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피 조에스 술집

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14화

by 오래된 타자기


제1부 2-2



미국 플로리다

키웨스트 섬

지금 현재


가브리엘은 앙투안에게 침실 문을 가리켰다. 그러자 앙투안은 몸에 꼭 끼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반바지와 마사로 짠 셔츠를 입고 낡은 가죽 장갑까지 끼었다. 15분쯤 지난 후, 두 사람은 포구를 향해 직진 방향으로 나있는 화이트헤드 스트리트를 성큼성큼 걸어갔다.


갑자기 바다 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면서 인도 가장자리에 열 지어 서있는 종려나무들이 바람에 펄럭이듯 흔들거렸다. 거리 한가운데 꼭대기에서 타오르던 태양도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가브리엘은 고개를 쳐들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뇌우가 쏟아지려나.”


앙투안이 가브리엘의 손을 잡았다.


“너 농담하는 거지? 일기예보는 오늘 내내 맑은 날씨라 했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두 사람은 감리교에 속한 <원죄로 더럽혀지지 않은 교회>를 향해 뛰어갔다. 시커멓고 무시무시한 거대한 뭉게구름이 여기저기서 피어올랐다. 해는 언제 떠있었느냐는 듯이 사라진 채였다. 가브리엘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내가 알아맞혔지? 날씨가 이럴 거라고? 안 그래? 얼마 안 있으면, 엄청나게 비가 쏟아질 거야. 홍수 난 것처럼.”


“괜찮아. 누구나 착오를 일으킬 수 있잖아. 투덜거리지 말았으면 좋겠어.”


빗방울이 점점 더 굵어져 갔다. 가브리엘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선셋 스트리트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슬로피 조에스 클럽에 가자. 너는 네 일을 보고 나는 내 일을 보고. 미스터 일기예보!”


그녀는 샌들을 벗어 들고는 앙투안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맞은편 쪽으로 냅다 뛰었다.


“잠깐만! 슬로피 조에스 클럽은 어떤 곳이야?”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달음질쳤다. 떼를 지어 걸어가고 있는 행인들을 요리조리 피해 뛰어가는 그녀가 회전 경기 스키어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앙투안은 그녀를 붙잡고자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두 사람이 섬에서 가장 활기를 띠고 있는 뒤발 거리에 도착했을 때에는 빗줄기가 소나기로 돌변한 상태였다. 비를 피해 관광객들이 황급히 상점들로 피신하는 중이었다. 코코넛을 파는 이동식 가판대들도 천막을 급히 걷어 올렸다.


앙투안 마크카스는 마로 된 셔츠가 빗물에 다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반바지 역시 쥐어짠 걸레처럼 되고 말았다. 폭우는 점점 거세어져 불투명한 장막처럼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그는 가브리엘이 하얀 건물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휩쓸려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슬로피 조에스 바>라고 커다란 검은색 글자가 장광스럽게 수놓아져 있는 건물은 출입구가 세 개나 되었다.


앙투안은 버스가 지나가기를 기다려 뒤발 거리를 건너갔다. 안으로 막 들어서려는 찰나 천둥 번개가 치는 것이 들렸다. 들어선 카페는 비행기 격납고를 잘라 만들었는지 커다란 창고 같은 형태였다. 머리에 헬멧을 쓴 채, 울긋불긋한 색상의 티셔츠를 입은 미국인들이 입구 쪽에 떼를 지어 모여 서서 오도 가도 못하게 막아섰다.


그들은 모두 손에다 큼지막한 생맥주잔을 들고 있었다.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한 음악은 카페 실내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었다. 흘러나오는 곡조는 블루스나 컨트리 음악에 뿌리를 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앙투안은 실내 안쪽 깊숙이 마련된 무대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과 함께 곡조를 따라 부르며 소리를 질러대는 손님들 사이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 보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계산대와 붙어있는 바에는 병 모양의 모히또 잔들이 일렬로 세워져 있었다. 앙투안은 그중에 가장 큰 잔을 집어 들었다. 바텐더에게 5달러를 지불하고는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그때 어부 복장을 한 등치가 큰 남자와 부딪혔다. 남자는 천천히 돌아섰다. 하얀 수염을 기른 남자는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표정이었다. 이빨 사이에 시가를 물고 어깨에는 가짜 바다표범 가죽을 두른 모습이었다. 그 순간 앙투안은 환각에 사로잡혔다. 남자는 마치 완벽하게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닮아있었다.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무대 위쪽에 걸려있는 초상화 속의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빼다 닮은 모습이었다.


남자는 일격을 가하려는 듯 앙투안의 어깨를 툭 쳤다. 남자의 손이 느슨해진 셔츠를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어니스트는 술잔을 들어 올렸다.


“어이! 이봐! 건배!”


앙투안은 커다란 술병을 들고 그를 따라 꽤 기다란 유리병을 통째로 들이켰다. 알코올은 앙투안의 목젖을 뜨겁게 달구었다.


앙투안은 출판사 발행인 친구들 가운데 한 명인 피에르가 문득 생각났다. 피에르는 탁월한 작가를 예찬해 마지않던 인물이었다. 앙투안은 남자가 또다시 어깨를 치는 것을 교묘하게 피하고는 무대 옆쪽을 흘깃 쳐다봤다. 가브리엘이 검은 머리카락의 덩치 큰 남자와 뭐라고 떠들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하얀색 줄무늬와 검은색 줄무늬가 나있는 스웨터를 입은 덩치 큰 남자는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베레모를 쓴 모습이었다. 남자는 그녀와 어깨를 맞대고 웃고 있었다.


앙투안은 서있는 채로 웅성대는 군중들 사이를 뚫고 계속 걸어갔다. 주변에는 흰 수염을 기른 남자들만이 에워싸고 있었다. 키 큰 사람들, 키 작은 사람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이들, 혹은 아주 젊은 사람들, 술에 찌들어 코가 붉게 변한 남자들이거나 그렇지 않은 이들, 태평스럽게 배가 뿔룩 튀어나온 이들. 간결하고 힘찬 필치로 유명해진 작가가 묘사한 온갖 구성체들로 뒤죽박죽이었다. 도처가.


가브리엘이 앙투안에게 신호를 보내왔다. 앙투안은 덩치 큰 어니스트에게서 막 빠져나오던 참이었다. 그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을 때는 숨이 차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만 했다. 앙투안은 무대 쪽으로 다가갔다. 무대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모여 있던 무성체들이 꽤나 젊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의 대열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은 앙투안과 가브리엘 사이에 인간 장벽을 드리웠다. 이번에는 균형이 잘 잡힌 체격에다 검은색과 금발이 섞인 머리카락에 기다란 수염 대신 칠흑같이 검은 커다란 콧수염을 기른 이들이 떼 지어 몰려들었다.


앙투안은 용기를 발휘해 젊은 어니스트 그룹을 가차 없이 밀쳐냈다. 가브리엘과 스웨터를 입은 사내 가까이 이르자 이번에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그룹 가수가 트림을 해대는 바람에 냄새를 피하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다들 정신 착란 상태에 빠져있는 것 같아. 네가 말한 슬로피 조에스 바 전체가! 넌 나를 이런 곳에 끌고 오려했니? 나 역시 문학작품 속의 에스키모 얼음동굴인 이글루 추장으로 변장할 수는 있어.”


이번에는 그녀가 소리를 질러댔다.


“매년 열리는 헤밍웨이 흉내 내기 콩쿠르 예선이야! 자! 인사를 나눠. 퐁크야. 아주 오랫동안 친구처럼 지낸…….”


퐁크란 사내는 가브리엘에게서 떨어져 앙투안 마르카스를 향해 몸을 반쯤 돌렸다. 이번에는 앙투안이 사내의 어깨를 툭 쳤다. 앙투안이 그렇게 하는 것이 이 지역 풍습이라고 말하자 사내 역시 앙투안의 어깨를 툭 쳤다.


어깨를 한 대 얻어맞으니 스웨터 입은 남자의 체격이 태산과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내는 약간 술 취한 기색이 역력했다. 남자의 눈빛이 이글거리며 불탔다. 사내 앞에서 앙투안은 반 리터 짜리 버드와이저 생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버디! 이리 와, 한 잔 하게!”


앙투안은 모히또도 단 숨에 들이켰다. 슬슬 취기가 돌았다. 하지만 아직은 멀쩡했다. 앙투안은 사내에게 뭐라 변명하려 했으나 가브리엘에게 열중한 탓에 그녀에게 딱 달라붙어 있던 사내와는 달리 마치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처럼 돌아섰다. 젊은 여자는 앙투안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퐁크, 저 사람 누구야?” 둘이 있게 되자 앙투안 마르카스가 소리 지르듯 물었다.


“응! 옛날에 사귀었던 남자야. 안 만난 지 벌써 일 년이나 됐어.”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쓴 헤밍웨이 경연 대회에 참석한 사내는 두 사람이 쳐다보는 것을 피한 채, 맥주잔으로 앙투안을 밀쳤다.


“지옥에나 꺼져라! 이 당나귀 새끼야!”


가브리엘이 그를 말렸다.


“퐁크! 안돼. 그는 친구야.”


그러더니 앙투안을 돌아보며 이야기했다.


“놔둬. 약간 취했으니. 그는 첫 번째 경연을 위해 5분 내로 무대로 올라갈 거야. 그 뒤에는 어딘가로 찌그러지겠지.”


그녀는 앙투안에게 뒤로 물러설 것을 부탁했다. 이론상으로는 그녀가 옳았다. 이런 부류의 인간은 자신보다 힘이 셌다. 하지만 또 다른 면에 있어서 그는 절대로 콧수염을 기른 오소리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럼주가 그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이 여자는 자신의 여자였다. 그는 헤밍웨이를 귀찮게 굴었을 뿐이다. 그는 스웨터 입은 남자의 어깨를 툭 쳤다.


“이봐! 퐁크! 그녀는 내 여자 친구야!”


사내는 몸이 꼿꼿해졌다.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브리엘 쪽을 바라보면서 트림을 해댔다.


“정말이야?”


프랑스 여자는 말을 더듬거렸다.


“응……. 응! 근데…….”


헤밍웨이는 커다란 음성으로 계집애 하면서 소리쳤다. 동시에 몸을 휙 돌려 앙투안의 면상에 있는 힘을 다해 주먹을 날렸다. 주먹을 맞은 앙투안은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뒤로는 커다란 탁자 위에 또 다른 세 명의 헤밍웨이들이 앉아있었다.


앙투안 마르카스가 벌떡 일어났다.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그에게 달려드는 퐁크를 피해 달아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앙투안은 재빨리 퐁크의 다리를 걸어 쓰러뜨렸다. 미국인 사내는 서서 이를 지켜보려던 또 다른 무성체들 위로 벌렁 나자빠졌다.


앙투안은 정면으로 달려드는 또 다른 콧수염을 기른 사내를 용케 따돌렸다. 그러면서 주위에 헤밍웨이들이 몰려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가짜 헤밍웨이들은 자신들이 숭배하는 우상에 대한 기념식을 이처럼 성대하게 치르고자 하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주먹이 날아왔다. 분위기에 취해 흥분한 음악 연주가들이 가세하여 실내 분위기는 한층 고조되었다. 앙투안은 퐁크가 일어서는 것을 도와주려고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스웨터를 입은 사내는 앙투안의 손을 맞잡았다.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순간 프랑스 남자는 일어서는 사내의 광대뼈를 아작 냈다. 손가락뼈들이 으드득 소리를 내는 것이 앙투안의 귓가를 스쳤다.


“이봐! 퐁크!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를 아나?”


그는 두 팔로 가브리엘을 안고 기뻐서 소리 질렀다.


“참 희한하네. 마치 옛날 서부영화에 나오는 채찍질 같아. 프리메이슨 단의 비밀 결사 모임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야. 정말 점점 더 이 고장이 좋아지는 것 같아.”


“난 아니야! 아주 너절해지는 기분이야. 퐁크는 두 번씩이나 너를 가격했어. 그는 널 묵사발로 만들어 놓을 거야. 꺼져!”


앙투안은 박살 난 코 말고도 머리가 찌근거리는 통증을 느꼈다.


“아! 못 가. 술을 코가 삐뚤어지게 마시는 게 얼마 만인데. 이 말 같은 놈들한테 프랑스가 어떤 지를 보여주고 말 테다.”


“됐어, 그만해! 넌 이미 마실 만큼 마셨어.”


가브리엘은 앙투안을 난투극이 벌어진 한복판으로 끌고 갔다. 퐁크는 소리 지르면서 그들에게 다시 다가가려고 소동을 피웠다. 이젠 술집 전체가 서로 치고받고 난장판으로 변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서로 욕설을 퍼부어댔다. 두 프랑스 남녀는 머리 위로 날아오는 술병들과 또 다른 물건들을 용케도 잘 피해 가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앙투안은 술 취한 목소리로 트림하듯 끄윽 댔다.


“너 퐁크라 부르는 저 새끼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만일 그녀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비밀 결사체 단원들인 네 자매들 말이야. 좋아할 리 없어. 퐁크와 가브리엘, 이 둘은 올해의 인물이 될 거야!”


그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앙투안을 출구 쪽으로 끌고 갔다. 밖에는 비가 이미 그친 상태였다. 맑은 햇살이 거리를 환하게 비췄다. 갑자기 나타난 경찰차의 요란한 경광등과 함께 사이렌 소리가 뒤발 거리를 뒤흔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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