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땅

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6화

by 오래된 타자기


제1부
1-1



성지

알 킬할 도성

1232년 만성절 전날


요란하던 말굽 소리도 잦아들었다. 도성이 점점 가까워오고 있었다. 나무들에 가린 성벽 위쪽에 감시병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성큼성큼 큰 걸음걸이로 감시병은 망루를 순찰 중이었다.


“보초는 단지 한 명뿐입니까?” 어둠 속에서 누군가 물어왔다.


“다른 수비 대원들은 성문 근처에서 숙영하고 있네. 입구를 지키는 병사는 여섯 명도 채 안 돼.” 말에서 내리면서 롱슬랭이 대꾸했다.


도성을 면밀히 관찰한 장본인이 바로 롱슬랭이었다. 말에서 내린 롱슬랭은 함께 하고 있는 동료 대원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사려 깊은 눈초리였다. 감쪽같은 도둑질에다가 살인을 저지를 때도 주저함이 없는 무자비한 태도는 나무랄 데 없는 솜씨를 타고난 이들이었다.


비렁뱅이 꼴로 변장한 채, 롱슬랭은 온 도성을 거리 구석구석까지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감시병의 숫자를 세고 길거리 장인 세공품 가게에 이르기까지 면밀히 파악하면서 심지어는 유대인 구역에 나있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에 박혀있는 세 개의 이슬람 사원과 유대교 신전을 찾아낸 장본인이 바로 롱슬랭 자신이었다.


그런 뒤에 그는 시장이 서는 광장 한쪽 구석에 털썩 주저앉아 깨진 동냥 그릇을 발치에 놔두고 누더기들을 늘어놓은 채, 몸에서 풍기는 악취로 말미암아 거리에서 내쫓김을 당할 때까지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시비를 걸 듯 욕지거리마저 내뱉었다.


그날 아침 롱슬랭은 똥 구린내 비슷한 거품장구채 마른 꽃 이파리로 눈가를 비비고 난 뒤, 죽은 고양이를 둘둘 말아 바랑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저녁이 시작될 무렵, 아무도 그를 개의치 않을 정도로 거지꼴을 한 채, 정체불명의 인간이 되어 거리로 나섰다.


“장사치가 몇 명이라 했더라?”


집요하게 롱슬랭이 되물었다. 함께 공모에 가담한 기욤은 롱슬랭의 기억력이 그리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칼을 다루는 솜씨는 식은 죽 먹기처럼 자유자재였다. 속내의 음울함을 상쇄하는 칼 솜씨를 신의 선물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악마의 장난이라 해야 하나 그것마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마흔 명 정도 되네. 딸린 식구들은 계산하지 않았네.”


롱슬랭의 목소리가 마지막 음절에서 마치 노랫가락처럼 경쾌하게 바뀌었다. 롱슬랭이 태어난 프로방스의 찬란한 태양은 지금쯤 찬란한 햇살을 드리우고 있을 터였다. 롱슬랭이 걸치고 있던 누더기들을 벗어던지자 눈 깜짝할 사이에 알몸이 드러났다. 등과 팔뚝에 흉측하게 파인 상처 자국은 마치 줄무늬처럼 나있었다. 하지만 땅에 나뒹굴 때에 상처 하나 입지 않는 건장한 체격이었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줄무늬 상처와 칼자국이 온몸을 수놓고 있는 것은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던 몇 년간의 참상을 암시하는 신체 언어와도 같았다. 게다가 여인네들을 홀리는 매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잘 생긴 남정네들은 상당수가 흉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간혹 어떤 이들은 흉터가 없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견딜 수 없어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롱슬랭에게 있어서 어느 것도 거저 주어지는 법은 없었다. 모두가 스스로 획득한 것들이었다. 사랑이든 약탈이든 그것만이 그가 믿고 있는 법칙이었다.


롱슬랭은 좌우 어깨 위로 목을 눕혔다 세웠다를 반복했다. 미세하게 곱슬곱슬한 금발의 머리카락 속으로 두 손을 집어넣었다가 다시 빼기도 했다. 기욤은 상관인 롱슬랭에게 전투복을 입혔다. 롱슬랭은 뭔가를 의심하는 듯한 눈빛으로 두 손을 쳐다보고 있는 부관을 희끄무레한 초록빛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기욤은 열 손가락으로 계산하는 방법 이외에는 달리 다른 방법으로 무언가를 계산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기욤은 계산하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특히 곱셈에 홀렸다.


“모두 이교도들입니까?”


“모두가 그들의 헛된 신을 경배한답시고 땅바닥에 넙죽 엎드려있는 개들뿐이야.” 낡은 쇠사슬 갑옷을 재빠르게 걸치면서 롱슬랭이 대꾸했다.


“남자보다도 여자들이 더 많던데, 아닙니까?”


밤이었지만 롱슬랭은 곁에 있는 이들의 번뜩이는 눈빛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가 불꽃을 피워야 할 섬광과도 같은 것들이었다.


“그래 맞네.”


“몇 명입니까?”


헐떡이는 목소리였다.


“이제 자네가 즐길 수 있는 밤은 오직 오늘 하루뿐이야. 자네는 내 말을 전혀 믿지 않지?”


“믿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뭐야? 우리가 프리드리히 군대로부터 탈출한 뒤에 프리드리히 그 독일 놈이 개가 되어 예루살렘의 왕위를 찬탈했다고 했잖았나. 내가 자네에게 거짓말한 적이 있었던가? 함께 목적지를 향해 나서는 데 두 해나 걸렸다는 것은 자네가 그만큼 스스로 자신감을 갖는 데 충분치 않았다는 이야기이네.” 가죽띠를 허리에 졸라매면서 롱슬랭이 투덜거렸다.


“아니. 여인네들의 숫자, 이놈의 숫자 때문에 머리가 돌 지경입니다.”


기욤이 소리치듯 말했다. 그가 도둑질한 뒤, 동료 대원들과 나눈 드니에 은화와 장물들은 여지없이 유곽에서 다 털렸다. 게다가 프로방스 사내인 롱슬랭이 기욤을 발견하고 무리에 합류시킨 곳도 유곽에서였다.


“각각의 남정네에 세 명의 여인네만 계산하게나.”


“그리고 장사치들이 마흔 명쯤 된다 하지 않았습니까? 아닌가요?”


“그쯤 될 거네.”


갑자기 롱슬랭은 몸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기욤은 계산하다 까먹은 탓에 또다시 긴 시간을 필요로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먼저 임무를 완수해야만 했다.


“준비는 됐나?”


기욤은 까슬까슬한 천으로 만든, 여기저기 거무스름한 얼룩들이 묻어있는 커다란 바랑을 집어 들고는 어깨에 짊어졌다. 냄새가 진동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냄새였다.


“자네 차례네. 빨리하게나.”


기욤은 간결한 동작으로 머리만 끄덕였다. 늘 하던 식이었다. 기욤이 공격전에 치르는 제식을 기다리는 동안 롱슬랭은 숲에서 공격을 명령할 자신이 도착하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무리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롱슬랭은 단검을 뽑아 들고는 찬찬히 칼날을 살펴본 뒤에 잔혹하기로 이름 꽤나 날린 동료 대원들을 찾으러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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