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18화
제1부 3의 3
성지
알 킬할 도성
1232년 만성절 전날
쿠비르는 서둘러 성문을 열라고 명령했다. 이맘의 신봉자들은 가슴을 두드리며 알라신에게 감사드렸다. 몇 명은 히죽대면서 땅바닥에 가래침을 뱉었다. 다른 이들은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그들을 찾고 있었다.
쿠비르가 이동을 차단하자 아이를 둔 여인네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길을 나다녔다. 아이들만이 아무것도 모르는 양 환호성을 내질렀다. 마찬가지로 장사치들도 자유롭게 성문을 오갔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 가슴팍에 금붙이 목걸이가 번쩍거리는 사내가 불쑥 쿠비르에게 말을 걸어왔다.
“무슨 까닭에 자네는 경보를 울렸는가? 온 도성 주민들 간담을 서늘케 만들고 지금 제정신인가?”
수비대장이 대답하려는 순간 등 뒤에서 크하타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쿠비르는 비열한 놈이다. 별것도 아닌 소음을 듣자마자 구원부터 요청했다. 밤에 젖 달라고 보채는 아이처럼 말이다.”
이맘의 조롱에 여기저기서 비웃음 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쿠비르는 자칫 말대꾸를 할 뻔했으나 이내 생각을 바꿨다. 군중 속에서 그는 웃고 있던 몇 명의 궁수들을 눈여겨보았다. 그들도 다른 이들과 함께 이맘의 조롱에 열렬히 화답하고 있었다.
“너희들 여기서 뭐 하는 짓들이냐? 경계를 서지 않고?”
그때 이맘이 쿠비르의 말을 자르면서 끼어들었다.
“명령을 내리는 자 그대는 누구인가? 그대는 자신의 그림자마저 무서워하는가?”
“그만하시오!” 수비대장이 소리쳤다. “발자국 소리를 듣고 경보를 울린 거요.”
“사람 발자국 소리?”
크하타니는 나무가 우거진 숲 초입에 있는 대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쿠비르는 주저하지 않았다. 성벽 아래에서 슬그머니 엿보며 어슬렁거렸던 것은 분명 사람이었다.
“알라신께 맹세하건대, 그렇소. 분명 사람이었소!”
“그래서? 부끄러운 줄 알아라.” 이맘이 나무랐다.
호탕하게 웃어대던 이들 가운데 한 명이 다가왔다. 어깨 위에는 누군가 쓸모없다고 땅바닥에 내던진 짐 덩어리를 짊어지고 있었다. 죽음의 냄새가 확 끼쳐왔다. 쿠비르는 서둘러 손에 횃불을 들었다.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죽은 돼지 한 마리가 불빛 아래 형체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