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26화
제1부 5-2
성지
알 킬할 도성
1232년 만성절 전날
캄캄한 밤인데도 불구하고 이맘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내달렸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대로 한복판에 도착하자 그는 왼쪽으로 비스듬히 방향을 틀었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광장이 다시 나타나기 전에 통행을 구실 삼아 막아놓은 길로 들어섰다.
크하타니는 벽에 등을 붙이고는 샌들을 벗어 들었다. 발바닥에서 돌길의 시원한 감촉이 느껴졌다. 앞쪽에 있는 건물 정면에 시선을 던지면서 그는 확신했다. 아케이드 밑을 살금살금 발자국을 떼면서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거리는 이맘의 마음에 영 내키지 않는 구역에 속했다. 이 구역은 시리아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이었고, 희한하고도 기이한 제식에 빠진 동방 기독교도들인 그들은 기회주의자들이면서 동시에 돈에 쉽게 매수되는 이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상황에 따라 카드놀이를 즐기듯 이슬람에 붙었다 프랑크인들에 붙었다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손아귀에 붙잡히는 날이면 곧바로 십자군에 엄청난 값에 넘길 개들임이 분명했다.
불현듯 이맘이 멈춰 섰다. 창문 하나가 막 열리던 참이었다. 창문 너머로 빛이 어른거렸다. 크하타니는 벽에 꼼짝 않고 등을 기대고 서서 관자놀이에서 피가 솟구치는 것을 참았다.
두 번째 창문이 빛을 쏟아내자 다른 창문들도 불이 들어왔다. 이맘은 곧 깨달았다. 광장에 이르는 쪽에서 병사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내달리는 중에 귀머거리처럼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서둘러 탈출할 수 있었다. 후다닥 앞에 나있는 오른쪽 길로 내달렸다.
나이 든 여자 노인네를 밀치고 거지를 쓰러뜨린 채, 그의 앞길을 막는 자는 가차 없이 걷어차면서 오직 알라만이 그를 인도하고 있었다. 대장간을 지나치자마자 그는 하마터면 세 명의 악마들한테 붙잡힐 뻔했다. 세 명의 악마들은 길 한가운데를 가로막고 행인들이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가슴은 격렬하게 쿵쾅거리면서 벌거벗겨진 발들은 불타듯 따가웠다. 그는 비스듬히 방향을 틀어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자 어디쯤에 와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시리아인들의 구역을 벗어난 것이 분명했다. 건물들의 외양이 달라져있었다. 건물들에게서 풍겨지는 호사스럽다는 인상 역시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그는 곰팡내가 나는 나무로 만든 문짝에 몸을 바짝 붙이고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쿠비르로부터 겁쟁이 소리를 들을 것이 분명했지만, 그러나 어쩌는 도리 없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숨어들 곳을 찾아야만 했다.
달빛이 가난에 찌든 집들을 창백한 후광으로 둘러쌌다. 이맘은 자신이 있는 장소가 어디쯤인지를 알게 되자 갑자기 구역질이 나면서 표정이 일그러졌다.
신은 이쯤에서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신은 그에게 어떤 표지를 전해줄 것이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어느 순간 길을 가던 그는 갑자기 골목길 끄트머리에서 두 명의 악마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그에게로 다가와서 인정사정 보지 않고 그를 내리쳤다. 표지는 단지 표지일 뿐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굶주린 개 한 마리가 어디선가 달려와서 이맘 앞에서 종종걸음을 쳤다. 그를 힐끔힐끔 쳐다보던 개가 문을 마구 긁어대기 시작했다.
전지전능하신 신의 계시. 마침내.
그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지만, 길 한쪽으로 나뒹굴고 말았다. 개가 끙끙거리고 있는 쪽이었다. 만일 알라가 그를 버리지 않았다면,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게 될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