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5화
프롤로그 3
프랑스 파리
사크레 쾨르 대성당
지금 현재
루딜 신부는 내려가 보고 싶은 호기심과 성당에 대한 폐쇄 조치에 따른 경고로 말미암아 이 정도에서 물러서야 하나 하는 불안감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로 허우적댔다. 그 와중에 신중함보다는 호기심이 더 작동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또 다른 존재의 울림이 그에게 후자를 선택하라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그는 동정녀 마리아께 다시 기도를 바쳤다. 수없이 하느님 아버지와 성모를 음송하면서 고해성사를 하는 심정으로 반드시 사건의 정체를 밝히리라 마음먹었다. 마치 손에 무기를 들고 있는 사람처럼 손전등 자루를 꽉 움켜쥐고는 계단으로 내려섰다.
한 계단씩 발자국을 내디딜 때마다 온 신경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위치한 곳이 어디쯤일까를 곰곰이 되짚어보면서 지금 바실리카 대성당의 어디쯤에 자신이 있는지를 떠올려보았다. 정상대로라면 지하교회인 크립트가 자리한 곳에 이른 것이 맞았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거기서 끝나질 않았다. 현재로서는 호기심에 의한 과오가 분노심에 의한 과오보다 더 우세한 것만큼은 확실했다.
계단 맨 끝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지하층의 높이로 따지자면, 그는 이미 몽마르트르 언덕바지에 자리한 정원과 같은 높이에 있었다. 아니 그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소리를 죽이고는 축축이 젖은 상태로 틈이 벌어진 돌바닥을 디딜 때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지하 공간은 점차 통로가 넓어지면서 거대한 둥근 천장 지붕 아래에 이르렀을 때에는 앞이 탁 트인 실내가 펼쳐졌다. 한 다발의 흔들거리는 불빛이 실내를 환히 밝혀주었다.
루딜 신부는 흠칫 놀라 발걸음을 멈춰 섰다. 그는 단 한차례도 바실리카 대성당 지하에 비밀의 방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질 못했다. 그는 숨죽인 채 가까이 다가갔다.
하얀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까만 대리석으로 만든 제단 앞에 서 있는 자세로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서 있는 곳 천장은 마치 석관묘의 덮개가 열려있듯이 판석이 뜯긴 상태였다.
누군가가 지붕에 구멍을 뚫고 짧은 금속 파이프를 꽂아놓은 것이 보였다. 높낮이가 불규칙한 타닥거리는 소리가 관 끝에서 새어 나왔다. 몇 미터 떨어진 곳에는 제법 덩치가 큰 또 다른 남자가 무릎 꿇고 하얀 천위에 수북이 쌓인 나무더미를 바닥에 가지런히 일렬로 줄지어 늘어놓고 있었다.
루딜 신부는 얼굴을 찌푸렸다. 난데없이 나타난 이 침입자들은 자신의 교회에서 그것도 아주 내밀한 구석진 곳에서 대체 뭘 하고 있다는 말인가? 신부는 그에 대한 해명을 반드시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한시바삐.
“당신들 뭣 하는 사람들이오?” 설교할 때의 어조와 같은 강한 어조로 그는 쏘아붙이듯 물었다.
두 사람은 몸이 굳어진 채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들은 신부를 향하여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꼼짝 않고 계속 그대로 서 있기만 했다. 신부는 다시 목청을 높였다.
“나는 바실리카 대성당을 책임지고 있는 본당신부요. 그러니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게 말해줄 수 있겠소?”
두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신부를 물끄러미 쳐다만 봤다. 그때 갑자기 낯선 목소리가 어둠을 뚫고 메아리쳤다. 아주 날카로우면서도 째진 목소리였다.
“진정하세요! 신부님! 제가 신부님께 설명드리겠습니다.”
수도원장이기도 한 루딜 신부는 여차하면 상대방에게 달려들고자 손전등 자루를 꽉 움켜쥔 손을 등 뒤로 감췄다. 하지만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이상야릇한 목소리만이 반향 하듯 메아리쳤다.
“저는 신부님이 부럽습니다. 신부님! 이건 사실입니다. 이곳에서 하느님을 향한 당신의 열정에 공감합니다. 바로 성스러운 이 자리에서…….”
신부는 비로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방의 윤곽을 짚어보았다. 그 또한 하얀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목청을 높였다.
“당신은 복원작업을 하는 팀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오? 내 물음이 맞아요? 대체 무슨 연유로 내게 아무런 통보도 해주지 않고 일을 하는 거요? 나는 당신 상관들에게 이런 상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참이오. 당신들은 모자이크 천장화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도적질까지 하였소. 당신들이 성전을 완전히 파헤쳐놓았단 말이오. 나는…….”
신부는 흠칫 멈춰 섰다. 여자가 총을 겨눈 탓이었다. 탐조등 불빛 속에 얼굴의 윤곽이 드러났다. 얼굴은 거만한 기색이 역력했고 짙은 눈썹에다가 얇은 입술을 하고 있었다.
“좀 나지막이 말씀하시는 것이 좋을 듯한데요. 신부님! 우리는 신성한 장소에 있습니다.”
루딜 신부는 뒤로 물러섰다. 이유 모를 당혹감과 분노심이 함께 뒤섞인 감정이 그를 괴롭혔다. 이미 익숙해진 감정의 흥분상태. 시에라 레오네에서 학살이 시작된 때부터 다이아몬드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기간 동안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감정이 다시 도지고 있었다.
그는 수도인 프리타운을 탈출한 어린 학생들을 가득 태운 밴 차량을 운전하고 있었다. 적대적인 민병대원들은 포교를 하러 다니는 길 한가운데다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남자들은 완전히 무장한 채 술에 절어있었다. 그가 만일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치는 일을 그만둔다면 아이들은 군대에 징집되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총살당할 게 뻔했다.
그는 하느님께 아이들을 구원해 줄 것을 간구했다. 그러고는 이어서 난폭한 군인들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차량의 가속 페달을 밟았다. 이상한 건 이 순간 바실리카 대성당에서 아주 오래된 옛 경험이 반사작용으로 되살아났다는 점이다.
루딜 신부는 뒤쪽으로 1미터가량 물러서서 바닥을 발로 문질렀다. 여인은 미소를 띤 채 그에게로 다가왔다. 루딜 신부는 여인의 시선이 번뜩이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그녀를 아프리카에서 여러 차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름은 기억나질 않았다. 여인은 어떤 주저함이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거친 반응을 보이던 신부는 갑자기 몸을 홱 돌려 실내 안쪽을 향해 내달렸다. 그가 도망친 곳은 지하에서도 가장 컴컴한 구석이었다. 총알이 발사되면서 일어난 굉음이 귓가를 스쳤다. 여인은 냉소로 가득 찬 목소리로 빈정거리듯 중얼거렸다.
“그곳은 막다른 길이야.”
루딜은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총알은 돌에 맞아 파편을 튀겼다. 그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어슴푸레한 빛이 숨어있는 그를 도와주었지만, 그들이 신부를 찾아내는 건 시간문제였다. 남자들 가운데 한 명이 회중전등으로 그가 숨어있는 쪽을 비췄다. 신부는 돌기둥 쪽으로 몸을 바싹 붙였다. 이제 더 이상 도망칠 방도가 없었다.
“거기서 나오세요.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당신들은 대체 누구요? 성인들 모두가 지켜보고 있소.” 두려움을 떨쳐버리려는 듯 루딜 신부가 소리쳤다.
그 순간 타협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앞으로 걸어 나왔다. 두 손을 쳐든 채로. 그의 모습이 돌벽 위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윽고 두 명의 남자들이 그를 에워쌌다. 그리고 두 손을 앞으로 묶었다. 신부의 앞을 막아서고 있던 여자는 남자들의 우두머리인 듯했다.
“호기심은 금물입니다. 그건 죄악이에요. 신부님! 자 무릎 꿇으세요.”
두 남자가 갑자기 신부를 돌려세우고는 땅바닥에 거꾸로 넘어트렸다. 앞에는 하얀 천이 깔려있었다. 신부는 어깨를 움켜쥔 남자의 손아귀 힘이 무거운 돌덩어리에 눌린 것처럼 엄청나다고 느꼈다.
“도적떼 같으니라고…….” 발버둥 치면서 루딜 신부는 소리를 내질렀다.
신부는 자신의 주위를 살펴봤다. 뭐라도 붙잡고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신은 그를 외면하고 있었다.
“나를 풀어주시오.” 사제는 울부짖으면서 고개를 떨궜다.
권총을 든 여인은 신부 뒤로 가서 고개를 숙이고는 신부 귀에 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 앞을 바라봐요. 제발.”
루딜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땅바닥에 펼쳐진 천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소. 아무것도 안 보일 뿐만 아니라…….”
신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들은 눈을 갖고 있지만 전혀 볼 수가 없어.” 그녀가 중얼거리는 듯했다. “잘 봐라. 네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신부는 흐느껴 울었다. 짠 눈물이 동공을 팽창시켜 흰 천을 더 커다랗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자신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이건 환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땅바닥에 펼쳐진 천위에는 원래 있던 나뭇조각들이 사라진 대신 뼈들만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시신에서 추려낸 듯한 뼈들이 마치 인체의 골격을 다시 이루려는 듯 일렬로 정돈되어 있었다. 안구가 검게 뚫려있는 두개골은 맨 끝에 놓여있었다.
루딜 신부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몇 번을 눈물을 훔치면서 바라만 보았다. 그렇지만 뼈들은 분명 거기에 있었다. 신부가 무릎 꿇고 있는 바로 앞에. 두려움이 조수처럼 밀려들면서 그를 침몰시키려 들었다.
여인은 권총을 내려놓은 채, 두 손으로 두개골을 잡고서는 눈높이에까지 들어 올렸다. 탐조등의 섬광이 먼지가 가득 쌓인 해골들의 우툴두툴한 부분을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만들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해골 옆으로 갖다 댔다.
오른쪽 관자놀이에 이상한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불빛이 안구 깊숙이까지 비추었다. 불빛은 관자놀이 뼈들 사이를 이은 접합 부분 역시 정교하게 비추면서 움푹 파인 구멍 사이로 파고들었다. 두개골에는 단지 텅 빈 두 눈두덩만 남아있었지만 전조등 불빛이 마치 생명을 불어넣는 듯했다.
여인은 노획물을 느긋이 바라보고는 잔뜩 쌓인 먼지를 털어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여인은 두개골을 천위에 올려놓았다. 신부가 무릎 꿇고 있는 바로 옆자리였다.
“만일 신부님께서 해골로 위안을 삼을 수만 있다면, 신부님, 이 해골은 바로 성인의 해골이란 점을 아셔야만 해요. 또한 이 해골이야말로 아주 경이로운 비밀을 일러줄 겁니다.”
그녀는 총을 다시 쥐고는 성직자의 관자놀이에 갖다 댔다.
“성인께서 말씀하신다. 말씀에 따라 세상 모습 또한 달라질 것이다.”
루딜 신부는 폭발음을 듣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총알이 그의 뇌를 관통하는 것 역시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망막들은 죽음 속에 그를 괴롭히던 두개골이 현시하는 바를 흡입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