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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몽생미셸 가는 길 258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파리 몽파르나스 기차역 © 오래된 타자기



기차에 오른다. 파리의 몽파르나스 역을 출발한 기차는 종착지인 그랑빌까지 3시간 이상을 달려갈 것이다. 이름도 생소한 마을들을 거쳐 코탕탱(Cotentin) 반도 저 서쪽 남단 그랑빌(Granville)까지 3시간 반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아침 일찍부터 여행용 가방을 꾸리는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자니 사흘간의 여정이 무얼 의도하는지 달리는 열차 안에서 차근차근 생각해 봐야겠다.


프랑스는 열차가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프랑스 열차는 대한민국의 남북을 관통하는 테제베(TGV) 뿐이겠지만, 이들은 인터시티를 비롯하여 테르와 꾸셰뜨(침대차)까지 참 다양한 열차들을 운행하고 있다.


저물녘 막세이(Marseille) 역에서 숨을 고르는 테제베(TGV). © 오래된 타자기


파리에서 그랑빌(Granville)까지는 테르(TER)가 운행된다. 마치 고속전철(RER) 같은 분위기의 독특한 실내 인테리어 디자인이 돋보이는 열차는 그러나 장시간 여행하는 이들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가까이 이동하는 출, 퇴근자들은 편리하고 실용적일 뿐 아니라 깔끔해서 좋은 이 기차를 즐겨 애용한다.


지방마다 테르(TER)는 각양각색이다. 프랑스 철도청 홈페이지 화면 사진.


마주 앉는 자리가 있는가 하면, 혼자 고독하게 유리창 밖을 바라보는 자리도 있다. 화장실은 열차 중간에 오직 하나밖에 없으니 오래 기차를 타고 갈 여행자라면 출발지에서 미리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테르(TER) 안의 화장실, 프랑스 철도청 홈페이지 화면 사진.


중간중간 기차가 정차하는 역마다 기차에서 내리고 다시 타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 테르(TER)라는 기차에는 나 같은 여행자는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다. 눈에 띄지 않는 여행자 대신 마치 파리 교외에 사는 주민들이 이웃 동네로 볼 일 보러 가기 위해 타는 기차처럼 푸근하고 정겨운 모습이다.


인터넷 저널 <레퓌블리캔 로렌(Republicain Lorrain)>이 승객들로 빽빽이 들어 찬 기차 안을 꼬집은 기사에서 발췌한 사진.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나 같은 여행자도 있다. 여행자는 옷차림부터가 다르다.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고 시선은 내내 창밖을 향하고 있다. 선반 위에 올린 가방 속에는 갈아입을 속옷과 아주 간단한 세면도구가 있을 뿐이다. 그는 옷 한 벌로 여행을 한다. 갈아입을 옷도 신발도 없다. 그래도 괜찮다. 매일 샤워를 하니 속옷만 갈아입으면 된다. 그러나 결국 어느 여행지에서 새로 갈아입을 옷을 구입할 것이다. 고집은 때때로 불필요한 소비를 불러온다!


사진은 아이들 여행용 가방 싸기, 프랑스 블로그 Action Sejours에서 발췌한 사진.


가방 속에는 묵직한 노트가 들어있다. 여행자는 매일 밤 여행 일지를 작성할 테고, 그림까지 그려 넣을 것이다. 나 같은 이라면 잉크병을 들고 다니며 펜촉에 잉크를 묻혀 날카로운 펜으로 노트를 빽빽이 채워갈 것이지만, 대부분 여행자들은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한밤중 고요한 숙소에서 컴퓨터 좌판 두들겨 대는 소리를 낼 것이다. 누가 듣기라도 할라치면 불면의 밤을 보낼 이 잔혹한 타이핑은 새벽까지 이어진다.


어둠을 밝히는 건 불빛만이 아니다. © 오래된 타자기


두시럭 대는 소리에 창밖에서 졸던 비둘기가 화들짝 놀라 어두운 밤 허공을 향해 날아갈지도 모르겠다. 소음은 노곤한 여행자가 지쳐 잠들 때까지 이어진다.


뜬 눈으로 지새운 밤이 다하고 새벽은 항상 힘겹게 찾아온다. © 오래된 타자기


여행자는 일기를 쓰듯 매일매일 노트를 채워갈 것이고, 입장지의 관람권도 갈피에 꽂아놓을 것이다. 입장지 티켓에는 그가 방문한 곳과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을 믿고 여행을 마친 이는 다시 기억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기억마저 가물가물한 어느 날의 노트, © 오래된 타자기


노트엔 수줍은 고백도 있다. 오다가다 만난 어느 상냥한 이에게서 받은 친절을 잊을 길 없어 노트에 대신 감사의 인사말을 적어 넣을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백에는 어느 모퉁이에서 마주친 이름 모를 꽃과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곶에서 마주한 바람, 밀물져 오는 파도를 타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다시 바다를 향해 뛰어드는 갈매기 떼, 길을 밝혀주는 이정표, 수없이 비와 바람을 견디며 홀로 외롭게 서있는 등대, 저 먼바다 너머의 세상엔 또 누군가 여행자를 닮은 사람이 고독하게 길을 걸어가고 있을 구릉이 펼쳐져 있음을 기록해 갈 것이다.


바위 곶 등대(Phare à la Pointe du Roc), 그랑빌(Granville), © Keig33, 노르망디 관광청 홈페이지.


여행의 시작은 그처럼 여행의 끝을 향해 달려간다. 힘차게 또는 숨 가쁘게 뛰어가는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생각으로, 무구한 얼굴빛으로, 가끔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땀을 훔칠 때도 있다. 내딛는 발걸음은 항상 가볍고도 묵직하다. 무언가 꼭 발견하고 말리라는 믿음으로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다가도 놀라 소스라쳐 바라보는 종탑, 부둣가 난전에서 한 끼를 때우면서, 발품을 팔려다 지친 피곤해진 다리를 쉬고자 앉은 공원의 벤치에서 먹다 남은 빵 부스러기들을 비둘기들에게 뿌려주는 한가로운 한낮의 휴식마저 기록한다.


무언가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는 무얼 찾고 있는 걸까? © 오래된 타자기


낯선 풍경들, 낯선 집들, 낯선 거리들만큼이나 처음 대하는 사람들에게서 받은 따뜻한 환대와 친절을 잊을 길 없어 낯선 곳을 걸어가는 여행자의 발걸음은 결코 서툴지 않다. 때로는 수사가 걸치고 있는 수단의 기다란 옷자락처럼, 바랑을 맨 철학자의 길게 자란 덥수룩한 수염처럼, 돋보기를 고쳐 쓰는 금석학자의 반짝이는 확대경처럼 노련하고 민첩하며 날카로움마저 숨겨져 있다. 어느 비문을 더듬어가다가 역사의 한 자락마저 읽어가는 노련한 눈매에는 참다운 세상을 향한 아련한 꿈이 서려 있다.


나는 그걸 안다. 그들의 노력과 열의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을 안다. 여행자의 고단한 잠이 쏟아지는 한밤중에 불현듯 일어나 창밖으로 걸어 나가는 열정의 꿈과 깨알 같은 속 사정을 안다. 설사 이제까지의 낯익은 풍경과는 다른 빛과 공기가 쏟아내는 낯선 풍경과 마주쳐도 이 세상 하나의 우주 속의 한 세상임을 깨닫기까지 한다.


열려있는 돌문을 지나 바다로 나선다. 생말로(Saint-Malo)의 열려있는 대서양. © 오래된 타자기


이해의 실타래를 풀어가며 읽어가는 여행자의 거칠고도 숨 가쁜 기록에는 그렇듯 수많은 풍경과 길과 집과 사람들의 정겨움마저 묻어있다.


© 오래된 타자기


밤을 밝힌 등불처럼 그가 이끄는 대로 걸어간다. 그 끝이 낯선 곶의 단애여도 힘겹게 한 발자국 다시 한 발자국을 내딛는다. 여행과 순례가 하나가 되는, 순례와 답사가 하나로 합쳐지는 길 위에서 나는 여행자의 숨결이 된다. 호흡이 된다. 그가 내쉬는 한숨의 깊이로 내려앉아가다가도 그가 떠올린 곳으로 다시 힘차게 비상하는 잘 여문 꿈의 상상 한 자락을 펼쳐 든다.


여행자가 보는 지도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의 꿈들마저 묻어 있다. 역사적 사건들이 교차하는 곳임에도 보통 사람들의 일상의 혼곤함마저 새겨져 있다. 목적지를 가리키는 이정표에 갇힌 일상의 고단함을 이기고 매일매일을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마저 담겨 있다. 그것을 헛되이 여기지 않고 가슴에 쓸어 담고자 시간을 할애하여 시장 한 모퉁이에서 늦은 점심을 들고, 가게들을 지나치며, 교회 앞 광장의 카페에서 쓰디쓴 에스프레소 한 잔에 남은 오후를 저어가기도 한다.


성탄절을 앞둔 춥고 쓸쓸한 풍경. © 오래된 타자기
성탄절이 가까워 오니 추운가 보다. © 오래된 타자기


여행자의 옷깃에는 방랑의 어쭙잖은 주름 자국조차 없다. 정처 없이 흘러가는 구름만이 아니라,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만이 아니라, 때로는 독설을 품을 때도 있다. 혹여 때로는 유머에 넘치는 아주 여린 감성을 풀어놓는 여운마저 길게 느껴진다.


모처럼 여행자의 길로 나선, 모처럼 자동차를 놔두고 기차에 몸을 싣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세상의 입구를 향해 걸어 들어가는 겨울, 여태 아내 손의 온기를 잊지 않은 덕분에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볍다. 닫힌 문의 육중한 무게를 밀고 안으로 들어선 만큼 제단을 향하여 축복의 날들을 되살리기 위한 미사가 집전되는 동안 순례자의 고행과 수행의 참다운 의미를 되새기는 저 깊고 푸른 밤길을 걸어가는 순례자의 눈빛으로 둥근 순환형 회랑을 향한 초입을 향해 조심스레 발자국을 뗀다. 걸음마다 축복이 내려지길 소망하면서 천천히 그리고 간절히!


열려있는 문 © 오래된 타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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