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빌에서

몽생미셸 가는 길 261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그랑빌 메르퀴르 호텔 © 오래된 타자기



열차는 파리 몽파르나스 역을 출발하여 서서히 파리 도심을 빠져나간다. 역 주변의 건물들이 차례차례 뒤로 밀리면서 그랑빌까지 3시간 30분가량의 긴 기차여행이 시작된다.


열차가 파리 인근의 베르사유 역을 지나치면서 콘크리트 건물들은 더 이상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끝없이 펼쳐진 목초지만이 유리창을 가득 채운다. 황량한 들판에 무법자처럼 들어선 검은 숲이 간혹 시야를 어지럽히다가 흰 소떼가 어슬렁거리는 목초지가 상큼하게 두 눈을 간지럽힌다.


노르망디 지방의 끝없이 펼쳐진 숲과 목초지와 농지가 뒤섞인 평원인 보카주(Bocage).


기차는 정시에 몽파르나스 역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그랑빌. 내 앞에는 30년 동안 나를 지켜준 동반자가 앉아있다. 아내는 흥분하는 법이 없다. 다소곳이 창밖을 내다보고만 있다. 그러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를 향해 미소 짓는다.


여행 중에 아내는 먼저 내게 말을 거는 법이 없다. 생각이 깊은 탓이리라. © 오래된 타자기
Ma chérie-Train de Montenvers.JPG © 오래된 타자기


우리는 이처럼 느닷없이 집을 나서는 충동에 빠진 여행을, 둘만의 평화로운 여행을 즐기곤 했다. 아무런 계획 없이 떠난다 할지라도 특별할 것이 없는 여행조차도 늘 우리에겐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리라는 예감에 익숙해진 탓이었을까?


하여튼 우리는 무상으로 주어진 자유의 순간에 빠져들기를 바랐던 터라 도발적인 기차여행도 나름 즐거우리라 생각했다. 분명 여행은 어떤 식이든지 간에 즐거운 것이고 즐거울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행의 목적지를 기차의 종착역에 해당하는 대서양 끝단에 자리한 ‘소맷자락’이란 뜻의 망슈(Manche) 해협 서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그랑빌(Granville)로 잡은 것이다.


그랑빌의 바닷가 © Keig33


한때 포경업의 중심지였던 이 도시에 한 번 들른 적이 있다. 버스를 타고 도심으로 들어서서 암벽으로 이루어진 바닷가 벼랑에 자리 잡은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파도치는 밤바다로 나섰던 기억, 그 기억의 재구성을 위해 나는 지금 흔들거리는 기차 안에서 추억의 상념에 젖어든다.


하늘에서 바라본 그랑빌 © V. Pacau


파도치는 밤은 쓸쓸했지만 더없이 아름다웠다. 멀리 암산 기슭에 세워진 검은빛 요새는 전쟁의 참상을 일깨워 주기보다는 도시를 아늑히 감싸고 있는 수호의 상징처럼 다가왔다. 나는 그날 밤 돌연 인생의 가장 무서운 파도와 마주쳤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리며 들썩이던 바다. © 오래된 타자기
유리창 가득 빗방울이 번져가던 날의 풍경. © 오래된 타자기


호텔에서 바닷가 해안에 이르는 좁고도 컴컴한 내리막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이 도시가 얼마나 우아하고 기품 있는 도시인지를 전혀 예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붕들 너머로 보이는 그랑빌 성 바울 천주교회. © 오래된 타자기


해가 뜨고 호텔 아침 식당에서 바라본 대서양은 그 어느 곳에서도 마주한 적이 없는 바다였기에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멀리 쇼세 섬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테라스에서의 아침 식사는 황홀하기까지 했다. 나는 그 광경에 다시 취하려고 지금 기차를 타고 달려가는 중이다.


겨울날의 호텔 테라스 너머로 다가온 바다. © 오래된 타자기
여름날의 쇼세(Chausey) 섬 풍경, 조르주(George) 사진.


검푸른 빛의 그랑빌 바다를 다시 찾아가는 중에 온전히 하늘빛을 띠고 있는 바다를 떠올려본다. 기차역에서 숙소까지는 걸어서 30분 거리, 숙소에 도착하면 테라스에 서리라.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 감동을 재현하는 데는 파리에서 5시간이면 충분하다.


건물이든 집이든 어느 것 하나 없이 일제히 바다를 향해 있다. © 오래된 타자기
변함없이 여행객을 맞아주는 메르퀴르 호텔 침실 발코니에서. © 오래된 타자기
호텔 아침 식당을 장식하고 있는 초록 사과와 빨간 사과. © 오래된 타자기


섬세함과 우아함 거기에 기품까지 더한 아르누보의 건축물들이 즐비한 시가지는 나폴레옹 3세 때 진행된 대서양가 해안 도시를 어떻게 개발했는지 당시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우아한 건물의 정체를 알고 싶어 가까이 가보니 호텔이었다. © 오래된 타자기
© 오래된 타자기


기차가 닿을 수 있는 최대 거리인 해안가 마을들에 대한 개발을 서두른 이유는 파리 도심 정비에 협조했던 파리지앵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들이 여름을 보낼 휴양지를 건설하고자 한 것이 일차적 목적이었고, 더하여 디에프에서 비아리츠에 이르는 길고도 먼 대서양 해안가 곳곳에 거점 도시를 건설하고자 한 것이 두 번째 목적이었다.


마을 한가운데에 버티고 선 나폴레옹 3세의 대서양 해안 개발 사업에 뛰어든 그랑빌 초대 시장의 조각상. © 오래된 타자기


이로써 파리지앵들은 기차를 이용하여 지중해보다 덜 덥고 쾌적한 대서양 연안을 쉽게 오갈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대서양 연안 곳곳에 당시 유행하던 아르누보와 아르데코 풍의 저택들을 경쟁적으로 지었다.


포경업의 중심지였던 그랑빌 역시 이런 흐름 속에 있었다. 그랑빌도 이 시기에 개발되었고 파리지앵들의 빼놓을 수 없는 여름 휴양지로 자리 잡았다. 1910년에 개장한 카지노 역시 이 시기에 지어진 대형 건축물에 속한다.


건축가 오귀스트 블뤼장(Auguste Bluysen)이 설계한 아르누보 풍의 건물. © 오래된 타자기


그랑빌의 카지노는 파리에서 활동한 건축가 오귀스트 블뤼장(Auguste Bluysen)이 설계한 아르누보 풍의 건물이다. 바닷가에 세워진 건물은 맞은편 언덕 위에 지은 역사유적이 되어버린 요새와는 묘한 대조를 이룬다. 요새는 루이 14세 때 보방(Vauban)이 건설한 것으로 현재 역사유적이자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건축가는 파리에도 공연장을 하나 짓기도 했는데, 파리 11구에 들어선 렉스(Rex)라는 공연장이다.


오귀스트 블뤼장(Auguste Bluysen)이 설계한 파리 공연장 렉스(REX), 사진은 프랑스 주간지 르 포엥(Le Point)에서 인용.


프랑스 자동차 3대 브랜드의 하나인 앙드레 시트로앵(André Citroën)의 창업주는 건축가에게 자신의 가족들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주택을 도빌 해안가에 지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앙드레 시트로앵의 요청에 따라 지어진 도빌에 지어진 저택은 ‘벌집’이란 이름의 <레자베유(Les Abeilles)>였다.


앙드레 시트로앵이 건축가 오귀스트 블뤼장(Auguste Bluysen)에게 의뢰한 도빌의 별장, ‘벌집’이란 이름의 레자베유(Les Abeilles).


이후에 나는 자동차로 이곳을 한 번 더 찾아갔다. 결국 그랑빌을 세 번 찾은 셈이고 세 번 다 이 도시의 독특한 경관과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이때 바닷가 오귀스트 블래장이 지은 아르누보 풍의 건물 레스토랑에서 맛본 우리의 바지락에 해당하는 플래흐(Plaire) 조개 요리는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고 말았다.


노르망디 지방 전통 레시피에 의거해 요리한 플래흐(Plaire) 조개 요리.


조개 요리와 함께 맛본 뮈스카데는 루아르 강변 포도농원에서 제조한 화이트 와인이었다. 뮈스카데는 굴 요리에 제격이지만 조개 요리와도 찰떡궁합을 이뤘다. 조개를 날로 시식하거나 구워서 먹거나 치즈를 얹어 오븐에 구워서 먹건 간에 뮈스카데와 환상의 조합을 이루는 듯했다. 나는 세 번 다 뮈스카데 와인을 선택하여 루아르 강물이 흘러 흘러 대서양에 닿는다는 그 상큼하고도 긴 여운을 주는 맛에 취해갔다.


해물요리와 잘 어울리는 화이트 와인 뮈스카데(Muscadet).


사랑은 절망이 아니고 희망이다. 나는 희망한다. 항상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게 희망을 건다. 내 좋아하는 이들이 잘 되기를, 또한 내 좋아하는 것들이 타인에게도 사랑받기를 늘 희망하는 것이다. 그랑빌에서 깨달은 것은 그같이 아주 단순한 진리였다.


축제는 언제나 즐겁다. 그랑빌의 카니발, 발랑탱 파코(Valentin Pacaut) 사진.


나는 이곳에 집을 한 채 사고 싶었다. 호텔에서 올려다본 집들은 정말로 우아해서 눈이 부실 정도였다. 내게 당장 돈이 주어진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복덕방으로 달려갈 것이다. 단애에 자리 잡은 저택들은 기품이 있어 보였고 우아하기까지 했다. 집 안마당에 파도치는 대서양을 바라볼 수 있는 테라스가 있다면 훨씬 기품 있어 보일 수도 있겠다. 인생이란 것이 새옹지마여서 이후로 나는 그 꿈을 더 안타깝게 끌어안고 살게 되었다.


그랑빌 바닷가의 집들. © 오래된 타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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