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37화
제1부 8-2
영국 런던
템플 거리
지금 현재
철제 셔터 문이 묵직하게 바닥에 닿는 소리가 들렸다. 훼인스워드 경은 우산들이 진열된 유리 진열장에서 시선을 거두고는 기사에게 어서 떠나라는 손짓을 했다.
“서둘지 말고 천천히…….”
기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길가에 주차되어 있는 벤틀리 차량 속으로 사라졌다. 벤틀리가 아주 나지막하게 부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다시 출발했다. 프레스턴 가게에 혼자 남은 남자는 지팡이를 짚고 가게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템스 강 방향의 내리막길에 해당하는 차량 진입금지 푯말이 붙은 작은 골목길로 방향을 틀었다.
이 길은 인스 법원 건물에 이르는 길이었다. 남자는 무슨 말인가를 서로 주고받고 있는 두 명의 법관들 쪽으로 다가갔다. 법관들은 머리에 흰 가발을 동여매고 검은 법복을 입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는 그들을 가로질러 가면서 표시 나지 않게 살짝 눈인사를 나눈 뒤, 템플 처치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매번 이곳에 올 때마다 훼인스워드 경은 시간의 족쇄가 풀린 듯한 뭔가 해방된 기분이 들었다. 그는 게걸스럽게 무서운 속도로 치닫고 있는 런던 시티를 멀리서 바라봤다.
그곳에 그의 오피스 빌딩이 있었다. 오래된 좁은 길들, 감춰진 작은 정원들, 그늘진 빌딩들과 미로와 같은 건물 귀퉁이 골목길들, 템플 거리와 미들인 거리는 왕국의 법리적 사상의 모든 복합체가 한 지형 안에 구현된 곳이었다.
분명한 것은 여기저기 비슷한 건물들이 잇달아 들어서면서 동시에 법관들도 급속도로 늘어났다는 점이다.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템플 교회는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 신이 쉬어가며 일을 하라고 조용히 타이르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템플 처치는 중세 시대에 영국에서의 템플 수도회의 자유, 저항, 교리 등의 보루와 같은 곳이었다. 이곳은 그들이 소멸되기 전까지 거의 한 세기 이상을 풍미했던 영성적이고도 물질적인 신경계통으로 보자면 중추신경과도 같은 중심지였다.
수천의 기사단원들이 점하고 있던 스트랜드와 템즈 사이의 지역은 역사 속으로 쓸려 들어가고 대신 법관들이란 새로운 군대에 의해 점령당했다. 이들 법관들은 영성적인 것보다는 물질적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살아있는 십자군들이었다.
템플 처치가 점점 가까워오고 있었다. 그가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짚어대는 지팡이 끝이 돌길에 부딪히면서 내는 딸각거리는 금속성 소리가 수정같이 맑은 반향 음으로 울려 퍼지면서 새로이 밀려드는 강물에 뒤섞여갔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20시 45분 정확한 시간에 되풀이되고 있는 템플 성가대 리허설에 그는 아주 열성적으로 참석하고 있었다. 수도인 런던에서 제일 유명한 앙상블 가운데 하나인 리허설에는 가끔씩 음악을 열렬히 사랑하는 이들이 참여하여 음악을 통한 커다란 즐거움을 한껏 누리고 있었다.
그는 템플 교회에서 들려오는 수수께끼 같은 이상야릇한 성가가 푸치니의 「영광의 미사」에 나오는 곡조임을 금방 눈치챘다. 자주 불리는 곡은 아니지만, 그러나 들으면 들을수록 선율은 그의 귀에 놀랍고도 참신하게 다가왔다.
원형 지붕을 한 건축물이 그의 눈에 육중하면서도 환한 모습으로 비쳤다.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 오른편으로는 성가대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훼인스워드 경은 건물을 이루고 있는 돌들의 언어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원이라든가 사각형, 내면의 신전 그리고 외면의 신전.
서쪽 문 오른편으로 등을 벽에 기댄 채, 기둥에 몸을 가리고 있는 한 사내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부스스한 머리를 거의 짙 노란색에 가까운 색조로 염색한 상당히 젊어 보이는 남자가 홀로 돌 벤치에 앉아있었다.
젊은 사내는 초조한 듯 안절부절 연신 담배를 태워 물었다. 얇은 입술 사이로는 끊임없이 담배연기가 흘러나왔다. 양손으로 쥐고 있는 낡고 해진 가방 손잡이는 몇 년간을 들고 다녔는지 손때가 묻어 거무스름하게 변한 상태였다. 젊은 남자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훼인스워드 경임을 알아차렸는지 그를 보자마자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섰다. 귀족 신사는 지팡이를 흔들다가 돌연히 벤치를 내리찍었다.
“앉읍시다. 친구! 자 어서 앉아요. 흐르는 시간을 잘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해요. 특히 이런 곳에서는.”
면도를 하다 만 것 같은 얼굴을 한 사내가 훼인스워드 경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즉시로 옆에 나란히 앉아 템플 처치의 돌로 지어진 정면 부분 쪽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참 감미롭지 않나요? 사람들은 푸치니에 대해서 잘못 알고들 있어요. 사람들은 그에 대해 가볍다는 둥 천박하다는 둥 말들이 많은데, 잘못된 생각이에요. 나는 푸치니의 미사곡이 모차르트의 레퀴엠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해요. 당신도 음악 좋아해요? 참으로 가슴에 와닿는 음악을 들을 필요가 있어요.”
“음악에 대해선 아는 게 없습니다. 게다가 음악은 절 미치게 만듭니다. 그런데 왜 여기서 만나자고 하신 거죠? 교회 앞이라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많은데.”
귀족 신사는 지팡이로 돌바닥을 두드려댔다. 지팡이 끝부분이 돌을 긁어대는 소리가 머리칼이 지푸라기처럼 부스스한 사내를 더욱 약 오르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지팡이로 바닥을 긁어대기만 할 뿐이었다.
“이 장소는 내겐 특별한 곳이라오. 템플 기사단은 순환 형 회랑을 갖춘 교회들을 짓기를 원하였소. 그 교회들은 하느님께 몰입하는 것을 용이하게 해 주었지. 또한 사람들 간에 서로 동등하다는 의식을 갖게 만들어주었소.”
“로드께서 걸어오실 때 대단한 취향을 지니신 인물이구나 생각을 했습니다만.” 사내의 말투에는 웨일즈 지방의 억양이 강하게 실려 있었다.
귀족 신사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시선이 기둥 꼭대기에 세워진 두 템플 기사단의 기마상을 향했다. 검은 돌로 조각된 기마상은 똑같이 군마를 타고 있는 성전 기사단의 형상이었다.
“원형 지붕을 한 이 교회가 예루살렘에 있는 성묘 성당을 본떠 지어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나요? 중세는 경이로운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에 템플 수도회의 영국 지도자들이 진정으로 생각했던 바는 이러한 성전이야말로 영국에 성스러운 도성을 건설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믿음이었어요. 오늘날 우리는 이런 순박한 믿음을 상실하고 말았지만.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리 위험천만한 경우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래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변호사들하고 법관들이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성가대원들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훼인스워드 경은 몹시 후회하는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런던에서 시스템 상으로 감시 카메라가 확실하게 작동되고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의 한 곳이란 사실을 나도 잘 알고 있소. 공적인 정보망에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사생활까지 엿볼 수 있는 시스템인 것만은 틀림없지. 지금 갖고 있어요? 내…….”
손가방을 쥐고 있던 사내는 뺨을 긁어댔다. 귀족 신사는 불쾌한 낯빛을 숨기지 않은 채, 그의 피부에 나있는 작은 붉은 반점들을 쳐다보았다. 셔츠의 목 부분에는 때가 끼어 있었다. 면도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얼굴에서는 싸구려 향수 냄새마저 간간이 풍겨 나왔다. 역겨움을 불러일으키는 냄새였다. 닉 드라이는 망보는 듯한 표정으로 여기저기를 의심스러운 눈길로 훑어보았다.
“물론이죠. 마이 로드! 제가 여기 있다는 걸 또한 제가 한 일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감옥에서 한 10년은 살아야겠죠.”
젊은 사내의 손가방을 쥐고 있는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오그라들고 있었다. 가방의 하얀색 연결고리가 시커먼 가죽 바탕과 심한 대조를 이뤘다. 젊은 사내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을 잘게 끊으면서 물었다.
“돈은 어디 있습니까?”
“당신이 이야기한 장소에 놔뒀소. 친구! 가장 번잡한 취리히 거리에 있는 은행에 맡겨놓았소. 비밀번호를 줄 테니 내게 당신 서류를 넘겨주면 너무도 고맙겠네.”
드라이는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내 담배꽁초를 바닥에 내던지고는 가방을 열었다. 젊은 사내는 서류철에 끼워져 있는 3장의 서류 종이를 꺼내든 다음 검은색의 컴퓨터 메모리 칩을 집어 들었다.
훼인스로드 경 역시 브륀 앤드 튀제트에서 맞춘 웃옷에다 손을 집어넣고 두 번 접은 종이를 꺼내 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 물건을 교환했다. 귀족 신사는 조급함을 드러내지 않은 것에 적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당신이 확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복사는 정확히 잘 되었겠지요?”
“물론입니다. 경하께서 알고 계시는 전문가들이 문제없다고 인증해 줄 겁니다.” 젊은 사내가 대답했다. 동시에 서류 끝에 적혀있는 일련의 숫자들과 철자들을 핸드폰에 입력했다.
“놀라운 일이야, 이렇게 간단하다니 정말 대단해.” 귀족 신사는 중얼거렸다. “오늘같이 경이로운 날에 당신이 손해를 봤다고는 생각지 마시오.”
“경하를 위해서도 다행입니다.” 작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전형적인 스마트폰 중독자가 중얼거렸다. “송금이 완벽하게 이뤄졌군요. 50만 파운드라.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한없이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마이 로드!”
훼인스워드 경은 일어서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지팡이 끝으로 돌바닥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은 당신께서 임하신 곳에 가만 내버려 둬요. 돈은 유용하게 잘 쓰시고. 지금 당장은 말고. 당신……. 신분을 잘 생각해서. 만일 당신이 당신 사무실에서 애스통 마틴이라 하면 사람들이 의심할 수도 있으니.”
그는 닉 드라이라는 젊은 친구에게 아주 불쾌한 어조로 신분이란 단어를 유난히 강조했다.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바꾸는 데 6개월이나 걸렸으니까요. 제 신분을요. 이젠 다 끝났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난 당신을 붙잡지 않소. 친구! 좋은 저녁 보내시오.”
드라이는 그에게 인사하고는 남쪽 방향으로 난 좁은 길로 멀어져 갔다. 길은 엠뱅크망 강변로로 이어지고 있었다. 두 사람 간의 대화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귀족은 서류들을 컴퓨터 칩과 함께 웃옷 안에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성가대가 「영광의 미사」 마지막 부분을 열창하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곧바로 교회 입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