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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흔적

몽생미셸 가는 길 259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하늘에서 내려다본 그랑빌, 파코(V. Pacaut) 사진.



꿈을 꾸고 있었다. 또다시 낯선 곳을 여행하는 꿈이 아니라 한번 지나친 길을 떠올렸다. 꿈은 잘 여문 상상처럼 나래를 펴고 날아오를 준비를 한다.


늘 꿈을 꾼다. 꿈은 어딘가를 정처 없이 헤매는 떠돎이 아니라 낯선 눈으로 바라보는 익숙한 풍경으로의 침잠이다. 수영을 못하는 내가 바다를 꿈꾸는 것처럼 꿈이 늘 허망하게 끝날 때도 있다. 흥건한 땀까지 동반하면서 비에 젖은 듯 축축한 악몽일 때도 많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바다를 꿈꾸고 바다로 나 있는 길을 떠올린다. 파라솔 대신 집채 만한 파도가 해안의 방파제를 후려치는 순간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그랑빌(Granville)의 방파제를 후려치는 파도, 자비에 라슈노(Xavier Lachenaud) 사진.


실제 그랑빌에서 밤새 파도가 방파제를 후려치는 소리에 잠 못 이루기도 했다. 초여름 밤인데도 비는 구질구질 세상을 향해 흩뿌리고 밤새 파도는 방파제를 넘나들었다. 내 처음으로 찾은 그랑빌은 도저히 기차가 닿는 곳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작은 어촌이지만, 그러나 그곳은 또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역사를 품은 도시이기도 했다. 언덕 위 성채와 옛 시가지도 그렇거니와 맞은편 바다에 면한 언덕 위 호텔에서 바라보는 바다 역시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곳을 한번 거쳐간 뒤로 늘 그곳을 다시 찾는 꿈에 시달렸다. 단박에 이루어질 수 없는 꿈처럼 자꾸만 뇌리를 떠도는 기억 속의 포구가 어른거리기만 했다.


안절부절, 처음 찾았을 때의 망연하게 호텔 테라스에서 바라보던 바다, 밤새도록 해안의 방파제를 후려치는 파도 소리가 공명하던 곳을 내 다시 찾기는 어려울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던 기억 속에 마음 한 갈피에 접어둔 여행자의 성소와도 같은 곳이었을 따름이다.


그러나 마침내 그곳에 갈 날이 왔다. 아내의 손을 잡고 여행용 가방을 끌고 이번에는 기차를 타고 드디어 꿈꾸던 해안가의 마을에 당도하는 긴 여행을 시작했다.


마침내 아내의 손을 잡고 그랑빌 앞바다와 마주했다. © 오래된 타자기


추억 속의 그랑빌을 떠나오던 날 아침, 맑게 갠 하늘은 몽생미셸을 거쳐 캉을 지나 르 아브르와 에트르타까지 이어졌다. 초여름의 싱그러운 햇살은 옹플뢰르에서 잠시 뇌우로 바뀌긴 했지만, 계절은 역시 여름이었다.


비에 젖어도 상큼한 날씨, 으젠 부댕이 그린 유화처럼 흐릿한 풍경이 이어졌지만, 대서양 다운 드넓은 수평선과 화창한 날씨는 어느 것 하나 마음먹은 대로 제어하기조차 어려웠다. 도빌에서 만난 돌풍과 옹플뢰르 포구에서 마주친 소나기조차도 앙드레 지드가 잠들어 있는 작은 마을의 공동묘지에 쏟아지는 여름의 햇살을 막진 못했다. 보꼬뜨(Vaucotte) 벼랑아래 넘실대는 파도도 잠재우지는 못했다. 길의 어중간한 지점에서 나는 다시 에트르타의 해안을 바라보았다. 그때 불쑥 밤새 걸어 다닌 그랑빌의 비 내리는 해안이 끼어들었다.


빗물에 축축이 젖어가던 풍경, © 오래된 타자기


나는 내 인생에 그림을 그리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내가 바라는 것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고도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순간이 도래했다. 나는 겸허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고 마음이 닿는 대로 그림을 그려 나갔다.


© 오래된 타자기


이 작은 수첩에 그린 그림도 어찌 보면 마음이 동한 풍경에 지나지 않는 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한번 스쳐 지나간 풍경이지만,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수첩 안에 그걸 담고자 고심했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여행수첩에 풍경을 담고 무언가를 기록하는 일을 되풀이한 것처럼 단숨에 스케치한 것에 비하면, 글은 참 어렵게 써내려 간 것 같다. 여러 번 찾아간 수도원 폐사지나 성당에서조차 왜 그토록 오랫동안 제단화만 바라보았을까, 바라보아야만 했을까 내 스스로에게 되묻고 싶을 만큼 가는 곳마다 오래된 믿음의 성소를 찾아다닌 것 같다.


그때마다 성서적 논리가 아니라 그 어떤 논리마저도 내 인생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나름의 판단 때문이었을까? 자유로운 상상은 우리를 저 멀리에까지 인도한다. 그 먼 곳에서 맞닥뜨리는 인생 또한 결코 품위 없거나 죄악시될 수는 없다.


하지만, 저 많은 탁월한 예술가들이 포기하지 않은 성서적 진리를 교회 안에서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나의 불찰은 용서될 수 없다. 천만다행한 일은 교만과 이기심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니었다는 점, 제단화가 지닌 교훈의 의미로부터 내 스스로 외면하고자 한 방종과 방황의 결과가 아니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상징과 교훈과 비유들로부터 마치 또 다른 진리를 표현해 주는 듯한 19세기 낭만주의에서 20세기의 초현실주의에 이르기까지 내 어리둥절한 세계관이 곤경에 처하지 않도록 세심히 스스로를 인도하고 있었다는 점, 문학 또한 혁명의 이데올로기에 침윤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추스르고 서사의 굴곡에 왜곡됨 없이 온전히 세계를 바라보는 일에 더 골몰해 있었다는 점, 그 때문에 여기까지 나를 이끌어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 20세기 초현실주의로부터 명명할 수 없는 21세기 문학과 예술에 내 스스로 자문자답하는 이 형식마저 버겁게 느껴지는 것은 대체 문학과 예술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느냐 하는 최초의 원론적인 물음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과연 나는 무얼 이야기하고 싶어 하며 무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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