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36화
제1부 8-1
영국 런던
템플 거리
지금 현재
프레스턴의 우아한 진열대 너머로 이중으로 설치한 철제 셔터가 천천히 내려졌다. 프레스턴은 주로 우산과 파라솔을 제작하여 판매하는 곳으로 영국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었다. 오직 여왕 폐하를 위한 한정용품으로 우산과 파라솔을 만들어 왕실에 공급하는 업체였다.
지인들로부터 도티라 불리는 미스 엘드릿지는 늘 하던 대로 금박을 입힌 셔터 손잡이를 돌리면서 구름 한 점 없는 도심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맑은 공기가 그녀를 진저리 치게 만들었다.
지난 30년 동안 이 일을 해오면서, 또한 런던 토박이로서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건대, 가을에 습한 날씨가 이어진 기억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는개(안개보다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 가는 비)는 고사하고 소나기조차 내릴 기미도 없이 9월의 하늘은 절망적으로 청명하기만 했다.
물품 재고량을 꼼꼼히 점검하던 그녀는 오늘따라 평소와는 달리 상점 문을 예외적으로 늦은 시각까지 열어놓고 있었다. 손님 하나 없는 하루 종일 그녀의 코끝이 계속 찡긋거리기만 했다.
미스 엘드릿지는 속도를 좀 더 빨리 셔터 손잡이를 돌렸다. 손잡이가 빡빡해서인지 삐걱거리는 소리가 제법 났다. 그녀 또한 삐걱거리고 있었다. 지난번 소요 사태 이후로 건물주는 매번 저녁마다 손으로 내려야 하는 철망이 얼기설기 엮인 보기 흉한 철제 셔터를 설치하는 공사를 벌였다.
그녀는 건물주에게 플리트 거리는 해크니처럼 위험한 근교지역이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주인인 프레스턴 씨는 지난여름에 일어난 소동과 약탈에 큰 충격을 받은 탓인지 트라우마까지 생겼다.
그녀는 사장에게 연장 근무에 따른 급여를 약간 올려 달라 할 참이었는데, 뭐가 꼬였는지 매출이 전혀 오를 것 같지 않은 불길한 예감만이 그녀의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다. 천만 다행히 에든버러 공작이 스탠릿지 모델을 4백 개나 주문하고 나서는 바람에 엄청난 주문을 채우려면, 한층 일손이 바빠지게 된 것이 그녀에게 유일하게 안도감을 주었다.
공작은 자신의 딸이 오는 10월에 혼인을 치르는데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에게 선물하려고 손잡이에 문장을 새긴 우산을 주문했다. 비가 아무리 내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주 선량한 이들이 사는 지역인 스코틀랜드만큼은 그에 걸맞게 착한 비가 주룩주룩 내려줄 것이 틀림없었다.
하느님께서는 영국 북쪽 지역의 땅인 하일랜드를 한없이 축복해 주실 것이라고 그녀는 중얼거렸다. 혼자 중얼거리던 그녀의 눈길이 가게 앞에 막 정차한 럭셔리한 회색 벤틀리 차량으로 쏠렸다. 웨일즈 럭비 선수처럼 덩치가 큰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의 기사는 50대로 보이는 키 큰 남자가 차에서 내릴 때까지 공손히 차 뒷문을 잡고 있었다.
그녀는 철제 셔터 손잡이를 돌리던 것을 멈췄다. 차에서 내린 이가 정말 신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포 문 닫을 시간에 서둘러 물건을 사러 온 손님일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가게 앞에서 영국 신사의 멋진 기다란 음영을 우아하게 펼치면서 진열장에 전시된 상품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 순간 미스 엘드릿지의 시선이 반짝였지만, 신사는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가게를 지나치는 행인인 듯한 중년 사내는 프레스턴 가게에 들르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기사가 그에게 지팡이를 건네주자 그는 아주 우아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낙담한 표정으로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판단으로 비춰 보건대, 점점 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은 왕국의 피할 수 없는 데카당스와 맞물려 있었다.
셔터가 다시 차츰차츰 밑으로 내려오면서 유리창에 비친 노처녀의 가녀린 음영도 함께 사라져 갔다. 그녀는 가게를 나서면 하이게이트의 유명한 선술집 카운터에 앉아 맛이 기가 막힌 기네스 맥주 한 잔에 어른거리는 예언자의 환영에 슬픔을 달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고는 서둘러 버스를 타고 엠뱅크망에 15분이면 도착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