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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Jun 27. 2024

능란한 까다로움 2 : 모데라토 칸타빌레

프랑스 문학의 오늘 30화

[대문 사진] 모데라토 칸타빌레


1958년에 간행된 『모데라토 칸타빌레(Moderato cantabile)』는 『정인(L’Amant)』보다 앞서 발표한 작품인데,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문학적 명성을 드높여 주는 데 크게 기여한 소설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모데라토 칸타빌레』, 1958.


이 소설은 피아노 교습 선생이 재질이라고는 어느 한 구석 찾아보기가 힘들 뿐 아니라 다루기조차 까다롭기까지 한 안느 데바레데라는 어린아이에게 어름어름 반복시키는 디아벨리의 주명곡(la sonatine)의 음조 속에 기반하고 있다.


비록 소설에서 작가가 의도한 것처럼 주명곡에는 하나의 장르로서 그처럼 간단하면서도 어조를 부드럽게 하는 요소가 자리 잡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르무안느 음반 제작사에서 기획한 <고전 음악 명곡 선집>의 첫째 권 안에서 이 곡을 발견할 수 있으며, 또한 이 곡을 통하여 피아노 교습 선생인 여자가 교습생인 어린아이가 잠들 때마다 들었던 노래를 떠올린다는 것 역시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모데라토 칸타빌레』의 첫머리에 주명곡을 계속 반복하여 연습하는 아이를 등장시킨 것은 파르나숨의 단계(‘그라두스 애드 파르나숨 박사(Doctor Gradus ad Parnassum)’와 함께 하는 어린 코너의 시작 부분에서 약간은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의 음악과 유사한)보다 훨씬 낮은 단계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다.


더군다나 이 소설의 제5장에서는 아이는 더욱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데, 아이는 여전히 가장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있을 뿐만 아니라 피아노 교습 선생은 ‘디아벨리의 아름다운 소주명곡’의 선율을 통한 음악적 감동을 아이가 더 이상 깨우칠 수 없다는 확신을 하기에 이르러 결국 아이에게 단 10분 동안만 음계 연습을 시키고자 아주 간단한 건반 두드리기, 즉 전혀 음계의 변화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도(Do) 장조 건반만을 반복하여 누르도록 강요하고 있다.


‘숨을 고르듯이 무리가 없고 노래하기에 적당한’ 박자(tempo) 자체는 알레그로(allegro : 쾌속하게)나 프레스토(presto : 빠르게 또는 급하게)처럼 손가락을 빨리 움직여야하는 속도에 대한 강박관념을 야기하지도 않으면서, 몇몇의 아다지오(adagio : 느리게) 곡들과 같이, 예를 들어 베토벤의 네 번째 콘체르토 솔(Sol) 장조 작품 제58번에서의 안단테 콘 모토(andante con moto : 천천히, 느린 속도로의 진행)에 의한 제2악장을 떠올려 보라. 이 악장은 트랑퀼로(tranquillo : 조용하게, 가만히)에 일치하며, ‘조용한 삶’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창작품에 해당하는 작품의 진부함이란 비독창적 특성과도 일치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태평양의 방벽(Un Barrage contre le Pacifique)』에 등장하는 작중 인물들이 처한 근본 상황과도 일치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사진] 마르그리트 뒤라스, 『태평양의 방벽』


이러한 절제된 감정은 뒤라스가 작품들을 발표할 때마다 책 첫머리에 쓴 서문마다 암시되고 있다. “그들 세 사람에게는 말을 사기 위한 아주 훌륭한 생각으로 비쳤다"라는 암시가 짙게 깔려있는 『태평양의 방벽』, “우리는 이미 밀라노와 제노바를 찾은 적이 있었다.”의 『지브롤터 수부(Le Marin de Gibraltar)』, “혼자 있을 곳은 집밖에 없다”의 『글쓰기(Écrire)』, 그러나 평탄한 대지가 거센 파도와 같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오는 바다 물살에 잠기고 ‘고요한 삶’마저 열정에 의해 뒤덮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데라토 칸타빌레』 역시 항구적인 그 무언가를 은닉한 작품은 아니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쓰기』, 『태평양의 방벽』, 『지브롤터 수부』.


이 1958년의 소설에서 노래하듯이 보통 속도로(moderato cantabile)를 뒤흔들어 놓는 것은 성질 사나운 피아노 교습선생인 지로 양(孃)의 질책(피아노 연습을 시킬 때마다 자신의 아이한테 하듯 똑같은 방법으로 안느 데바레데에게 하던 교육 방식)보다는 오히려 더욱 강렬한 울부짖음, 즉 찻집 문 앞의 거리에서 소란스러운 동요를 발생시킨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요 사태의 진상”을 밝히기위한 시도라고 볼 수도 있다. 군중들이 토해내는 굉음들은 점점 더 거세어지면서 밀려드는 조수와도 같이 주명곡의 고요한 흐름을 삼켜버리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노래하듯이 보통 속도로를 깨뜨리는 범죄는 진부함이란 지평선을 무너뜨리고 만다. 마치 고요한 삶의 시간과 공간 속에 펼쳐지고 있는 『롤 브이(V). 슈타인의 겁탈』 속에 어슬렁거리는 광기처럼 말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롤 브이(V). 슈타인의 겁탈』


1996년 초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죽음은 이미 문학적 명성을 획득했음은 물론, 기존의 작품들에 대한 끝없는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던 한 작가에 대한 서로 상반된 평가를 낳는 계기가 되었다.


혹자는 그녀의 정치적인 감응 현상과 함께 알코올 중독 문제와 비사교적인 삶을 들춰내기도 했으며, 또 어떤 이들은 힘들이지 않고 글 쓰는 작가의 태도를 문제 삼기도 했고, 이와는 다르게 어떤 부류는 그와 같은 창작적 방법론에 있어서의 안이한 태도보다는 뒤라스야말로 성격이 까다로운 작가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그녀의 성격을 평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작품을 일별해 보건대, 거의 변화가 없는 잔잔한 문체나 글투 이상으로 그의 정신세계나 작품의 주제 등 어느 것 하나 온전치 못한 것은 물론, 진부함마저 떨쳐버리지 못한 독창성의 결여는 그의 문학이 지닌 가장 큰 결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예만 들어보아도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작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상징체계에 해당하는 둑들(barrages)조차도 모두 끊어지고 무너져 내린 상태로 등장하고 있다. 또한 놀랍게도 서로 다른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녀의 통과벽(passe-barrage)과도 같은 글쓰기의 유연성은 문학에 있어서 가능한 모든 변신을 온몸으로 보여준 예에 해당한다.


그녀는 결코 소설이란 한 장르에만 집착하지 않았다. 물론 간혹 누보로망이란 이미 한 물 간 사조에 몸담고자 골몰하지도 않았음은 명백하지만, 그 이상으로 어느 소설 형태 하나, 마찬가지로 어느 주제 하나 제대로 깊이 있게 천착하지 못한 어설픔도 함께 지적해야만 해야 한다.


영국 태생으로 『정인』에서 여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정부와도 같이 소설가인 그녀는 그렇듯이 책으로부터 영화속 한 장면으로 뛰어들고자 부단히 시도했을 따름이다.


영화 「정인」의 한 장면


대화의 형식에 기초한 『도심 공원(Le Square)』(1957-1965)은 희곡의 한 유형으로 보기에 별 무리가 없다. 「인도의 노래(India Song)」는 ‘대본-연극-영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관류하고 있는 통일성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자신의 작품들 가운데 어떤 특정한 작품들에 붙인 제목과도 같이, 또한 이미 영화화된 작품 가운데 하나인 「뮤지카(Musica)」와도 같이 ‘인도의 노래’라는 제목에서 엿볼 수 있는 음악적 분위기에 대한 환기가 그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도심 공원』, folio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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