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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Dec 15. 2024

돌기둥을 찾아서

몽생미셸 가는 길 205화

[대문 사진] 1066년 영국 정벌을 위한 기욤(윌리엄) 선단 출항 기념비


울가트(Houlgate)에 와있다. 해변 백사장에 이르는 100개의 계단을 오르내릴 용기는 나지 않는다. 최대한 차를 빨리 몰아 도심으로 진입한 뒤 애당초 의도했던 답사의 최종 목적지에 이르기를 바랄 뿐이다. 보다 빨리 도착하고자 한 서두름이 이리저리 산책하면서 걸어가도 충분할 길을 건너뛰게 만들었다. 내가 향하는 곳은 그렇듯 오로지 비바람에 깎이고 부스러져가는 석회암 돌기둥 하나 외롭게 서있는 바닷가다. 오로지 그 돌기둥을 보고자 파리로부터 이 먼 길을 에둘러 참으로 이토록 멀리 떨어진 곳까지 달려온 것이다.


혼란한 여정은 때로는 답사를 지치게 만든다. 경비도 이만저만 드는 게 아니다. 길을 찾지 못해 목적지 주변을 빙빙 헛도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럴 때마다 맥이 풀린다. 험난한 답사를 계속해야 할지 곤혹스러운 심사가 앞을 가린다. 아니다! 이 길을 달려온 것은 꼭 그 돌기둥을 보고자 함이 아니었던가? 돌기둥을 보지 못한다면 이번 답사는 아무런 의미 없는 여행으로 남지 않을 것인가?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채근대는 시간은 길어져만 간다.


이미 실패로 돌아간 아득한 봄날의 여정을 다시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주절거리며 신발끈을 고쳐 맨다. 신발끈을 고쳐 매는 데는 혹시라도 모래가 신발안에 들어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건만, 그럴 때마다 신발끈은 왜 자꾸만 풀어지는지 조심조심 길을 걸어가도 처음 의도한 곳을 지나치기는 매한가지다. 지름길이 있다면 새 길을 찾아가는 것도 마다해서는 안 될 일, 길 끝에는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품은 돌기둥 하나 서 있을 터, 역사의 시간은 다시금 되돌려져 저 아득한 1천 년 전의 위대한 노르망디 공국의 역사적 사건 하나를 들춰내 보여줄지도 모를 일이다.


돌기둥을 만나려면 롤랑 가로스 산책로(Promenade Rolan Garros) 가장자리에 쏠려있는 ‘풍찻길(Rue Moulin)’과 ‘해수욕장 길(Rue des Bains)’의 교차로까지 걸어가야 한다. 울가트의 가장 아름다운 해변 백사장길이 프랑스에서 매년 열리는 세계적인 테니스 대회명과 같은 롤랑 가로스다.


롤랑 가로스(Rolan Garros)는 최초로 지중해 횡단비행에 성공한 비행기 조종사 이름이다. 그는 프랑스 식민지령 열대 섬인 생드니 드 라 레위니옹(Saint-Denis de la Réunion)에서 태어났다. 그런 그가 바닷가 마을 울가트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울가트의 해변 산책로에 그의 이름이 붙은 것은 1912년 9월 6일 4,960미터 상공에서 비행사들이 새로운 고도 기록을 세운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88년 울가트(Houlgate) 시당국이 기존의 산책로를 ‘롤랑 가로스 산책로(Promenade Rolan Garros)’란 이름으로 바꾼 데서 연유한다. 그렇다면 파리 불로뉴 숲 테니스 코트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테니스 대회 이름은 왜 롤랑 가로스인가? 롤랑 가로스는 테니스에 관해서만큼은 아마추어 수준이었다는데? 테니스 대회명이 그의 이름을 딴 것은 생전에 그가 한 말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승리는 가장 끈질긴 자의 것.
La victoire appartient au plus obstinât.


그가 남긴 명언은 지금도 여전히 롤랑 가로스 테니스 대회가 열리는 파리 필립 샤르티에(Philippe-Chatrier) 테니스 코트 중간 스탠드 난간에 적혀있다.


2024년 5월부터 6월까지 파리에서 개최되는 롤랑 가로스 테니스 대회 홍보 사이트.


산책로 끄트머리에 나 있는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서는 ‘풍찻길(Rue Moulin)’로 걸어간다. 바람이 많이 불어 그런 이름이 붙은 모양이다. 길 끝에는 매혹적인 디브(Dives) 만이 펼쳐져 있다. 드로숑(Drochon) 강이 대서양과 합류하는 지점이다.  끝없이 모래톱이 곱게 펼쳐져 있는 광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발치의 디브 만(灣) 가까운 바다 빛은 검푸른 바다를 강물이 밀어낸 탓으로 옥 빛에 가깝다.


휴대폰이 찾아낸 바다, 인공위성으로 본 울가트(Houlgate) 디브(Dives) 만(灣)의 풍경.


그러나 바닷가를 산책할 때가 아니다. 돌기둥! 뇌리에 맴도는 그 돌기둥을 찾아가야만 한다. 걸어가는 발걸음이 흔들린다. 긴장한 탓이다. 목표를 찾아 헤매는 답사의 끝은 항상 긴장되고 설레고 흥분한 탓에 경련마저 이는 탄성 자체다. 그렇다! 그래서 답사가 재밌는 것이다. 행복하고 황홀한 순간을 미리 그려본다는 것, 곧 눈앞에 펼쳐질 광경을 상상하는 것처럼 행복한 때도 없다.


돌기둥이 나타났다.


돌기둥은 상상했던 대로 산책로에 외롭게 서있다. 그리 크지 않은 키에 원형으로 서있는 모양새가 마치 그리스 신전의 폐사지에서 보는 잘려나간 신전 대리석 기둥 같은 느낌이다. 원형 기둥에 새겨진 글자마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손된 탓인지 곳곳에 땜질한 흔적이 역력하다. 글자마저 흐려진 온갖 풍파를 견딘 모습이 외려 대견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나마 사각형 돌 받침대 위에 위태롭게 서있는 모습은 혹여라도 폭풍우에 쓰러질까 봐 불안하지만 여태껏 꼿꼿하게 서있는 모습이 늠름하기까지 하다. 다행이다 싶다. 만주벌판에 홀로 외롭게 서있는 <광개토대왕비>가 저러했을까?


이 돌기둥 기념비는 1066년 정복왕 기욤(영국에서는 윌리엄이라 부른다)의 선단이 영국 정벌을 위해 이곳 디브 만에서 출항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기둥이다. 꼬몽 언덕에 있던 것을 바닷가로 옮겨놓았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 고고학자 아흐시스 드 꼬몽(Arcisse de Caumont)이 이 이름마저 모르던 돌기둥을 처음 발견했다. 고고학자는 면밀한 고증 끝에 이 돌기둥이 1066년 정복왕 기욤의 선단이 영국 정벌을 위해 출발한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세워진 기념비였음을 밝혀냈다. 고고학자이자 금석학자였던 그의 집념과 발굴 그리고 고증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돌기둥 기념비는 그렇듯 폐사지 성당터에 외롭게 서있던 이름 모를 돌기둥이었던 것이다. 돌기둥 표면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잉글랜드 정복을 위한 기욤 공작의 선단은 한 달 가까이 이곳 디브 만으로 집결했노라. 선단에 승선할 군사들 역시 이 인근에 진을 쳤노라. 1066년 마침내 디브 만을 출발한 기욤의 선단은 영국을 향해 나아갔노라.”


불어오는 짜디짠 소금기 어린 바닷바람으로 심하게 훼손된 돌기둥, 돌기둥이야말로 저 아득한 천 년 전의 노르망디와 영국에 걸쳐 두 왕국을 지배했던 노르망디 공국의 연대기에서 가장 찬란하고 긴박했던 역사적 사건을 증언해 주는 증거물이지 않겠는가? 기둥을 바라보던 나는 그런 확신에 자연 빠져들고 만다.


울가트 해안에 서 있는 1066년 영국을 향한 기욤 선단의 출항을 증언해 주는 기념비. J. 클라라 훼랑(Clara Ferrand)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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