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의 바다

몽생미셸 가는 길 220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위스트레암의 등대


갑자기 기욤의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캉은 바다에 면한 도시다. 북동쪽으로 14킬로미터만 가면 바다가 나온다. 이른바 위스트레암(Ouistreham) 앞바다다. 1944년 6월 6일 새벽을 기하여 일제히 펼쳐진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다섯 해안 가운데 한 곳인 스워드 비치(Sword Beach)라 명명된 이곳은 주민이 1만여 명이 채 안 될 정도로 자그마한 바닷가 마을이다. 그런 연유로 202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 80주년 행사가 거창하게 거행된 곳이기도 하다. 외국 정상만 19개국에서 참가했으니 성대했으리란 건 미루어 짐작이 간다.


디데이(D-Day), 매년 6월 6일이 되면 이곳 바닷가에서 성대한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식이 거행된다.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 기념비. 마리 아나이 티에리(Marie Anaïs Thierry) 사진.


기욤의 바다를 보기 위해서는 위스트레암으로 가야 한다. 대서양이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해협을 프랑스인들은 망슈(Manche) 해협이라 부른다. 이른바 바다가 소맷자락 같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위스트레암 항구에서는 영국의 포츠머스를 오가는 페리와 크루즈도 볼 수 있다. 위스트레암은 페리를 타고 영국으로도 떠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영국 여왕도 생전에 포츠머스에서 배를 타고 프랑스로 온 적이 있다. 영국의 해안 도시 포츠머스 역시 6월 6일이 되면 영국 국왕이 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리는 장소다.


캉에서 위스트레암까지는 셔틀버스가 운행한다. 거리가 짧으니 관광객을 실어 나르기 위해 고민한 결과다. 버스를 타면 맘 놓고 차창 밖 풍경을 실컷 즐길 수 있기에 이보다 더 좋은 교통수단은 없다.


캉과 위스트르앙 사이를 오가는 셔틀버스를 이들은 나베트(Navette)라 부른다.


바다에 도착하면 기욤을 만날 수 있을까? 천 년 전의 역사적 인물을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을까? 고민은 접어두고 먼저 바다로 달려가야겠다.


위스트르앙에 소재한 한 호텔의 인터넷 사이트 홍보용 사진이 기욤의 바다를 멋지게 품고 있다.



캉의 포구 위스트레암
Ouistreham



기욤이 아베 오담므(Abbaye aux Dames)의 번영을 기원하는 뜻에서 캉의 포구인 위스트레암에 교회를 하나 짓는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아베이 오담므(Abbaye aux Dames)의 첫 번째 수녀가 장수하다 1113년에 이르러 죽음을 맞이한다. 그녀가 바로 공작 작위를 승계한 기욤 공작의 딸 세실이다.


‘캉의 부인(Madame de Caen)’으로 불린 수녀는 시골에 250헥타르에 이르는 밭과 집을 소유했다. 또한 물레방앗간과 커다란 화덕이 딸린 가마와 고기잡이 때마다 바치는 세금을 징수하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 예로 들어 그녀는 주민들로부터 1년에 3천 마리의 장어와 청어 10마리당 1마리씩을 징수했다.


위스트레암이란 명칭은 원래 ‘웨스터 햄(Wester Ham)’에서 유래한 말로 오흔느 강 하구를 오르내렸던 항해사들이 서쪽에 위치한 마을을 가리킬 때 사용하던 용어였다. 5세기 때부터 이 용어가 쓰였다는 사실은 기욤의 시대가 되면 이 마을이 번영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 정복은 이에 대한 신호탄이었다. 이제 위스트레암은 왕성한 경제활동을 시작하는데, 기욤의 형제인 오동 주교는 100척에 달하는 선박 건조를 장담하고, 위스트레암과 베누빌 사이 여러 군데에 선박 제조소를 건설했다. 이로써 오흔느 강물을 따라 통나무를 실은 배들이 수없이 오갔다.


영국 정복 이후로는 섬과 대륙 사이가 중단 없는 관계로 들어섰다. 상업 활동은 주로 수출로 이어졌는데, 마침내 웨스트민스터, 브리스톨, 카르디프로 이어지는 수출길이 열렸다. 실제 캉에서 채석한 아름다운 흰빛을 띤 석회암들이 수출되어 영국 땅에 세워진 많은 건축물들의 건축자재로 사용되었다. [1]



위스트레암의
성 삼손 교회
Saint-Samson



기욤은 위스트레암의 번영을 기원하는 뜻에서 캉의 아베이 오담므와 같은 성 삼손 교회를 지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정면부분은 이 지방에서 보기 드문 아름다운 장식들로 수놓아져 있다.
성당 내부 모습. 천 년을 버텨온 교회답게 육중한 몸체를 자랑한다.


돌(Dol)의 주교인 삼손 갈루아는 그의 이름을 딴 교회를 세웠다. 이 건축물은 1180년에 축성되었다. 노르망디에서는 가장 장식이 많은 박공 합각머리 장식을 보여준다. 성당은 3층 구조로 되어있고 많은 장식들이 눈에 띈다.


4개의 절단된 막대기 모양의 기둥으로 높이 솟은 정문은 다시 4개의 둥근기둥 천장을 떠받들고 있는데, 이는 노르망디 건축에서 흔히 발견되는 양식 가운데 하나다. 1층의 반원형 둥근 기둥으로 이루어진 천장과는 달리 2층의 반원형 둥근 천장은 폭이 더 좁아졌고 색유리창도 나있다.


종탑은 12세기 말에 세워진 것이다. 바다를 향해 서 있는 이 종탑이야말로 오랜 세월을 종탑과 등대로서의 두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3층 성당의 후진은 최근에 테라스용 부속 건물로 인해 증축된 것이다. 교회 내진 아랫부분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서로 포개놓은 듯한 아케이드 형태의 3층 구조로 구성되었다. [2]



기욤의 시대에
노르망디 전역으로
로마네스크 예술이 퍼져나가다



노르망디인들의 새로운 예술은 11세기에 노르망디 지방에서 출현하였다. 기욤은 이 새로운 예술을 선도한 선구자였다. 이 예술은 그러나 무에서 창조되지는 않았다. 이미 카롤링거의 유산을 이어받은 베네딕도 수도사들에 의해 쥬미에쥬와 몽생미셸에 수도원이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le-mont-saint-michel-mascaret, David Daguier.jpg 르 몽생미셸(Le Mont Saint Michel), 다비드 다귀에흐(David Daguier) 사진.


노르망디 공국에는 또한 전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교회들이 존재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 생 피에르 쉬흐 디브(Saint-Pierre-sur-Dives) 근처에 위치한 뵈유퐁(Vieux-Pont) 교회와 노레 앙노쥬(Norrey-en-Auge)의 교회를 들 수 있다.


Église Sainte-Anne de Norrey-en-Auge.JPG
Église Saint-Aubin de Vieux-Pont-en-Auge.jpg
생 피에르 쉬흐 디브(Saint-Pierre-sur-Dives) 근처에 위치한 뵈유퐁(Vieux-Pont) 성당과 노레 앙노쥬(Norrey-en-Auge) 천주교회.


모든 주교좌 도시에는 대성당이 착공 중에 있었고 곧 완성될 예정이었다. 리지외 대성당은 1055년에 완성되고 꾸땅스는 1056년에, 루앙은 1063년에, 바이외는 1077년에 완성될 참이었다. 비록 대부분 교회들이 고딕의 시대에 부분적으로 재건축되기는 했지만, 노르망디 수도원 성당들은 여전히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5-1 Cathédrale de Lisieux.jpg
5-2 Cathédrale de Coutances, Photo ChBougui, Wikipedia.jpg
5-3 Cathédrale de Rouen.jpg
5-4 cathédrale de bayeux.jpg
상단 왼쪽부터 리지외 대성당(1055년), 꾸땅스 대성당(1056년), 루앙 대성당(1063년) 그리고 바이외 대성당(1077년)이 차례대로 완성되었다.


예를 들어 베르내가 그렇고, 1066년에 지어진 캉의 삼위일체 성당, 1067년에 완성된 쥬미에쥬와 생 피에르 쉬흐 디브 성당, 1077년에 완성된 캉의 생테티엔느 성당, 1098년에 지어진 세리지 라 포레와 르쎄 그리고 보쉐르빌 성당이 그러하다.


6-1 Abbatiale Notre-Dame de Bernay (Eure).jpg
6-2 Abbaye aux Dames, Caen.jpg
6-4 Abbaye de Saint-Pierre-sur-Dives.jpg
6-3 Jumieges.jpg
6-6 Abbatiale de Cerisy-la-Forêt.jpg
6-5 Abbaye aux Hommes, Eglise de Saint Etienne, Caen.JPG
6-7 Abbaye de Lessay (département de la Manche).JPG
6-8 Abbaye Saint-Georges de Boscherville.jpg
왼쪽부터 베르내 수도원 성당, 캉의 삼위일체 성당, 생 피에르 쉬흐 디브 성당, 쥬미에쥬 성당, 세리지 라 포레 수도원 성당, 캉의 생테티엔느 성당, 르쎄 그리고 보쉐르빌 성당.


이러한 노르망디의 대건축물들은 십자형 교회의 좌우 측랑 천장 부분에 교차형 지붕 덮개 위로 솟아오른 채광탑(tour-lanterne)과 함께 실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이들 교회들은 절제된 수수함과 간결함을 보여주면서 오직 건축상의 라인만 도드라져 보인다.


장식은 거의 부재한다. 그 어느 건축물보다도 베네딕도 수도원의 건축을 지향했던 교회 내부는 간혹 좌우 측랑과 연결된 후진 쪽의 회랑과 후진 둘레의 제단들로 구성된다. 또한 두꺼운 벽체 윗부분에 짧지만 한 바퀴 돌 수 있는 회랑과 천장 2층에 특별석을 갖추고 있다.


영국에서 기욤이 국왕이었던 시절 뒤람에서는 새로운 양식의 건축물이 출현했다. 서로 교차하는 첨두형 궁륭의 양식이 바로 그것이다. 프랑스에서는 1098년 르쌔(Lessay)에서 처음 모습을 선보였다.


Abbaye de Lessay, Voûtes de la nef.JPG 프랑스에서는 1098년 르쌔(Lessay)에서 처음 모습을 선보인 첨두형 교차 천장.


1106년 기욤의 아들이자 영국 왕이었던 앙리(헨리) 1세 보클레흐는 아버지 형제인 로베르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화재로 불타버린 바이외 대성당을 새로 짓는데 일조한다. 앙리(헨리) 1세는 노르망디 공작이기도 했기에 화재를 당한 대성당 재건축 비용을 모두 자신이 부담했다.


Abbaye de Lessay, Le chœur de l'abbatiale, photo Giogo, Wiki.JPG 르쌔(Lessay) 수도원의 위로 들어 올려진 천장 부분. 1098년에 건축된 이와 같이 서로 교차하는 첨두형 궁륭(천장)은 앞으로 다가올 고딕 예술을 예고하는 듯하다.


이와는 달리 브쌩의 대 건축물들 대부분은 1106년 이후에 지어진 것들이다. 이 시기부터 시골 교회가 급증했다는 사실도 언급해야 할 것이다.


시골마을에 새롭게 들어선 교회들은 장식과 새로운 장식적 테마에 대한 욕구가 반영되었다. 거꾸로 바뀐 십자 모양 장식과 타원형 장식[3]에 대한 심취는 ‘노르망디인들의 자질을 한층 드높인 새로운 예술에 대한 출현을 열렬이 환영한다는 사실을 증표 한다.


비록 노르망디가 로마네스크 예술의 발상지이긴 하지만, 그 어느 지역에서도 가능하지 않았던 예술과 교회 건축의 동시적 폭발이 바로 노르망디에서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4]


6-7 Abbaye de Lessay (département de la Manche).JPG 르쌔(Lessay) 베네딕도 수도원 성당. 아에 뒤퓌(Haye-du-Puits)의 남작들에 의해 1056년에 창건된 노르망디 지방의 로마네스크 예술의 걸작품이다.



기욤의 바다



Ouistreham-Sylvain_Guichard.jpg 텅 빈 탈의실이 지는 해를 향해 서있는 풍경,


기욤의 바다에 서있다. 해가 진다. 가끔은 망연히 노을을 바라보고 싶을 때가 있다. 빌레흐빌에서도 그러했고 트루빌 쉬흐 메흐 그리고 도빌에서도 한참을 노을에 물드는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망슈 해협 너머로 지는 해, 기욤도 이 지는 해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두 왕국을 오가며 강건함을 뽐내던 정복왕도 결국 지는 해였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무상한 것, 이 많은 역사를 이뤄놓고 그는 무대 뒤로 쓸쓸히 퇴장하고 말았다. 영웅이 주연이었다 할지라도 그 역시 인생무상을 절감하면서 저세상으로 떠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마치 용맹스런 사자와도 같은 남편 곁을 지켜주던 마틸드는 기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마틸드를 먼저 떠나보내고 더욱 고독해진 사자는 외로움으로 몸부림치다 그 역시 저세상으로 향했다. 차라리 그녀보다 먼저 그가 눈을 감았다면 말년의 외로움은 덜했을지도 모른다. 인생은 결코 뜻대로 되는 법이 없다. 정복왕 기욤(윌리엄)이 영국을 오간 바다를 망연히 바라보자니 나 역시도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운명까지도 떠올려본다.


바다로 해가 진다. 노을이 붉다. 흐릿한 날씨였다가도 금방 개는 바닷가의 하늘답다. 인생은 또한 전변하는 것이라 했던가? 차라리 저 붉은 노을처럼 인생도 선홍빛 보랏빛으로 불타오를 때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건 소멸이 아니라 죽음도 아니요 오히려 소생이고 부활일 수 있지는 않을까?


서걱대는 바람의 생각 사이로 갈매기가 날아다닌다. 순간 모래알이 일제히 떠오르면서 바다 쪽으로 날아간다. 세차게 부는 바람이 심상치 않다. 오늘 중에 이 바닷길을 따라 바이외까지 가야 한다. 거기서 다시 기욤을 만나야 한다.


세계에서 제일 길다는 태피스트리가 거기에 있다. 바이외(Bayeux)의 <자수 박물관>에. 길이가 70미터에 달하는 기욤의 대서사시가 수놓아진 자수가 그곳에 있다.


바람이 아내와 단둘이 서있는 쪽으로 분다. 성긴 머리칼에 스며드는 소금기에 놀란 입술이 파르르 떤다. 유월에 한기를 느끼는 노르망디의 바닷가에서 기욤의 바다를 바라보며 우리 두 사람 서로의 온기에 의지한 채 걸어간다. 끝 모를 길을, 끝 모를 역사 속을 한없이 마냥 한없이.


Ouistreham, Coucher de soleil sur la plage, photo FesqMichaud, Wiki.jpg 저물어 가는 위스트레암 바닷가. 아름다운 회상을 위해 누군가의 사진이 고마울 때가 있다.






[1] 미셀 우흐께, 질르 피바흐, 장-프랑수아 세이에흐, 이 프랑스인 세 사람이 풀어간 역사 기행서 『정복왕 기욤의 발자취를 따라』, 오렢(OREP) 출판사, 파리 참조.


[2] 위의 책 참조.


[3] 달걀 모양의 무늬가 가로 세로 비스듬히 연달아 이어진 장식.


[4] 위의 책 참조.





keyword
이전 09화기욤의 성채에 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