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보느리가 들려주는 로마네스크 예술 이야기 95화
[대문 사진] 파리 생샤펠(Saint-Chapelle) 성당
로마네스크 예술의 태동과 전개 및 발전은 항상 종교적 사건들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에 일반 평민들이 거주하는 집들을 비롯하여 튼튼한 성 요새들이 지어진 것 역시 종교적 건축물과의 연계 선상에 위치해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왜냐면 벽들을 쌓아 올리고, 둥근 천장을 잇고, 창문을 내는 기술들은 교회 건축물을 지을 때 사용하던 기술들과 아주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민간 건축물들은 로마네스크 정신이나 양식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민간 건축물들에 대한 관심과 이에 대한 필요성의 증대는 옛 고성들을 어떻게 지었는가에 대한 기술적 연구나 도시 계획에 근거한 조사의 타당성에서 기인한 관심사였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민간 건축물의 공법은 애당초 지극히 자생적으로 생겨난 건축 기술들에 접목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로마네스크 건축은 종교적 규제가 선점한 고정관념에 부응한 것이어야만 했습니다. 예를 들어 11세기만해도 고대 로마제국 시대 때 거행되던 제식과 같은 종교의식이 여기저기서 치러지고 있었습니다. 종교의식은 성골함 제식으로 이어지면서 순례 코스가 정해지고 순례자들을 받아들이면서부터는 수도원과 교회들은 점차적으로 성골함 제식을 개발해 가다가 로마네스크 시기에 이르면 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그레고리안 개혁은 성골함 제식을 더욱 증대시켰으며 수도원이 정한 규칙에 따라 생활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한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클뤼니 수도원에게 기도의 우선권을 부여하면서도 시토회의 금욕주의로 방향을 튼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조각 장식 또한 종교적인 영향 하에 놓여있었으며 종교적 상징을 표현하는 쪽으로 기울어져갔습니다. 분명한 것은 교회 건축물이나 수도원 경내에서 발견되는 조각물들 가운데 몇몇 작품들은 영성에의 고정관념과는 동떨어진 순수한 조각품들로 간주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거였습니다.
예를 들면 꽃 장식이나 식물의 모티프에서 취해진 조각품들뿐만 아니라 괴물들이나 괴수들을 형상화하기까지 한 작품들이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중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는 괴물들은 성스러운 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불가피한 요소로 등장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괴수 같은 경우에는 신이 창조한 것과는 동떨어진 전혀 다른 거대한 세계에나 존재하는 존재물로 여겨질 여지 또한 충분했습니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는 이러한 형상물들을 가리켜 수도원 경내에 자리할만한 타당한 근거나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상당히 강한 어조로 비난했습니다. 그는 또한 이러한 형상물들은 오히려 수사들의 명상을 방해하거나 지장을 초래할 만한 위험한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고까지 지적했습니다. 나아가 그는 십자고상이나 마리아 상을 제외하고는 교회 건축물들을 장식하고 있는 그 어떤 종류의 그림들이나 조각품들마저도 철거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죠.
실상 베르나르는 이러한 형상물들이 주는 모호함을 이미 꿰뚫어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형상물들이 그려진 그림을 바라보면서 수사들이 묵상할 때 형상물들이 지닌 아름다움에 순수한 영혼이 매혹당하여 혹시 타락하게 되지는 않을까 두려워했던 것은 아닐까요? 혹은 영성의 세계로 이끄는 데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두려워서였을까요?
이와는 반대로 생 드니의 수도원장이었던 쉬제흐는 감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야말로 영혼을 성스러운 아름다움으로 인도하는 지름길이라고 갈파했습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중세 로마네스크의 영성 사회를 지배하던 일반적인 규정들은 그레고리오 교황이 제안한 것과 동일한 선상에 놓여있었으며, 이를 따라가는 추세였습니다. 달리 이야기하자면, 읽을 줄 모르는 이들을 위해 씌어진 성서들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을 애써 표현하고자 했던 시기가 바로 이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로마네스크 예술이 언제 어떠한 이유로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곰곰이 되새겨봐야 할 차례입니다. 물론 이러한 문제제기는 단지 현대적인 관점에서 제기하는 의문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해서 당대 중세 사회의 구성원들은 새 천 년과 함께 새로운 양식이 도래하리라는 것을 명확하게 깨달은 바도 아니었기 때문이죠. 고딕 예술의 출현은 그처럼 서서히 도래했으며, 로마네스크 예술을 대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선 설계상의 기술적인 문제들에 있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들이 발명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발명이 나은 주요한 결과물들이 이른바 고딕 건축물들이라 부르는 새로운 건축물을 탄생시킨 요인입니다.
예를 들어 로마네스크의 교차 천장을 암시하는 듯한 뾰족한 형태의 둥근 교차 천장의 발명은 기둥 사이의 간격마다 건물 꼭대기를 덮고 있는 둥근 천장이 내리누르는 압력을 네 지점으로 분산시킬 수 있는 아주 효율적인 방안이었습니다.
이러한 고딕 양식의 대들보들이 지탱하는 활처럼 둥글게 꺾인 둥근 천장은 로마네스크의 둥근 천장들에서 볼 수 있는 꺾인 활 모양의 아치 천장을 재 취합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천장은 반원형 통 형 천장보다도 더 강하게 벽 쪽으로 수직적인 압력이 가해진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 같은 형태의 천장 설계는 앵글로 노르망디 지역에 처음 등장하였는데, 아마도 노르망디 왕국에 속한 교회들이 중앙 회중석을 크게 넓히면서 천장이 내리누르는 압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의도로 뾰족한 형태의 둥근 천장을 고안해 냈으리라 짐작됩니다.
또 다른 대표적인 발명품은 벽 날개[1]였습니다. 벽 날개는 벽 바깥쪽에 쌓아 올린 돌들에게로 둥근 천장이 내리누르는 힘을 전가시키는 역할을 했죠.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뾰족한 형태의 둥근 천장과 대들보가 하강하는 지점에 꼭 들어맞게 벽 날개를 설치함으로써 천장이 내리누르는 힘을 벽쪽으로 전가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이로써 벽을 뚫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그 기능에 맞게 벽 어느 곳이든 상관없이 거대한 창문들을 설치할 수 있게 되었죠. 벽 날개들을 겹쳐 쌓아 올림으로써 또 하나 가능해진 것은 둥근 천장들을 높이와 상관없이 얼마든지 높게 이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화가 그려진 거대한 색유리창들을 투과한 빛이 형형색색으로 중앙 회중석을 비출 수 있게 된 점도 특기할 만합니다. 허공을 향해 솟구치듯 상승하는 버팀 기둥들과 아치들 또한 고딕 건축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딕 건축물의 세부적인 장식들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완전한 결별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유사한 형태로 계속 이어졌습니다. 고딕 양식에 입각한 정문 현관의 우아한 조각-기둥들은 인물상을 표현함에 있어서 점차적으로 정밀하게 조각하는 현상이 훨씬 두드러져 보이는 인물상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형태로 제작되었죠. 이 정교하게 조각된 인물상들은 로마네스크 시대에 설치된 문설주들과 창과 창 사이의 벽들에 절묘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고딕 양식으로 제작된 벽화들과 채색술 또한 무한히 펼쳐진 색상환과 같은 묘한 뉘앙스를 풍깁니다. 벽화나 색유리창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묘사함에 있어서 여러 번에 걸쳐 정확하고도 굵은 선을 사용함으로써 세부 묘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도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뾰족한 형태의 둥근 교차 천장은 12세기가 3분의 1이 지날 즈음에 영국에서 제일 먼저 출현하였고 이어서 프랑스의 수도권 지역에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미디 지역과 스페인에까지 이러한 형태의 천장이 출현하기까지에는 거의 한 세기를 필요로 하였습니다.
파리 생드니 성당의 현관 장식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져 1140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생질르(Saint-Gilles) 수도원 같은 경우 로마네스크 건축이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상태에 해당합니다.
13세기 중반에 접어들면 루아르 북쪽에 들어선 대성당들은 공사 중이거나 완공을 서두르고 있었으며, 루아르 강 아래쪽과 마찬가지로 알자스 지방, 코르스 섬,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 쪽은 여전히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교회 건축물을 세우는 중이었습니다.
궁벽한 산골 벽지에 해당하는 몇몇 지역에서는 수세기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제 겨우 종교 예술에 입각한 형식을 차용하거나 이에 따른 건축물들이 들어설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진 특별한 경우에 해당했죠. 그처럼 종교 예술은 점진적으로 감성에 젖어드는 독특한 특성을 지닌 것이기도 했습니다.
[1] 고딕 건축에서 두 벽 사이에 아치 모양으로 걸쳐서 천장이 내리누르는 압력을 견디게 설치한 지주 또는 버팀벽을 가리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