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이 공격당하다

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25화

by 오래된 타자기


제1부 5-1



성지

알 킬할 도성

1232년 만성절 전날


이맘을 둘러싸고 발생한 소요와 열광 탓으로 화살을 맞고 쓰러진 첫 번째 희생자의 시신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설교하는 동안 이맘은 신자들이 황홀함에 빠져드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잦았다.


은총으로 주어진 웅변가로서의 특별한 능력에 의해 빨려 들어가면서 동시에 집단적인 열광의 도가니 속에 도취된 군중들은 여기저기 떼 지어 몰려다녔다.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갑자기 흥분상태에 빠지기도 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말들을 주워 담기도 했다. 어떤 이는 흐리멍덩한 채 두 눈을 까뒤집고는 입안에 거품을 물면서 알라가 출현할 것이 틀림없다면서 먼지가 풀풀 이는 바닥에 나뒹굴기까지 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화살을 맞고 쓰러진 병사 주위로 몰려들어 둥글게 원을 만들어갔다. 여자들은 내 탓, 네 탓이라고 외쳐댈 뿐, 광란 상태에 빠진 아이들은 그녀들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시체를 에워싸고 술래를 돌기 시작했다.


도처에서 이맘을 외쳐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알라신을 섬기는 위대한 자는 자신의 신앙심으로 어떤 기적을 바라는 듯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비대 어느 한 사람 자리를 뜨지 않았다.


궁수들이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횃불은 손에서 손으로 옮겨졌다. 누군가가 횃불을 시체 가까이로 던졌다. 핏물로 가득 찬 검은 웅덩이가 보이는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들이 죽음의 비처럼 군중들을 향하여 쏟아졌다.


대경실색한 알 킬할 주민들이 이리저리 뿔뿔이 달아나면서 모든 것이 명확해져 갔다. 어둠 속에 짓이겨진 상태로 핏물로 범벅인 사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두 번째 병사가 화살을 맞고 고꾸라졌다.


“악마들이다! 귀신들이다!” 한 여자가 울부짖었다.


귀신이란 끔찍하고도 무서운 단어가 여기저기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도성은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였다.


“귀신들이 도성을 공격한대요. 도망치세요!”






어느 순간 갑자기 밀려든 악마들의 대열이 성문을 무너뜨렸다. 쇠 장갑을 낀 손아귀에 칼을 쥔 병사들은 피에 굶주린 듯 칼날을 번뜩였다. 주민들이 몇 명씩이나 화살에 맞고 쓰러지자 모두가 혼비백산되어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아이들은 땅바닥에 나뒹굴고 여자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벽에 부딪혀 반사되면서 절망감을 고조시켰다. 약탈자들은 순식간에 들이닥쳤다. 쇠로 된 벽마저 군중 쪽으로 와르르 무너졌다.


롱슬랭은 앞장서서 선두에 섰다. 도끼를 든 그의 손이 들어 올려지자마자 허공에서 한 번 회전하더니 근육의 힘이 실려 가속도가 붙은 상태로 힘차게 허공을 갈랐다. 부관은 땀에 절어 왼손에 방패를 집어 들었다. 금속의 차가운 느낌이 살갗에 전해지자 동공이 흐릿해져 갔다. 공포로 말미암아 복부가 뒤틀리는 듯했다. 발치에는 한 사내가 죽어가고 있었다. 화살이 눈에 박혀 아직까지도 흔들거리고 있었다.


롱슬랭은 미소를 지었다. 칼날은 면도날처럼 누군가의 목을 잘랐다. 매일 아침마다 전투 준비를 하면서 그는 예리하게 전략을 세우고는 대원들에게 노획물을 배당했다. 칼날은 잘 무른 과일처럼 겨드랑이를 가르고 옆구리를 관통하면서 급소를 찔렀다.


간단하게 손목만 움직이는 동작 하나로 프로방스 사내는 궤도를 수정하면서 단 칼에 적군의 동맥을 잘랐다. 내장들이 튀어나오고 가슴은 고통으로 요동치면서 갑옷이 굴러 떨어져 멀리 먼지 속에서 나뒹굴었다.


롱슬랭은 군홧발로 적군을 짓밟았다.


가장 먼저 도망친 이가 이맘이었다. 그는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이들을 사정없이 내치면서 어딘가로 줄달음쳤다. 알라신조차도 그를 섬기는 자가 자신이 저주하던 십자군의 손에 잡혀 죽음에 이르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붙잡히면 끝이었다. 이를 모면할 방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엎어진 아이를 발길로 걷어차는 바람에 아이의 얼굴이 짓이겨졌다. 이맘은 오직 성문 쪽으로 내달렸다. 성문 주변으로는 갑작스레 공포로 가득 찬 상황이 벌어지면서 시신들이 곱절로 쌓여만 갔다.


이맘이 어디로 갈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 사이 성벽 발치에 장사치 한 명이 내동댕이쳐진 상태로 나뒹굴었다. 성문 앞에는 화살을 맞고 죽은 시신들이 널브러져 통행로마저 막혀있었다. 십자군 궁수들이 목표를 정확히 겨냥하고 화살을 날리는 탓에 화살을 맞고 쓰러져 나뒹군 시체들이었다.


이성을 잃은 병사들이 성벽 안에서 지나가는 행인을 한 칼에 목을 잘랐다. 크하타니는 서둘렀다. 그는 훌떡 발길질로 시신의 어깨 부분을 밀쳤다. 그러다가 옆으로 기운 시체의 팔을 잡고는 끌어당겼다. 안 되겠는지 그는 다시 피범벅이 된 시신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다른 시체 위에 올려 쌓아 바리케이드를 쳤다.


어디선가 날아온 창이 그의 몸을 관통할 뻔했다. 시체 사이를 비집고 몸을 굴려 그는 마침내 격렬하게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성문 근처에 이르렀다. 그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얼빠진 표정이었으나 그는 살아있었다. 전지전능하신 알라신이시어! 그를 구하소서.


궁수들은 화살을 계속 쏘아댔다. 무수한 화살들이 덤불숲을 이루면서 허공을 날아와 성 안에 떨어지자 성 안이 이내 혼란과 절망의 상태에 빠져들었다.


롱슬랭은 도끼날을 잡아 쥐고는 도끼에 잘려나가 너덜너덜해진 몸뚱어리의 살점들을 벗겨냈다. 그는 안면을 보호하기 위해 내린 투구의 면갑을 들어 올렸다. 포효하는 외침이 올리브 재배지 언덕을 거슬러 퍼져갔다.


기마병들은 살아남은 자들을 닥치는 대로 뒤좇으며 목을 베고 있었다. 기욤은 복면 아래로 줄줄 땀을 흘렸다. 그는 검을 왼손으로 옮겨 쥐고는 오른손엔 철퇴를 집어 들었다. 철퇴는 그가 애지중지하는 무기였다. 철퇴는 물푸레나무로 만든 무거운 손잡이에 사슬을 감아 기름칠을 하고 몸통에는 6파운드에 달하는 쇠구슬을 빽빽이 박아 넣은 것은 물론 뾰족뾰족하게 튀어나온 쇠구슬 끝에는 독이 묻어있었다.


기욤은 철퇴를 든 팔을 휘둘렀다. 맨 앞줄에 서서 방어하던 병사들을 향해 내려친 철퇴는 그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수비대원의 얼굴을 정면으로 후려치면서 피범벅이 된 두개골을 산산조각 냈다.


철퇴를 내려놓은 기욤은 인정사정 보지 않고 일격을 가했다. 피범벅이 된 뇌와 부러진 척추가 서로 뒤섞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된 몸뚱어리는 피가 흥건했다. 그가 고개를 쳐들자 말 한 마리가 어두운 허공을 향해 뛰어올랐다.


세상의 종말이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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