들이 백년전쟁동안 어디 한 군데라도 성한 곳이 있으랴마는 지형적 조건은 이 작은 마을에도 깊은 상처를 패이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제 2차 세계 대전시에는 대서양을 향한 독일군의 방공포가 집중적으로 배치된 탓에 연합군의 포격이 수차례 마을을 휩쓸고 갔다. 마을 뒷산 몽 까니시(Mont Canisy) 언덕 기슭에는 아직도 그때 설치한 독일군의 방공포 참호와 진지가 남아있어 눈살마저 찌푸리게 만든다. 해안선을 지키는 독일군의 집념은 지독하고도 끈질겼다. 그들은 늘 연합군이 언젠가는 해안으로 상륙작전을 감행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가 정확히 언제가 될지, 어느 곳이 될지 모르고 있었을 따름이다.
호기심을 무한 자극한 성당은 공동묘지와 이웃하고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도로변이다. 11세기에 처음 지어졌으니 어느덧 천 년의 영고성쇠를 견뎌온 중세 종교 건축물의 소박한 인상이다. 로마네스크 시기에 지어진 교회들은 어느 것 하나없이 모두 닮은 꼴이라 할지언정 천 년 뒤의 여행자가 바라보는 건물 몸체는 버티고 서있기에도 힘에 겨운 모습이다. 신자도 없는 한적한 건물 내부는 신자석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고 제단도 방치되어 그 흔적만 알아볼 수 있을 뿐, 그래도 무너져가는 교회를 복원하겠다는 일념에서인지 기금을 모은다고 성격도 애매한 그림들을 걸어놓은 모습이 혼란스런 가운데서도 애처로운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성당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니 비로소 거꾸로 바닷가에서 바라보면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바지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걸 짐작하게 된다. 어부들은 성당을 뱃사람들의 수호성인인 구원의 성모 마리아쯤으로 생각했으리라. 조그만 마을이지만, 중세 때에는 성당 안이 비좁을 정도로 많은 신자들로 가득 찼을 테고, 늦게 온 신자들은 성당 밖에서 기웃거리며 본당신부가 집전하는 미사를 열린 문을 통해 지켜봤으리라. 영성체 시간이 돌아올 때마다 고해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했을 순진무구한 영혼들이 떠오르는 듯하다. 성당은 그렇듯 사라지지 않을 역사책과도 같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테라스로 향한다. 그러자 으젠 부댕이 그린 바닷가 풍경이 떠오른다. 화가는 마을의 변치 않을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그 역시 풍경만이 진실하다고 믿었던 것일까? 아니면 풍경의 영원함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림처럼 시원한 풍경이 발치 아래 펼쳐진 것을 보고 있자니 바다가 주는 묘한 매력이 화가들을 사로잡았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