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안

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30화

by 오래된 타자기


제1부 6-2



프랑스 파리

지금 현재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무언가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중압감이 되살아났다. 노디에 가를 가로질러 택시를 타기 위해 로슈슈아르 대로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면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약속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단 15분 만이 남았다.


그의 눈에 뚱보 형제가 제시간에 한 번도 제대로 도착한 적이 없다고 투덜대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모든 게 갑자기 귀찮게만 여겨졌다.


택시 정류장에 도착하자 그보다 먼저 택시를 기다리던 러시아 관광객 부부가 그들 앞에 도착한 G8이란 약호가 부착된 회색 포드 차량에 탑승하려고 막 택시 문을 여는 참이었다. 그는 재빨리 그들의 코앞에 신분증을 디밀었다.


“경찰입니다. 차량을 접수하겠습니다.”


그가 그들을 제지하려는 찰나 여자가 남자 있는 쪽으로 물러섰다. 앙투안은 재빨리 택시 안으로 들어갔다. 택시 안은 담배 찌든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더군다나 냄새를 없앤다고 택시 안에 놔둔 싸구려 재스민 방향제 향이 더 역겨웠다. 담배 냄새와 재스민 향이 서로 뒤섞여 참을 수 없으리만큼 기괴한 냄새가 앙투안의 코를 찔러왔다.


“갑시다!”


사십대로 보이는 금발의 택시 기사는 백미러로 힐끗 앙투안을 쳐다보았다.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는 택시 기사의 피부가 빗발처럼 쏟아지는 노루 사냥 때 사용하는 소구경 탄환에 맞은 것처럼 울퉁불퉁 구멍 뚫린 듯 얽어있었다.


“영화에서처럼 다른 차를 뒤쫓아 가듯이 택시를 몰아볼까요?”


“아뇨. 바쁘기는 하지만 괜찮습니다. 콘퍼런스 선착장으로 곧장 가주세요. 가속 페달을 더 세게 밟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질 테니.”


갑자기 포드 차량이 출발하자 앙투안 마르카스의 등이 뒷좌석 등받이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는 유리창 위에서 흔들거리는 플라스틱 손잡이를 꽉 쥐었다. 택시는 파리 시에서 운영하는 유로 자전거인 벨리브(Velib)를 추월하여 불쑥 앞으로 나서는가 하면, 버스 전용 차선에 끼어들기도 했다. 택시 기사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과속에다 추월에 이러다가 면허증 취소되는 것 아닙니까?”


“뭐가 문제인가요?”


“아니 러시아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택시 기사가 말할 때마다 살짝 귀에 거슬리는 억양으로 보아 동구권 출신임이 틀림없었다. 이후로 그들 사이에 더는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택시 기사가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서는 뉴스 채널의 정각 뉴스 시간을 알리는 시그널 음악이 흘러나왔다. 앙투안은 좌석에 몸을 깊이 파묻었다.


(…) 메카에서 전해드립니다. 당국은 전혀 논평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만, 모두가 국왕이 시아파 반군 세력의 최후통첩을 거부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국왕은 또한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에 따르면, 오염되어 더러워진 곳에 기반을 둔 변방 지역을 비난했습니다. 500명의 성지순례자들 가운데 50명이 프랑스 인들로서 현재 아주 위험한 사태를 초래한 인질범들에게 붙잡혀있습니다. 성지 주변에는 돌발적인 사태에 대비하여 사우디아라비아 경찰 병력이 투입됐습니다. 국왕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 병력을 파견함과 동시에 이번 사태에 걸프 지역에서의 미국의 개입을 적극 요청했습니다. 시아파 반군 세력은 황실 감옥에 구금되어 있는 50명의 죄수를 석방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랍 연맹은 중재자를 파견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번 인질극은 예루살렘에서 학살사건이 발생한 다음 곧바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번 사태로 중동지역에서의 긴장이 새롭게 한층 높아졌습니다. 프랑스 대통령은 소집…….


택시 기사는 백미러로 뒷좌석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울화가 치민 듯 붉으락푸르락 한 낯빛을 띠고 있는 승객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라디오 볼륨을 줄였다.


“라디오가 시끄럽지는 않나요?”


“아뇨. 하지만 저 히스테리컬 한 종교 집단들에 대해서는 조금은 진절머리가 납니다. 메카에서 이슬람 세력들 간에 인질극이 벌어진 겁니까? 예루살렘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어제 예루살렘 옛 시가지에서 유대인들과 아랍인들 간에 충돌이 있었죠. 그게 이스라엘 군인들이 주교에게 총을 쏘는 사태로 번진 거죠.”


“그래서요?” 앙투안은 놀란 듯 재차 물었다.


“허 참! 기독교 아랍인들 있잖습니까? 그곳에 사는? 어쨌든 추악하고 비열한 짓 아닙니까? 그것도 예수님이 묻힌 성묘 성당 앞에서?”


포드 차량은 클리쉬 광장을 반 바퀴쯤 돌아서 생 라자르 역 쪽으로 난 길로 들어섰다. 앙투안은 사람의 마음을 저미게 만드는 일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살인이나 그와 유사한 일이 순례지에서 벌어졌다고?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실상 메카나 예루살렘 이 두 종교적 성지에 해당하는 도시들은 성서에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랑에 충만해야 할 도시가 폭력에 얼룩지다니.”


택시 기사가 갑자기 후진을 시도했다.


“농담하시는 거죠? 가톨릭만이 사랑의 유일한 종교입니다. 로마는 하느님의 도시이고요. 유대인들과 아랍인들, 그들은, 그들은 세계를 지배하고 싶어 하는 겁니다. 무슨 수로? 첫째가 돈으로 하다가 안 되면 테러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내 나라 폴란드는 국민 모두가 기독교인입니다. 그것도 아주 신실한 신자들뿐이에요. 주교에게 총을 쏘는 짓을 벌인 놈들은 그냥 다. 눈에는 눈으로…….”


“그건 너무 지나칩니다. 가톨릭 교리도 그렇지 않을뿐더러.”


“성서에 나온다니까요. 하늘을 향해 침 뱉는 격입니다. 당신네 나라에서는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을 욕보이는 연극 공연들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있어요. 게다가 우리를 죽이려 들기까지 하잖아요. 자, 보세요! 우리의 선량하신 교황님에 대한 테러를!”


“예. 그런데요?”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이 공모했다는 겁니다. 인터넷에서 봤어요. 테러분자들에게 무기를 대준 놈들이 바로 프리메이슨 단원들이라는 거예요. 그놈들이 지금 추악하고 비열한 짓을 벌이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비참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젠 기독교도들 전체가 서로 치고받고 난리를 칠 거예요."


앙투안은 그가 타 종교를 지나치게 배척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에게 뭐라 대꾸하는 것도 별로 달갑지가 않았다. 차라리 내버려 두는 것이 상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으시면 라디오 좀 다시 켜주세요.”


택시 기사는 머리를 끄덕였다. 남자 목소리로 여겨지는 긴박한 음성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 예루살렘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성지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자랑하는 예루살렘의 로마 가톨릭 대주교가 부상을 당해 샤아르 제데크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결국 영면하고 말았습니다. 살바흐 추기경은 이슬람 사원 광장에서 대중 집회를 하던 중에 피격되었습니다. 사건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식민 지배에 항의하기 위한 평화적인 집회가 개최된 것은 오후 3시였습니다. 이때 시위 참가자들 가운데 신원을 알 수 없는 이들이 우발적으로 반자동 소총을 이용하여 이스라엘 소요 진압 대원들에게 총격을 가했습니다. 이로 인해 세 명의 이스라엘 경찰이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심한 부상을 당했습니다.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갑자기 발생한 소요사태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원들 가운데 한 명이 군중을 향하여 기관 소총을 난사한 거로 판단됩니다. 총알은 대주교의 머리를 관통했으며, 시위 참가자들 가운데 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고위 성직자가 병원으로 후송된 지 5시간이 지난 지금 현재 기독교인들과 이슬람 인들로 구성된 시위 군중들이 유대인 구역으로 진입하여 복수심에 불타 상가들을 불 지르고 약탈하고 있습니다. 지나가던 열 명가량의 유대인들이 심한 부상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은 이미 사망한 걸로 전해졌습니다.


(…) 이 비극적 참사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근동 지역에 엄청난 충격을 던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제 교류 학회 소속 근동 지역 전문가이신 앙리 베르네 교수님과 전화 인터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택시 기사는 투덜거리는 투로


“아! 그들의 면상을 확 걷어차고만 싶다. 그단스크에 계시는 제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는…….”


“그만! 오로지 예수님이란 말이지요. 라디오 볼륨 좀 올려주시겠어요?” 짜증을 내면서 마르카스가 대꾸했다.


“알았습니다. 알았어요.”


“안녕하십니까? 베르네 교수님! 메카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에 대하여 당국은 굉장히 우려를 하고 있는데요. 프랑스 대통령은 오늘 아침 엘리제 궁전에서 긴급 국제 정상회담을 개최하였습니다. 끊임없는 긴장관계에 놓인 지역에서 계속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고 판단되는데요. 이렇게 수없이 발생하는 소요사태에 대한 불안요인이 뭐라 생각하십니까?”


“상황이 참으로 심각합니다. 왜냐면 종교적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성소들을 손댄 거잖아요? 그것도 아주 심하게. 시청자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저는 메카와 예루살렘을 비교하고 싶습니다. 이 두 곳은 종교적 중심지, 즉 핵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반응장치 내부의 핵이 온도가 상승하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또한 이에 대해 연관 계통들이 다 반응을 보이는 것이고 전 세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앙인들이 방사능을 내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프랑스 대통령이 이번 사태들에 대해 아주 신중한 태도를 취한 것은 타당하다고 봅니다.”


“잠깐 여기서 중단하겠습니다. 광고가 끝나는 대로 곧이어 베르네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다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택시 기사는 냉소 섞인 말투로


“얼간이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종교의 유일한 원자로는 로마야.”


그 말에 대꾸하는 대신에 마르카스는 샤를 트레네의 샹송을 흥얼거렸다.


‘온 세상이 쿵쾅거리네 / 내 마음이 쿵쾅거린 탓이라네…….’


폴란드 기사가 아무리 눈치가 없다 할지라도 적어도 승객이 그를 후려치고 싶어 한다는 것쯤은 예견했어야 옳았다. 그는 내내 말없이 가만히 앉아있었다.


택시는 그랑팔레 왼쪽을 끼고돌았다. 앙투안은 정면에 보이는 것이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위에 세워진 두 개의 금박을 입힌 기둥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택시는 다시 방향을 틀어 바토무슈 유람선 선착장을 끼고 길게 이어진 강변로에 정차했다. 마르카스는 미터기에 표시되어 있는 금액에 딱 맞춰 요금을 지불했다. 팁은 주지 않았다. 기사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아주 인색하십니다 그려.”


“미안합니다. 오늘 아침 미사 때 돈을 다 봉헌해서 더 드릴 돈이 없네요.”


그 앞에서 느닷없이 출발한 택시는 질풍노도와 같이 앞으로 내달렸다. 마르카스는 택시 기사가 가운뎃손가락을 쳐든 것을 얼핏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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