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웨스트 섬

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13화

by 오래된 타자기


제1부 2-1



미국 플로리다

키웨스트 섬[1]

지금 현재



오후 3시였다. 식민지 시대의 스타일로 꾸민 침실은 습기를 동반한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온몸이 흥건히 땀에 젖어들게 만들었다. 검게 그을린 천장에 매달린 목제 선풍기마저 느릿느릿 돌아가는 바람에 시원한 기색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조차 없었다. 선풍기가 제대로 돌아간다 해 봤자 방 안에 꽉 들어찬 뜨거운 열기 탓에 방구석구석까지 시원한 바람이 전해질 리도 만무해 보였다.


침대 바로 앞 창문은 닫혀있어 간간이 덧문들에 나있는 틈으로 가느다란 햇볕이 스며들었지만, 침대 옆 커다란 창문은 활짝 열어젖혀진 상태였다. 아래쪽 식기들 옆에 놓여있는 컨슈 리퍼블릭 라디오란 상호가 적혀있는 고정식 라디오에서는 제대로 전파를 잡지 못한 탓인지 지글거리는 소음만 쏟아냈다.


앙투안은 가브리엘과 함께 뽀송뽀송한 면 시트를 한쪽으로 치워버리곤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앙투안은 땀을 줄줄 흘리면서 이쪽저쪽 온 방향으로 몸을 굴리다가 낮잠에 빠져들었다.


잠자던 그가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안돼!”


앙투안은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꿈속에서 그는 헤엄치던 중이었다. 앙투안은 매트리스를 덮어씌운 홑이불을 턱밑까지 끌어당기고 꿈속에 겪은 일들이 실제인 양 마치 그 전모를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멀거니 앞만 쏘아보았다. 그러더니 온갖 식물들로 무성한 정원을 향해 활짝 열려있는 커다란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프랑스로부터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키웨스트에 도착한 뒤로 줄곧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앙투안이 고함지르는 바람에 눈이 떠진 가브리엘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팔짱을 꼈다.


“조용히 해. 매번 악몽이야?”


“그래. 하늘에서 보물이, 그다음엔 무덤에 떨어졌다 이 말이지. 심리학자를 찾아가 봤는데, 점점 미쳐가고 있다는 거야. 이젠 불가사의고 뭐고 다 지긋지긋해!”


가브리엘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진정해! 지금 휴가 중이잖아.”


앙투안이 기지개를 켜자 분위기는 다시 사그라들었다. 가브리엘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플로리다로의 여행을 보다 근사하게 만들어보려고 이것저것 세심히 신경을 썼다. 비행기 좌석도 아주 넓은 자리로 예약했을 뿐만 아니라 마이애미 공항에서 오픈카도 예약해 놨다. 그런 뒤에 바다에 떠있는 섬들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달려 뒤발 거리에 위치한 매혹적인 호텔에 도착한 것이다.


야자수가 줄지어 선 전원풍의 해변과 고운 모래사장……. 그래서 그들은 그저 편안한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키웨스트 섬에 열흘 이상을 묵고자 했던 것이고, 앙투안은 다시는 프랑스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작정하기까지 했다.


그녀가 여행의 목적지를 이곳으로 정했을 때, 앙투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플로리다, 마이애미, 여행객들로 득실득실 한 해안, 미국식 삶의 방식이 만들어낸 가짜 열대 풍의 섬들, 이 모든 것 자체가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앙투안은 생각했다.


판단 착오. 키웨스트의 상쾌하면서 나른한 공기와 함께 야자수 숲에 건물 베란다가 잠긴 집들 하며, 미국 남부 전통 가옥의 판에 박힌 듯한 풍경은 앙투안으로 하여금 이 구석까지 찾아오게 만든 요인이었다.


가브리엘은 피로를 풀고자 주기적으로 키웨스트 섬을 찾았다. 그리고 그녀는 선험적인 것을 포기한 대신 무언가를 점차적으로 꿰뚫어 보는 기쁨마저 누렸다.


앙투안이 다시 기지개를 켰다. 파리 몽마르트르의 성심성당에서 템플 기사단의 보물을 발견한 뒤로 벌써 10개월이 경과했지만, 그가 금박으로 뒤덮인 둥근 천장과 진귀한 돌들을 꿈꾼 것은 단 2주에 불과했다. 꿈은 어설프게 악몽으로 끝나고 말았으나 그는 꿈속에서 언덕 깊숙이 단 하나의 돌로 된 검은 기념비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는 심오한 계시를 받은 것 같아 흥분하기까지 했다.


“또 다른 것이 있었어.”


“뭐라고?”


“보물을 발견한 후에 포토츠키 백작이 전화로 내게 말한 것 말이야. 너 알아? 제2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독일군들이 프라하 인근의 성에 놔둔 금괴 상자들 말이야.”


“응 알아. 진리는 무덤 안에 존재한다.”


“그래 바로 그거. 어디다 숨겨둔 게 아니야. 보물은 바실리카 대성당 안에 있었어. 땅속이 아니고.”


“만약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다 잊고 있다면?”


“그래! 알았어. 넌 항상 나와는 반대니까.”


가브리엘은 그를 바라보자 몸에 가벼운 전율이 흘렀다. 그녀는 이 남자에게 애정을 느꼈다. 그것 또한 단순했다. 그렇지만 그는 그녀와는 정반대로 지극히 남성적인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는 갈색 머리칼에, 빈정거리는 말투에, 고집불통에다가 더군다나 철저히 남성적 사고에 젖어 행동했음은 물론 게다가 신분이 경찰이기까지 했다.


그녀는 금발에다가 세련된 남자들을 더 좋아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지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거나 예술 활동을 하는 남자들을 선호했다. 서핑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제격이겠지만, 그 역시도 반드시 금발이어야만 했다.


그는 싱글들과 즐겼다. 그녀는 재미 삼아 파리에 사는 여자들과 쾌락을 즐겼다. 그러나 앙투안은 그녀가 그에 대해서 어떤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확신에 찬 어조로 그녀를 이끌어갔다. 그녀는 그에 대한 강한 확신과 나약한 생각이 서로 뒤죽박죽 되어 독특한 매력이 넘치는 이 남자에게 미처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상태였다.


특히 그는 아주 육감적인 매력으로 그녀를 뒤흔들어 놓았다. 음침하고도 위험하며 흥분상태의 세계로 점점 빨려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는 프리메이슨 단의 형제였으며, 그녀 역시 그의 소개로 프리메이슨 단에 가입하였다.


앙투안의 파리 아파트에서 처음으로 저녁을 함께 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앙투안의 아파트에 머물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파트는 방마다 온갖 물건들로 뒤죽박죽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온갖 책들이 한데 뒤섞여 엉망진창이 된 서재를 연상케 했다. 침실이 성심성당 정원 쪽을 향하고 있어서 마치 자신의 아파트 침실 같다는 느낌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들은 거의 1년 가까이를 주기적으로 만났다. 그렇지만 각자 자기 집만을 고집했다. 한 아파트로 합치면 각자의 물건들을 어디에다 치워버리기가 마땅치 않은 탓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녀는 그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앙투안 마르카스는 한 마디로 거칠게 다룰 필요조차 없는 사나운 짐승 그 자체였다.


그녀는 플로리다로의 여행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아주 의미심장하게 그리고 중요한 단계로 이끌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앙투안에게 그녀만의 개인적인 세계의 한 부분을 이해시키고자 한 의도를 지니고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녀에게 있어 키웨스트는 피난처였고 항구와 같은 곳이었다. 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녀가 블루스 음악의 한 곡조를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아주 어렸을 때 이곳으로 데려온 적이 있었다. 그녀가 내린 아주 정당한 판단은 물려받은 부모의 유산으로 시시 때마다 비행기를 타고 이 지역을 샅샅이 훑어보는 것이었다.


키라르고는 아니었다. 너무 광활했다. 이슬라모라다도 아니었다. 이들 해변은 너무 호화롭고 사치스러웠다. 인정이 없기는 타베르니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부들로 들끓는 해안…… 아니 이와는 다르게 키웨스트는, 또한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거의 유럽 스타일을 방불케 했다. 정기적으로 여객선을 가득 채운 관광객들이 떼를 지어 파도처럼 밀어닥치는 것만 제외한다면, 아직도 키웨스트는 유럽의 분위기마저 띠고 있었다.


만약 앙투안 마르카스가 섬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참으로 난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그와 같은 경우는 벌어지지 않았다. 앙투안 역시 자신이 경찰이라는 딱딱한 이미지를 재빨리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너 알아? 내가 이 섬에서 좋아하는 게 뭔지?” 앙투안이 빈정거리듯 물었다.


“태양?”


“그것만이 아니야. 여기 사람들은 내게 더 이상 무슨 위기라는 둥, 어떤 채무라는 둥 말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느닷없이 사회적 플랜이 어떠하다는 둥 떠들어대지도 않기 때문이야. 이 지역 신문들을 쭉 훑어봤는데 야자수로 가득 찬 이 지역에서는 모든 게 다 예스야. 단 한 줄의 기사만이 비판적이고 그것도 랑구스트(바닷가재의 일종)가 기어가듯이 점점 목소리를 높여갈 따름이야.”


“예스, 예스……. 과장하지 마. 여기에서도 위기 상황은 존재해. 더군다나 여기 사는 사람들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해. 사회적인 비참함에는 눈을 감고 말이야. 그게 현실이야.”


“그렇지만 자유, 공산주의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제3지대는 아니야. 너 알아? 어느 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인지?”


그녀가 그를 쳐다보았다.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간혹 괴상망측한 질문을 던지는 편집광적인 기이한 취향을 지니고 있었다. 그게 또 그를 매력적이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다.


“내게 설명해 봐. 마이 브라더 씨!”


“그래. 마이 시스터! 라 시에라 레오네, 아프리카에 있는 그곳 말이야. 바로 그곳이 지구상에서 제일 못 사는 지역으로 손꼽히는 곳이야. 그것도 첫 번째로! 비행기 안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그들은 다이아몬드 광산을 갖고 있어. 아주 멋진 해변도 있고. 여기보다 더 근사한. 그렇지만 주민들은 그칠 줄 모르는 시민전쟁으로 쑥대밭이 되어 영문도 모르는 비참함 속에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어. 템플 기사단의 보물을 전해줘야 하는 이들은 바로 그들이야.”


그녀는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넌 너무 지나치게 그들에게 호감을 갖고 있어. 그들이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지나친 선입견 같아. 말로리 스퀘어 쪽으로 빨리 뛰어가 볼까? 일몰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이교도의 에로틱한 지역 축제도 펼쳐지나?”


“그건 항구에서 벌어질 거야. 뒤발 거리 꼭대기 쪽 말이야. 사람들이 해가 지는 것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들겠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보려고.”


이번에는 앙투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팔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를 두 팔로 꼭 껴안고는 미친 듯이 입을 맞추었다.


그의 두 손이 그녀의 몸에 쫙 달라붙은 크림 빛 아마 천 원피스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그녀는 마치 몸이 풀어지는 듯한 느낌에 빠졌으나 이내 그의 두 팔을 뿌리쳤다.


“질문하지 마! 오늘 저녁에는 제발. 바깥에서 경찰 티를 내지 마. 나는 진짜 경찰을 부를지도 몰라. 힘없는 여자를 성적으로 괴롭힌다고.”


“음……. 만일 내가 이 섬에서 감옥에 가야 한다면 당연히 그걸 받아들이겠어.








[1] 헤밍웨이가 여생을 보낸 곳으로 아직까지 그의 생가가 남아있는 미국 최남단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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