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27화
제1부 5-3
성지
알 킬할 도성
1232년 만성절 전날
주술사 드뱅은 쓰고 있던 복면을 벗어던졌다. 복면의 눈 부위에 해당하는 곳에 난 구멍이 너무 협소하여 시야가 잘 확보되지 않은 탓이었다. 이제야말로 이리저리 전체를 다 주시할 필요가 있었다.
성벽 반대쪽으로 말이 질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죽은 자들도 산 자들도 그들의 속도를 멈추는 법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롱슬랭이 이끄는 악마들은 그들이 가는 곳마다 닥치는 대로 죽이고 파괴를 일삼았다.
몸을 짓눌러 으스러뜨리고, 뻗은 팔을 자르고, 머리를 박살 내고, 배를 찔러 가른 후, 내장을 들어내고 찢어발기는 바람에 발길에 짓밟힌 내장들에게서 썩은 내가 진동했다. 서서히, 아주 천천히 드뱅은 장벽으로 다가갔다.
입구 가까이에 다다르자 시체를 도려 베는 사람들이 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아주 끝장을 내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분노의 외침들이 터져 나왔다. 사내들은 시체들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었다. 여자의 시체는 그들이 가장 애호하는 물건이었다.
시체를 찾으면 손가락을 절단하고 귀를 잘라낸 다음, 반지나 귀고리를 추려냈다. 또 다른 이들은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팔다리가 잘린 시체들을 들어 올려 해자 구덩이에 집어던졌다.
나막신을 질질 끌고 가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자 기마병들이 소리를 좇아 추격하여 그나마 남은 목숨을 건사하고자 도망치던 생존자들까지도 쓸어버렸다. 장사치 한 명은 단칼에 목이 날아가는 바람에 먼지 속을 나뒹굴었다. 도성을 수비하던 병사들 중 하나가 창을 휘두르고자 시도했으나 말의 박차에 맞아 그만 배가 터지고 말았다.
승리를 외치는 소리가 전투 대원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기욤은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들어 올린 채,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드뱅은 흩어진 화살과 버려진 화살통을 주운 뒤,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면서 서둘러 도성 안으로 돌진했다.
가장 큰 성문을 통과하자마자 궁수들이 열을 지어 앞으로 나아갔다. 파도처럼 밀어닥친 그들이 가는 곳마다 연이어 쏟아지는 화살들을 피할 겨를도 없이 모두가 널브러졌다. 마지막 보루에서 옹기종기 모여 방어를 꾀하던 병사들 또한 화살이 몸을 뚫고 관통한 탓에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롱슬랭은 그가 발견하자마자 즉석에서 구멍을 뚫은 통 하나를 굴리면서 궁수들이 대열을 이루고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 순간 썩은 기름 냄새가 사방에 퍼졌다.
“화살들을 통 속에 담가놓아라.”
궁수들이 한 명씩 차례차례 검은 기름통 속에 화살촉과 화살대를 담갔다.
“기욤!”
그의 부관이 앞으로 나와 두건을 벗었다. 허리춤에 작은 초롱 한 개가 걸려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섬세하게 기욤은 유리로 된 칸막이가 쳐진 초롱 하나를 통 속에 밀어 넣었다. 그러자 불꽃이 황금색으로 타올랐다.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불꽃을 이지러뜨리기 전까지 계속 타올랐다. 그는 불꽃으로 첫 번째 궁수에게 신호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 속에 불길이 환히 치솟았다. 롱슬랭은 화살 하나를 집어 들어 오늬(화살의 머리를 시위에 끼도록 에어 낸 부분)에 맞춰 끼워 넣은 다음 시위를 팽팽히 당기고는 화살을 날렸다. 불붙은 화살은 나무로 지은 집의 돌출부에 정확히 꽂혔다. 프로방스 사내는 궁수들을 향하여 몸을 돌린 뒤 외쳤다.
“모두 태워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