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17화
제1부 3의 2
성지
알 킬할 도성
1232년 만성절 전날
성벽 높은 곳에서 이맘(이슬람의 지도자)은 병사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말을 믿고 전투에 참가한 대원들을 격려했다.
쿠비르의 명령에 따라 성문이 다시 닫혔다. 순라를 위해 나있는 길도 폐쇄했다. 혹시 새로운 소식이 있나 길 한가운데로 쏟아져 나온 군중들로 거리마다 인산인해를 이뤘다. 쿠비르는 수비대를 갑절로 증원했다. 각 망루마다 제일 높은 곳에 궁수들을 배치하고는 멀리 지평선 쪽을 감시하도록 했다. 이는 모든 견제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또 하나의 방편이었다.
이 같은 경계 상태가 주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화가 난 장사치들이 시위를 하기 위해 한 곳에 모여든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상인들 대부분은 예루살렘으로 도망쳤다.
예루살렘은 이미 십자군의 지배로 되돌아갔다. 그런 연유로 무리를 이뤄 약탈을 하고 다니는 이들을 경계하고 나선 것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보다는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혹심한 일이었다.
지방의 도성 주민들은 특히 회교도의 지도자인 이맘 같은 세련되지 못하고 턱수염만 길게 기른 이를 비난하고 나섰다. 이런 부류의 인간은 토착민들과 피난민들 간의 갈등을 봉합할 책임이 있었다.
게다가 원주민들은 망명한 이들 가운데 부자가 된 자들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들에 대한 불만은 다름 아닌 부자들이 이미 살기에 편한 집들을 거의 독차지하고 있으며, 생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먹거리마저 금값으로 치솟게 만들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성벽 아래를 샅샅이 뒤져라!”
되풀이되는 크하타니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자원한 대원들은 굼뜬 행동을 보이면서 재빨리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성문들이 닫혀있다는 생각이 들자 처음의 용기는 금방 사그라들고 말았다. 옛날에 파놓은 외호들마저 마치 두꺼운 양털처럼 빽빽이 자란 키 작은 관목들과 가시덤불들로 덮여있었다. 대원들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도저히 수풀이 서로 얽히고설킨 덤불 안으로 들어설 용기가 나질 않았다.
“이쪽으로!”
적들의 흔적을 뒤좇아 수색하던 척후병 가운데 한 명이 소리쳤다. 나뭇가지들 사이로 깊이 파인 구멍이 나타나면서 나뭇가지들이 사람 키 높이쯤에서 부러져있었다. 대원들은 구덩이 가까이로 다가갔다.
땅바닥에 핏자국이 선연했다.
기욤은 소리 내지 않고 포복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뚱뚱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기복이 심한 땅바닥을 잘도 기어갔다. 칠흑 같은 밤이라서 움직임을 거의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롱슬랭의 지시에 따라 그는 정찰 임무를 띠고 다시 출발했다.
프로방스 사내는 신중했다. 전술이 성공할 가능성이 있을 때만 공격을 개시했다. 자칫 기욤은 소리칠 뻔했다. 까칠까칠한 풀이파리가 그의 두 입술을 여지없이 찢어놓았다. 나무가 우거진 꼭대기에서 롱슬랭은 멈춰 섰다. 마치 먹이를 발견한 짐승처럼 자세를 웅크렸다.
사람들이 해자 안에서 뭐라 소리 질러댔다. 고개를 쳐들고 횃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는 성벽 꼭대기를 바라보니 궁수들이 어둠 속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기욤은 아주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궁수들은 기욤을 전혀 발견할 수 없을뿐더러 그가 있다는 사실조차 짐작하지 못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기욤은 어느 것 하나 자신에게 천벌이 내려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마저 좋아졌다. 드뱅이 그에게 설명하기를 힘이라는 것은 마치 성적인 욕망을 갈망하는 여자와도 같아서 여인네는 늘 자신을 성적으로 만족시켜 줄 수 있는 남자를 따라간다는 것이다.
기욤은 드뱅이 전하는 이야기를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지만, 막 살인을 저지르려는 순간에 발산되는 자신에게 내재해 있는 아주 뜨거운 열기와 같은 것이라고 스스로 결론지었다. 바로 이 순간에도 그와 같은 열기가 온몸을 훑으며 솟구치고 있었다. 열기는 극도로 흥분된 심적 상태에까지 거의 차올랐다.
어디선가 외쳐대는 소리가 들리면서 그를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해자 속에서 사람들이 모여 뭐라고 떠들어댔다.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요란한 웃음소리는 벽들에 반사되어 사방으로 흩어져 갔다.
기욤은 뒤로 물러서서 몸을 움츠렸다. 숲 기슭으로 되돌아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대원들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병사들은 승리의 표지로 팔을 들어 보였다. 기욤은 혀로 찢어진 입술을 핥았다. 피 맛이 느껴지자 기분도 덩달아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