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260화
[대문 사진] 언덕 위에서 바라본 그랑빌 바다, © 오래된 타자기
대서양의 포구 그랑빌(Granville)로 가는 기차는 몽파르나스 역에서 출발한다. 나는 그 몽파르나스 역 바로 위에 자리한 고층 아파트에 산다. 14층 아파트에서 바라보는 파리 남쪽 풍경은 서울과 꽤 닮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로 내려가면 기차역 지붕 위 공간, 그리고 계단을 몇 걸음 더 내려가면 기차역의 플랫폼에 이른다. 몽파르나스 역은 파리의 7개 역 가운데 서쪽 방향 노르망디와 브르타뉴로 가는 기차나 역시 남서쪽 방향인 보르도와 험준한 피레네 산맥아래 위치한 루르드로 향하는 애틀랜틱 테제베(TGV Atlantique)가 출발하는 시작점이다.
출발하기 전 또 한 점의 수채화를 완성했다. 그랑빌로 가는 내 상상의 여정에 있어서 분기점이 되는 생 말로의 해안을 그린 수채화다.
인생은 추억할 수 있어서 의미롭기까지 하다. 몽생미셸에서 깡깔(Cancale)을 거쳐 생 말로(Saint Malo)를 향하고 있지만, 거꾸로 생 말로에서 몽생미셸을 거쳐 그랑빌에 이르는 길도 재밌다.
밋밋한 구릉을 지나 느닷없이 그랑빌에 도착하여 항구를 한 바퀴 돌아본 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호텔에 여정을 푸는 이 느닷없는 침입에 창가로 날아든 갈매기떼들도 후드득 날아가는 긴장된 늦은 저녁, 호텔 저녁 식당 유리문 너머의 바다는 느닷없이 이방인을 향하여 포효하고 방파제를 휘갈기는 파도는 마을 안까지 밀려들 기세다. 을씨년스러운 저녁, 이런 깎아지른 단애에 호텔을 지은 것도 기이하지만, 방문객은 오히려 바다를 느긋하게 바라보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처음으로 발을 디딘 바닷가 마을, 수없이 근방을 떠돌았지만 맘먹고 찾아온 대서양 가의 그랑빌에서 딱 하룻밤만 보내고는 다시 찾으리라 생각했을 뿐, 뜻대로 되지 않다가 작정하고 다시 찾아온 마을이건만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자니 저 멀리 아스라이 거리로 밀려난 지나온 길들 만이 아른거린다.
인생에 있어서 그렇듯 파란만장한 기억을 떠올릴 도시가 또 있던가? 내가 찾아간 생 말로는 그처럼 천 개의 표정을 지닌 도시였다. 바다도 여러 겹에 쌓인 모습이었고 늘 새로운 얼굴로 나를 반기고 떠나보낸 해안가의 마을이었다.
어느 여름날의 바닷가는 그렇듯 내게 이 세상의 가장 화려한 빛의 실루엣을 펼쳤다. 나는 그것을 수첩에 담고자 안간힘을 썼다. 그 바람에 정말 기억해야 할 것들을 놓쳤는지도 모르겠다. 파도가 잔잔한 걸 보니 이제 세상에 깃든 밤도 잠잠해지리라. 나는 그것을 안다. 어리석게도! 그랑빌에서 생 말로까지의 밤바다는 그러나 밤새 울부짖을 것이다. 저 아름다운 노을까지도 무색하게 만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