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45화
[대문 사진] 에두아르 마네, 거울 앞에서, 1877.
14장 12
(1875-1876)
이 와중에 마네는 ‘미술전람회 수상작을 위한 작품’을 위해 다시 한번 여자를 모델로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것도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여성으로. 전람회 출품작을 위한 모델로 ‘레몬’을 점찍어두고 그녀를 눈여겨보았다.
이 대단한 화류계 여성은 흔히 불리는 이름 가운데 하나인 앙리에뜨 오세흐(Henriette Hauser)였다. 하지만 오렌지 공국의 왕자의 애첩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녀는 레몬이란 별칭으로 불렸다.
마네는 그녀의 환심을 산 뒤, 그녀의 옷을 벗기려 온갖 수작을 다 부렸다. 두 사람은 서로 합의하에서만 그렇게 하기로 정했다. 즉, 그녀는 자신의 매력적인 모습을 취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만이 옷을 벗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시험해 보기 위해 두 사람은 이곳저곳 양장점의 탈의실까지 찾아다녔다.
탈의실에서 옷을 벗는 여자를 구경하는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장면은 마네에게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마네는 연정을 품은 애인이 되어 어느 놈팡이 아르튀르처럼 그녀에게 돈까지 지불하고 탈의실에 쭈그리고 앉아 옷 벗는 그녀를 훔쳐봐야 했다. 마네로서는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정을 준 남자들을 분류했다. 그녀가 마네에게 털어놓은 남자들의 유형은 사랑의 대가로 돈을 지불하는 남자들, 사랑의 순교자들이라 할 수 있는 절망감에 차 애정을 구걸하는 이들, 마지막으로 충동에 의해 일시적으로 사랑을 나누려 하는 이들이었다. 이 가운데 그녀는 상황에 따라서 한 남자를 선택하곤 했다.
마네는 그런 그녀와 함께 지내는 것이 즐거웠다. 그녀에게 파란색 새틴 천으로 된 코르셋을 입혀보기도 하고 하얀색 모슬린 천으로 짠 속옷을 걸쳐보게 하면서 그녀가 오랫동안 옷을 이것저것 갈아입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또한 즐겁기만 했다. 거울 앞에서 마네는 그녀로 하여금 최대한도로 몸을 뒤로 젖혀보도록 요구했다. 더불어 대담한 표정을 짓기 위해 짙은 화장을 하도록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자 그녀는 성적으로 흥분을 유발하는 강력한 자장을 띠게 되었다.
여자 뒤로 약간 떨어진 곳에 검은 옷에 실크해트 모자를 쓰고 지팡이 손잡이를 쥔 채로 한 남자가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가 막 몸을 돌리기만을 지켜보고자 한다는 걸 상상하기란 어렵지가 않다. 만일 마네가 인상파의 화풍을 따르기로 작정한 것이라면, 모델이 된 인물을 어떻게 묘사하고 또한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타당할 지에 대해 심사숙고했을 것 또한 분명하다.
따라서 반은 세속적 쾌락이나 좇는 활량들이나 진배없는 마네가 은밀히 내통하고 있는 여자에게 그에 부합하는 새로운 이름을 붙인 것은 당연하다. 마네는 그녀에게 나나(Nana)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림 제목 역시 나나다. 마네가 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작품 또한 「나나」였다. 거의 신처럼 숭배하는 햄릿의 주인공 역을 맡아 노래하던 오페라 바리톤 가수 포레의 인물화와 함께였다.
포레가 마네의 아틀리에에서 포즈를 취했을 때는 포레가 거의 절정을 구가하던 때였다. 이 보기 드문 오페라 가수는 영광의 정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베르디가 인기스타인 그에게 「돈 카를로스」에서 포사 후작의 역을 맡아달라고 편지를 써서 부탁할 정도였다. 뒤랑 휘엘이 재정 파탄으로 마네의 작품 구입이 어려움을 겪자 포레는 개인 소장가로서 훨씬 더 적극적으로 마네의 작품들을 사들였다.
연이은 순회공연 탓에 끝까지 포즈를 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림을 완성하려고 마지막 손질을 하는 찰나, 포레가 순회공연을 떠나는 바람에 마네는 그의 두 다리에 대한 묘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어 남의 다리로 대신했다.
순회공연에서 돌아온 포레는 그림을 보더니 맘에 안 차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얼굴도 너무 늙어 보였다. 마네는 노상 하던 식으로 “난 내가 본 대로 그렸을 뿐이네.”라고 내뱉었다. 그 말이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성공의 정점에 선 탓에 어깨에 잔뜩 힘마저 들어간 포레는 이젠 허세부리기까지 했다.
더하여 마네 못지않게 성깔 부리는 데는 한 가닥 하는 성미였다. 결국 두 사람은 그 일로 다투었다. 신문 기사 제목이 “오페라 바리톤 가수들의 제왕이 강경파 화가들의 제왕과 사이가 틀어졌다.”이었을 정도다. 포레는 자신을 그린 인물화를 구입하는 걸 그만두었다. 자! 다음엔 무슨 일이?
볼디니가 그린 포레의 초상화를 두고 마네가 비꼬는 투로 이야기한 것이 결국은 두 사람을 다시 화해하게 만들었다. 마네는 자기가 한 말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이 속내에 참았던 말을 털어놨다.
“데생도 엉망이고 참 엉망으로 그렸네 그려.”
“정확히 봤어. 당신네들이 그린 그림들이 다 이 모양이지.”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오페라 바리톤 가수가 대꾸했다.
“당신 혹시 베르틀리에라고 아시오? 그가 쉰 목소리로, 또는 콧소리로 노래 부르는 걸 들어본 적 있소? 허 참! 그가 당신보다 훨씬 재능이 뛰어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소이다. 그려.”
“생각과는 달리 반면에 참 대단한 안목을 갖췄구려. 내 소중한 친구 마네여!”
그리고는 마네에게 또다시 아주 허영심이 많은 인물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주문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관전에 출품한 「나나」가 심사위원 전원의 ‘만장일치’로 낙선이 가결되어 반송된 상태였다. 관전은 오로지 「햄릿의 주인공」만 통과시켰다. 무슨 이유로 그토록 격렬하게 「나나」를 비방하면서 이의까지 제기한 것일까? 너무 현대적이었다는 게 주된 사유였다! 반은 화류계 여성이나 다를 바 없는 인물에게서 당신은 어떤 점이 현대적이라고 생각하는가? 마네는 자수가 새겨진 새틴 천으로 된 코르셋 차림이 알몸보다도 훨씬 더 충격적이었을 것이라고만 짐작했다. 그림 속의 나나는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았다!
거품이 이는 크림 빛을 띤 물의 요정들은 색마와도 같은 사티로스에게 몸을 내던진다. 이런 게 관전에 내걸린 작품이다. 더군다나 그런 그림 앞에서 기쁜 표정을 짓기까지 한다. 그림을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까지 그림을 보여주려고 아이들을 전시장에 데려오기까지 한다.
이번에는 요정이 아니라 실제 인물에 해당하는 예쁜 여인이 속옷만 입은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고? 끔찍한 일이군! 절대 안 되지, 내 걸지 못하게 하라고! 쳇! 한 마디로 웃기는 군. 바지흐가 논평하고 나섰다.
나나를 또 누가 묘사했다고? 최근에 발표한 『목로주점(L’Assommoir)』에서 에밀 졸라는 가난하고 어린 금발을 한 나나를 창안해 냈다. 그는 자신이 그녀의 아버지라도 된다고 믿은 것일까? 마네가 묘사한 나나는 한창때 나이에 활짝 핀 모습에 어울리는 다갈색 머리를 하고 있다. 더군다나 유복한 생활을 하고 있기까지 하다.
반면에 졸라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나나는 매번 눈물만 질질 짜고 있다. 마네는 작가가 작품을 구상하기 훨씬 이전부터 레몬을 그리고자 여러 차례 시도했다. 졸라는 마네의 나나와는 정반대인 인물의 이야기가 쫙 퍼져나가게 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두 사람이 묘사한 인물들의 공통점은 뭘까? 마네는 전혀 도덕적으로 훈계하려 들지 않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졸라는 다른 이에게 해가 될 일은 전혀 하지 않는다.
소설가의 나나는 희생물일 따름이지만, 화가의 나나는 향락의 여주인공이다. 엄격하지도 않고 위선적이지도 않은 마네는 자신이 그린 나나를 사랑했다. 그녀를 알게 된 순간부터 그녀와 늘 관계를 맺었다. 그는 그녀에게서 많은 걸 알게 되었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새삼 놀라워진 이유가 바로 그와 같은 데에서 연유했다. 졸라의 작품 속의 나나는 요람에서 태어나자마자 바로 불행에 빠져 허우적대는 인생을 시작했을 뿐이다.
미술 전람회에서 「나나」가 낙선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마자 지루는 기꺼운 마음으로 카퓌신느 대로에 위치한 자신의 으리으리한 장식미술 갤러리 안 유리 진열대에 작품을 보관 전시하기로 했다. 갤러리 전시가 막 개막되자마자 몰려든 파리지앵들로 카퓌신느 대로가 인산인해를 이뤘다.
최근에 마네가 또다시 도발적인 선정성 가득한 작품을 선보였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어깨너머로나마 얼핏 작품을 보려고 몰려든 탓이었다. 스캔들에 어울리는 온갖 구색을 맞추듯이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마네는 전혀 기대하지 않은 의외의 성공을 거두기까지 했다. 또한 자신을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는 관전 심사위원회에 미약하나마 어느 정도 복수를 한 셈이다.
마네가 그린 나나는 당대의 리얼리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캔들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그림 한쪽에 묘사된, 자신의 차례를 은근히 고대하고 있는 신사는 다름 아닌 전시장에 몰려와서 그림을 바라보는 온갖 사내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족속들 아닌가?
그녀는 외설적인 장면에나 등장할 법한 속옷차림으로 프록코트를 걸치고 실크해트 모자를 쓴 이들에 따라 매번 변모를 거듭한다. 더불어 그림의 크기 또한 스캔들이 되었다. 「나나」는 다른 그림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크기였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큰 크기의 그림을 그렸는지는 차치하고라도 단지 선정적 옷차림을 한 여인네를 묘사한 그림으로써 작품의 크기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였다.
그럼으로써 신문의 사교계 난이 앞다투어 화류계에 대한 온갖 의심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나톨 프랑스는 미스 레몬(Miss Citron)을 달콤한 정사의 화신으로까지 추켜세웠다. 이름깨나 알려진 이들이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바람에 일명 레몬이라 불린 나나는 뒤마 2세로 하여금 강티 부인이란 여주인공을 떠올리게까지 만들었다. 마리보의 온 정신을 쏙 빼놓은 화류계 여자가 바로 그녀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육체적 매력을 지닌 요염함에 나이 따위가 무슨 상관있으랴.
포레를 다룬 인물화로 다시 돌아가면, 미술전람회 전시장 벽 높이 작품을 걸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마네에게 증오심을 품은 사내들이 그림을 훼손할까 봐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따라서 관람객들은 높이 걸려 있는 작품을 고개를 쳐들어야만이 간신히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혹평에 가득 찬 비난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마네가 의도한 건 뭘까? 그는 이 작품이 행동하는 자의 초상이 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사느냐 죽느냐 그 결정적 순간에 행동하는 햄릿처럼 말이다.
무슨 이유로 말미암아 그렇게 남의 간섭을 받기 싫어하고 누구보다도 예술적 태도를 견지하려 노력했던 인간이 <피가로 신문>에다가 관전평이나 기고하고 있는 알베르 볼프를 어떻게든 자신의 화실로 꼬드겨 불러들여서 인물화를 그린다음 그에게 그림을 기증하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을까?
볼프는 악의에 차 있을 뿐만 아니라 비열하기까지 한 말투로 이미 정평이 난 비평가였다. “안하무인으로 펜대를 휘두르는 건 그만두고서라도 예술에 대한 취향이 전혀 없는 듯한 글투는 말할 것도 없고, 거기다가 메쏘니에까지 좋아라 따라다니니 내 원 참!” 드가가 침을 튀겼다.
꼴도 보기 싫은 인간을 뭘 그리겠다고 그런 작자에게 포즈를 취해달라 하지를 않나, 더군다나 그 잘난 모습을 그려주질 않나, 대체 왜 그러는데? 그 친구에게 뭘 바라는 거야? 세상에서 제일 악질 같은 그 인간을 홀려서 대체 뭘 하려는 꿍꿍이인가? 참 이상하군 그래.
자신의 인물화를 그려주겠다는 호의에 볼프는 한 두 차례 마네의 아틀리에를 찾았다. 하지만 마네 스타일의 그림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만일 마네가 자신을 다시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면, 그림을 어떻게 그릴 지를 모색해 보면서 그래도 도저히 자신이 없으면, 왜 그런지에 대해 숙고해 봤어야 옳았다!
마네는 그를 어떻게 그리면 좋을지 몰랐을 따름이다! 미안하다는 구석도 없었다. 다음 약속은 아예 잡지도 않았다. 이후로 다시는 볼 일 없다는 듯이. 확실한 건 볼프는 체질적으로 누구에게 아첨하거나 비위를 맞추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그의 글 솜씨를 두고 재치가 있다고 인정할 때마다 그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악랄하고 비열한 인간이 된 것에 스스로 우쭐거렸다. 안타깝게도 마네는 매사에 늘 진지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떠들어 버릇했다. 마네의 붓질로 탄생한 볼프는 보기에도 끔찍했다. 도저히 참고 넘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
미술 전람회를 통하여 발생한 「나나」의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마네는 바로 일련의 누드화 제작에 돌입했다. 어차피 이렇게 그리나 저렇게 그리나 스캔들만 일으킬 뿐인 건 마찬가지였다. 카페에서의 장면을 담은 작품 제작도 늘었다. 전혀 음란한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네가 그린 그림은 이젠 외설스럽고 추잡한 장면이나 담은 작품으로 여기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고 말았다.
마네는 초라하고 누추한 오막살이 살림살이의 궁핍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가난한 집 여자아이들이 타락에 물들고 죽어가는 비참한 상황 또한 알고 있었다. 하여 마네는 그들을 어떻게 해서든 도와주려고 애썼다. 그들에게 아름다운 색상의 시트를 덮어준다면, 그들 영광의 밤은 더욱 빛이 나리라.
마네는 관전에 의한 미술 전람회에 연이은 낙선으로 몹시 충격을 받아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동료들과 연합하여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마저 거부한 채 홀로 고립된 상태를 고집했다. 몹시 지친 탓에 쇠약해져만 갔다. 저녁마다 새로운 모델을 구하기 위하여, 혹시나 새로운 그림 그릴 거리가 있나 찾아보기 위하여 밖에 나가보았지만 몸만 축날 뿐이었다. 작업을 해도 사람들을 만나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네 주변에 새로운 얼굴의 젊은 여자들이 부족했던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의 문하에서 유일하게 실기지도를 받은 에바 곤잘레스는 처음 미술 전람회에 입상한 뒤로 매년 작품을 출품 전시하고 있었다. 어느 날 마네는 그녀에게 전갈을 보냈다. “마드모아젤! 그림에 대해 견해를 구한다고 내게 연락하던 일마저 너무 오래전 일이 되고 말았구려. 그대가 내게 전혀 연락하지 않는 이유가 이제는 그대에게 무시당할 만큼 내가 그린 그림들이 성공하지 못한 때문인가?”
마네의 병색이 점점 짙어져만 갔다. 관전에서의 낙선만이 그 이유가 될 수 없었다. 마네의 몸 또한 그를 단념한 듯했다. 기력을 상실하자 희망마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