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구역

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28화

by 오래된 타자기


제1부 5-4



성지

알 킬할 도성

1232년 만성절 전날


유대인 성전은 눈에 띄지 않았다. 유대인 신전은 두 개로 나란히 자리한 가게들 사이에 박혀있어서 형식적으로 쌓은 벽 사이로 구불구불 나있는 골목길을 따라가야만이 신전에 이를 수 있었다. 사전에 그물처럼 얽혀있는, 마치 미로를 연상케 하는 골목길들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크하타니는 생각했다.


비위생적이고도 주위 환경을 해치는 아주 위험한 지역인 유대인 구역을 재정비하고자 시당국은 벌써 여러 차례 결정을 내린 바 있었다. 흔들거리는 집들을 싹 밀어버리고 몇 세대나 내쫓았다. 그리고 난 뒤, 몇 세기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이 거리를 아예 잊어버렸다.


그러나 이 지역은 여전히 사람들이 경멸해 마지않는 아주 위험한 구역으로 남아있었다. 유대인 성전 바로 옆에는 야생 상태에서 제멋대로 자라 말라비틀어진 나무처럼 3층짜리 건물이 부실하게 버티고 있었다. 바람에 건들거리는 지붕 하며, 건물 앞부분은 금이 가 틈이 벌어지고, 창문마다 비바람에 삭은 덧문들이 덜렁댔다.


낯선 방문객들만이 거리를 지나가다 건물을 바라보고는 건물이 버티고 서 있는 것 자체가 기적 아니냐는 둥 질문을 던지곤 했다. 하지만 주민들 어느 한 사람 그 같은 질문을 내던진 적이 없었다. 마이모네스가 바로 이 건물에 살고 있었고, 신은 한없는 구원의 손길로 마이모네스가 살아가는 동안 그를 지켜줄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유대인 랍비가 책상 앞에 앉아 창세기를 읽어 내려갔다. 노쇠한 음성이었으나 또박또박 성스러운 어휘들을 한 자 한 자 읽어가는 중이었다. 그가 입 밖으로 쏟아낸 말들은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언표된 지고로 드높은 창조주의 말씀이었다.


순간 랍비는 읽기를 멈추고 잠자코 있었다. 마지막 음절이 아직도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신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무지한 자들은 오로지 신의 말씀이 계율과 계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했다. 그들은 장님처럼 하찮은 금언이나 격언들을 읊조리며,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제식만을 되풀이하곤 했다.


밤은 단 한차례도 빛을 열어젖히지 못한 채, 그저 어두운 암흑 상태로 지속되고 있었다. 마이모네스는 수염을 어루만졌다. 하지만 각 시편의 이면에는 각 구절들마다 숨겨진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마련이었다. 이는 참으로 진정한 주님의 말씀이었다. 마이모네스는 성서 위로 몸을 기울이고는 다시 읽어 내려갔다.


급격하면서도 불규칙한 소리가 그로 하여금 명상을 그만두게 만들었다. 누군가가 집요하게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겨우 허름한 외투 하나만 걸친 채, 그는 계단을 내려가 대문 한가운데를 뚫어 밖을 내다볼 수 있게 만든 구멍에 씌워진 쇠 격자 창살을 걷어내고는 나무로 된 빗장마저 풀었다.


랍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대문 밖을 바라보았다. 골목길은 대체 사람이든 물체든 전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랍비, 저를 숨겨주십시오. 사탄의 무리들이 우리를 학살하고 있습니다.”


마이모네스는 낭랑한 억양을 지닌 목소리를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상하게도 얼굴을 보여주질 않았다. 순간 랍비는 망설였다. 물건을 훔치려고 도둑들이 간교한 잔꾀를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그들은 이 빈곤한 지역에서 시간만 허비할 뿐이라는 점도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랍비, 저 좀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마이모네스는 건물 위층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엔 봉사자들이 잠들어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을 더 보살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섰다. 가물거리는 등불은 거리 아래쪽을 비추고 있었다.


“오늘은 안 된다네.” 마이모네스는 그렇게 말하는 자신에게 놀랐다.


“랍비! 프랑크 족속들이 도시를 불 지르고 있습니다. 제발 안으로 피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제발!”


“그대는 누구인가?” 랍비가 중얼거리듯 물었다.


“신께서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주민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마이모네스는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이전에도 3일간을 그는 외동딸인 비나를 카이파 항구로 보낸 적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 어떻게 될까 봐 두려움에 떨었다. 그녀 또한 그 모든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를 뒤쫓는 무리들로부터 그를 안전하게 도피시키고 도와준 것도 그녀였다. 만일 그가 죽은 뒤에도 그녀는 자신의 일을 계속해나갈 것이었다.


랍비는 청동으로 된 열쇠를 꺼내 들고는 자물쇠 함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그는 꼼꼼히 바닥을 살펴보았다. 횃대가 대문 입구와 돌이 깔린 길을 비추는 어중간한 간격 사이로 어렴풋한 빛 그림자 하나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림자는 매혹적이었다. 마이모네스는 길바닥에 침입한 점점 커져가는 검은 물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가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을 때에는 낯빛이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졌다. 오직 한마디, 단 한마디 이름자만이 침이 바싹 메말라 버린 입에서 느닷없이 터져 나오듯 흘러나왔다.


“크하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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