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218화
[대문 사진] 캉 라 포테흔느 레스토랑(Maison La Poterne de Caen)
캉(Caen)에서의 때늦은 점심 식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성당 두 곳을 돌다 보니 어느새 오후 2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성당 주변에는 오가는 행인도 거의 없어 차 한 잔 마실 곳도 마땅치가 않았다. 다음 행선지는 캉 성채이다 보니 늦어버린 점심 식사는 구시가지 성벽이 바로 보이는 곳에서 드는 것이 아무래도 나을 듯싶어 차를 몰아 성벽을 향해 도로 표지판이 가리키는 대로 구도심(올드 타운) 쪽으로 방향을 틀어 쭉 이어진 길을 따라간다.
내비게이션에 익숙한 21세기 인류와는 다르게 오직 도로 표지판만 믿고 운전하는 구닥다리 촌놈 행세는 하나뿐인 유일한 사랑 아내에겐 언제나 미안할 따름이다. 그녀의 도움 반, 직감 반을 믿고 운전하면서도 이제까지 예상했던 목적지를 잘도 찾아갔다.
기도의 힘이다. 보통 여자들 같으면 짜증 낼 일이 방향을 잘못 틀어도 그녀는 짜증 내는 법 없이 묵묵히 원래의 목적지를 향해 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기도하는 중에도 안전운행을 바라는 그녀의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나 역시 그녀의 믿음에 찬물을 끼얹을 일은 안 하겠지만, 운전이라는 것이 반드시 뜻대로 되라는 법이 없어 도로 표지판을 놓치면 모든 게 순간 허망해지고 만다.
그러나 성곽 근처의 구시가지 점심 식사 장소만큼은 아는 길이어서 짧고 편하게 이동했다. 잔망스럽게 촐랑대던 젊음의 시간은 흘러 흘러 감각은 이미 낡고 고루해졌을 뿐 아니라 이제 내가 믿을 건 오직 하나 정신의 자장이 불꽃을 튀기는 직관에 따른 판단 감각뿐이다.
무얼 어디서 먹을 것인가? 그것만이 모든 감각에 불을 지핀다. 주차도 걱정 없고 때늦은 시각이니 주문을 기다릴 필요조차 없다. 테이블은 텅텅 비어 있을 게 뻔하고 웨이터만이 숭고한 ‘휴식시간’을 고대할 따름이다. 물론이지! 웨이터들을 결코 피곤하게 해선 안 된다. 손가락이 짚이는 대로 메뉴를 주문하고 빨리 먹고 사라져야 한다. 그 짧은 웨이터의 휴식시간을 방해해선 천벌받는다. 근사한 유니폼을 잘 차려입은 젊은 웨이터를 화나게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구시가지로 들어선다. 뜻 모를 구도심을 가리키는 홍보용 안내판 속의 고유명사 지명이 여간 낯선 게 아니다. 안내판에 적혀있는 그 고유명사를 누군가에게 물어볼 걸 그랬나 싶다. 하기는 텅 빈 유월의 도시에 누가 엉뚱한 질문에 응대하련만은 모란꽃이 피기까지에는 아직 한 달을 더 기다려야만 한다.
입맛에 달인이었던 마네도 바닷가를 찾을 때마다 해물요리를 즐겨 먹었다. 나도 그래야 하나? 입맛도 따라 해야 하나? 마네는 화가다! 시인 보들레르도 화이트와인에 굴을 즐겨 먹었다. 나도 그처럼 따라 해야 하나? 휴가철이면 노르망디로 휴가를 떠난 부유한 화가 마네는 바닷가 풍경에 너무도 익숙한 화가였다. 항구마을 옹플뢰르에 사는 모친을 둔 가난하여 매번 마네에게 점심을 얻어먹었던 보들레르는 아예 옹플뢰르로 이사 가고 싶어 안달이 난 궁핍한 시인이었다.
둘 다 전형적인 파리지앵으로 전쟁을 피해 시골로 도망친 걸 제외하곤 생애에 단 한 번도 파리를 벗어나 살아보지 못한 화가와 오직 파리에서의 삶만을 이어간 시인의 고집은 아이러니 중에 아이러니다.
나는 그들과는 다르게 온 천지를 떠돌며 살았다. 한적한 시골에서, 대도시에서, 서울에서, 남부 프랑스 에호 지방의 몽펠리에에서, 파리에서 내 삶은 주체 없을 만큼 흔들리면서도 나름 견고한 뼈대를 세워갔다. 마네라는 화가와 보들레르라는 시인에 의해 지금의 삶이 다시 흔들린다면 그거야말로 아이러니 중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도착하여 테이블을 마주하고 아내와 식사를 주문한 곳은 구시가지 초입 들머리에 위치한 ‘뒷문(Poterne)’이라는 레스토랑이다. 전형적인 프랑스 전통식당, 루앙과 함께 노르망디 지방만의 향토음식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곳, 상호가 궁금하여 화장실 갈 때 살짝 레스토랑 구석구석을 살펴봤더니 이놈의 식당은 출입구가 한두 개가 아니다.
그래서 ‘뒷문’이라 했나? 차라리 속어나 비어를 섞어 뒷구녁이라 하지. 뒷구멍은 항문을 뜻한다. 각별히 조심해야 할 단어다. 식당의 상호가 항문을 뜻해서야 되겠는가? 그것도 나름 괜찮은 식당인데.
<뒷문> 레스토랑은 나중에 알고 보니 캉에서는 제법 유명한 식당이었다. 프랑스 전통요리 전문점! 요즘 유행하는 체인점이 아니라 나름 자존심 센 주방장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식당, 전통식당 하면 휴식시간마다 종업원들 모아놓고 화투나 치는 우리네 주방장이 떠오르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하려고 메뉴판을 이리저리 들척이니 사뭇 다른 낱장이 흩어진다. 뭔 놈의 와인 예찬을 이렇게 길게도 늘어놓았나 싶다. 보들레르, 빅토르 위고, 라블레, 유명하다 싶은 작가들은 다 모아 놨다. 그들이 한 말이 흥미로워 전식으로 대뜸 굴 한 접시에 화이트와인을 시킨다.
목이 컬컬하던 참이다. 와인을 시키자 웨이터는 반가웠던지 나름 점심 메뉴를 길게 소개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내 눈에 꽂힌 메뉴는 캉(Caen), 이 도시만의 레시피로 요리한 소 내장(Tripe) 요리뿐! 굴과 소 내장이 어떤 조화를 이룰지는 내 위 상태를 짐작해 보면 안다.
프랑스인들은 소 내장 같은 건 못 먹을 음식으로 치부해 왔다. 그래서 복수형으로 abats(‘아바’라 발음한다)라 부른다. 풀이하자면 가축의 내장 부속물을 뜻한다. 정상적으로 먹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이 내장 부속물은 특별히 다뤄야만이 먹을 수 있다는 뜻일 테다. 복어처럼 먹어서 죽는 일은 없겠지만, 똥 냄새가 나니(북에서 남으로 내려보낸 수 백 개의 ‘똥 풍선’이 떠오르는) 특별히 다뤄야만이 먹을 수 있다는 뜻이겠지 싶다.
이런 음식 재료일수록 주방장의 탁월한 요리 솜씨에 더해 뛰어난 조리 실력까지 요구된다. 토마호크야 잘 구우면 그만이지만 똥 냄새나는 소 내장이나 돼지 부속을 어떻게 대충 요리하겠는가? 손이 많이 간다는 뜻이겠지. 손이 많이 가면 그만큼 맛도 있다는 뜻이겠지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기로 했다. 캉에서의 첫 점심이니 그럴 만도 했다.
식사를 주문하고 난 뒤, 훑어보다가 테이블 위에 집어던진 메뉴판을 다시 집어 들고는 찬찬히 살펴본다.
빅토르 위고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신은 단지 물을 창조했을 뿐이지만,
인간은 와인을 만들어 냈다.
보들레르는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어느 날 저녁
포도주의 영혼이
병 속에서 노래했것다.
그러다 보니 술이 한 모금 당긴다. 차디차면서도 시원하고 상큼한 샤르도네 향이 감도는 화이트와인, 몰고 온 차는 적당한 곳에 주차해 놓았으니 내일 찾으러 와도 좋다. 오늘은 와인을 마실 운명의 날인가 보다. 보들레르가 그렇게 노래했으니 나도 한 번 와인을 마시면서 천상의 운명을 느껴보자. 아내도 거든다. 그녀의 샤르도네 와인에 대한 환호는 늘 변함이 없다.
포도주를 한 모금 입에 머물다 천천히 목젖 너머로 넘기면서 아내가 앉은 뒤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본다. 멀리 기욤이 잠들어 있는 생테티엔느 성당이 보이는 듯도 하다.
영웅의 평안한 잠을 위해 건배!
내가 그 때문에 오로지 이 때문에 여기까지 흘러든 걸 영웅은 알까 모를까?
마틸드를 위해서도 건배!
앞에 앉아있는 여인은 마틸드보다도 더 아름답다. 그래서 사진을 한 장 더 찍는다. 그녀는 이렇게 만인에 공개될 줄은 꿈에도 짐작 못했겠지.
즐겁다! 비릿한 석화 향이 입안 가득 머물다 보니 잃어버린 굴에 대한 옛 맛마저 되살아나고 삶의 용기도 생기고 아내도 더 사랑해지고 싶고 죽을 때까지 맘 변치 않고 싶고 굴 다음으로 나올 내장탕도 궁금해진다.
와인으로 굴의 비릿함을 입가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길 한가운데에로 걸어가 골목길을 카메라에 담는다. 한 번도 걸어가 본 적이 없는 구시가지 도심 골목길이 살아서 내게 말을 걸어온다. 점심 식당 바로 맞은편 식당도 근사하기는 마찬가지다. 그곳에서도 소 내장 요리를 팔지는 모르겠어도 식당 외관만큼은 근사하다. 두 집 다 서까래를 이용하여 반 목조 주택인 꼴롱바쥬 양식으로 지은 건물이라서 더 다감하게 다가온다.
소 내장 요리는 근사했다. 화합을 이룬 적포도주의 맛과 향도 근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피노 누아나 메흘로, 소비뇽은 안심스테이크에만 어울리는 게 아니다. 짧조롬한 국물이 있는 소 내장 요리는 달아난 입맛을 되살려주기에 충분한 흥분마저 이는 자극제이자 촉매제였다.
질긴 맛이 감칠맛 나는 소 내장은 너무도 부드럽고 위가 모처럼 편안해질 것 같은 예감이 온몸에 퍼지는 느낌이다. 아내는 징그럽다고 입에도 안 댔지만, 소 부속물이 이렇게 맛있을 줄은 고향을 떠나 처음인 것처럼 나를 흥분케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미리 이야기한 바처럼 노르망디는 해물요리가 전부가 아니라 육고기 역시 뛰어난 입맛을 자랑하는 축산업의 메카이지 않은가? 기욤이 태어난 활래즈의 기브레 장터는 소시장으로 유명하고 이 부근까지 찾아와서 소 부속물 요리를 먹지 않는다면 뭘 먹겠다는 요량인가?
잘 요리한 음식은 맛을 돋우고 우리의 잃어버린 옛 맛을 되살려준다. 재료를 잘 다룰 줄 아는 셰프는 나름의 레시피를 창조한 장인에 가깝다. 더군다나 잘 차려진 식탁은 미감을 황홀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그래서 훌륭한 음식을 들다 보면 ‘세상 살맛 난다’는 표현이 툭 튀어나오는 법이다.
여행의 기쁨은 이런 소소한 것들이 한데 모여 여행지에서의 웅대한 화음으로 변화한다. 그래서 나는 여행이 즐겁고 내가 기획한 여행에 뛰어든 아내가 사랑스러우며 여행 내내 함께 하는 동반자이자 반려자의 맞장구가 반갑기만 하다.
한 끼의 식사가 행복하게 끝났다. 저녁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잘 차려진 음식을 들었으니 저녁 걱정은 할 짓이 못된다. 다음 행선지인 성곽으로 오르는 일만 남았다. 하루 종일 지치지 않고 곁을 지키고 있는 아내처럼 바닷가로부터 다감한 바람이 불어온다. 비구름이 물러가고 온화해진 덕분에 때늦은 점심 식사마저 흥겹다. 하루가 참 길다 싶은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