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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Jun 25. 2023

도상에 따른 상징

앙드레 보느리가 들려주는 로마네스크 예술 이야기 78화

왼쪽은 정반대로 앉아있는 두 사람을 조각한 것이고 오른쪽은 아이와 용을 묘사한 조각 장식입니다. 프리즈 소간벽 장식 조각, 이탈리아 모데나(Modena) 대성당 박물관.


로마네스크 조각품들을 일별 해보면, 등장인물들의 시선은 모두 아래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돌로 새긴 무엇인가를 골똘히 응시하고 있는 이러한 눈매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의미를 읽고 있거나 인간 성향의 모든 것에 대한 의미까지도 파악한 듯한 모습입니다.


이는 성서의 주제를 다뤘기 때문일 것입니다. 조각가들은 구약에 등장하는 주제들을 다루기도 했지만, 특히 신약에 등장하는 주제들을 주로 다뤘습니다. 성서의 주제들은 조각가들에게 있어서 아무리 퍼내도 끊임없이 고이는 샘물과도 같았죠.


조각가들은 이러한 주제들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완전무결하게 완성된 것들만을 재해석하여 작품으로 승화시켰습니다. 게다가 교부 철학자들이 성서에 주석을 단 텍스트들은 중세 시대에 설교의 기초가 되기도 했죠. 조각가들은 성스러움을 담은 작품 제작을 구상하면서 이러한 성서 텍스트들을 읽어나갔습니다.


기독교 도상(圖像)에 대한 제작은 현실 세계가 직면한 상황이나 각 개인의 존재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도덕적 삶을 살 것을 독려할 수 있는 수단이기를 의도하였죠. 왜냐면 하느님의 말씀은 언약이자 곧 신에게로의 귀의(개종)에 대한 요구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더불어 조각가들은 악덕을 조장하는 것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예를 들어 거만함, 살상으로 인한 폭력, 화, 육체적 정념, 소유에 대한 욕망 등이 그와 같은 것들에 해당합니다.


징벌을 받아 마땅한 형상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음탕함, 인색함, 시기심, 증오심 등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인간을 타락시키는 주요한 요인들이었습니다. 이를 묘사하기 위하여 조각가들은 카인의 살인이나 나사로와 사악한 부자들과 같은 성서적 비유들을 차용했습니다.


이와 함께 원죄를 다루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뱀에 물린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이라든가 목에 돈지갑을 매고 있는 남자라든가 이 모두는 한결 같이 파멸을 향해 끌려가는 형상들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 1120-1140년 사이에 질라베르투스(Gilabertus)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기둥머리 장식입니다.


1120-1140년 사이에 질라베르투스(Gilabertus)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성 스테파노 수도원 교회 건물의 기둥머리 장식입니다. 현재는 툴루즈의 오귀스탱 박물관에 소장되어있습니다. 기둥머리 장식은 성인의 영혼이 이미 죽은 몸에서 빠져나와 승천하는 장면을 다루고 있죠. 천상에서는 성부가 두 팔로 성인의 영혼을 끌어안아주고 있습니다.


동물들 또한 교화를 목적으로 한 의도에서 조각 장식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는 동물들마다 서로 다른 상징적 특질을 부여한 고대인들의 관습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중세에 제작된 동물우화집도 실상 알고 보면 2세기 때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 어로 씌어진 『생리학』이란 작품으로부터 영향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각 동물들이 지닌 외형적 특징이나 행동방식 등은 도덕적 특성에 따라 상징적 해석이 가해진 것이죠. 이 역시 성서에서 취한 교훈적인 비유나 비교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보다는 빈도수 면에서 정도가 덜한 경우에 속하지만, 식물의 상징 또한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 역시도 고대인들이 제작한 관행에 바탕을 둔 것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중세 시대의 로마네스크 조각 장식들에게는 주요한 자리마다 빠짐없이 악마가 등장합니다. 악마들은 지옥의 불구덩이로 떨어지는 형벌을 받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죠. 지옥의 형벌을 받은 악마가 공포에 떠는 모습은 신자들로 하여금 일상생활에서 덕행을 열심히 쌓으라는 교훈을 촉진시키는 쪽으로 형상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세 시대의 도상(iconographie)은 신학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써 무엇보다도 선한 하느님을 형상화하는 쪽으로 나아갑니다. 자비심으로 가득하신 하느님께서는 항상 용서를 베풀며, 악으로부터 승리한다는 성서적 해석에 근거한 것이죠.


따라서 기독교인은 극한 상황에 처해있어도 언제든지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과 천사들의 중재로 인하여 그리스도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모두를 조각으로 형상화하는 데 있어서 현시되어야 할 존재는 그 수가 차고 넘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선행과 두 악행>, 오툉(Autun)의 생 라자르(Saint Lazare) 대성당 기둥머리 장식, 1145년경, 대성당 교회 참사 회의실 소장.


성배를 들고 있는 애덕을 상징하는 인물은 구두쇠를 짓밟고 있으며, 희망을 상징하는 절망을 땅에 쓰러뜨리고 있습니다. 절망은 등허리가 칼에 찔려 나뒹굴려는 찰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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