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40화
제1부 9-1
예루살렘
1232년 만성절 아침
성당은 텅 비어있었다. 희미한 등불만이 십자고상 아래를 비추었다. 거의 길에 붙어있다시피 한, 가운데가 뾰족한 탄환 형태의 아치로 된 성당 입구는 여전히 어둠 속에 잠겨있었다. 수비대 병사들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궁전 주위로 순찰을 돌았다. 교황 특사는 일체의 소음을 싫어했다.
로마에서 도착한 날부터 도성 주민들은 검투사같이 젊고 늠름한 체격의 교황이 신임하고 있다는 남자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켜 갔다. 동방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고위 성직자들은 귀족 가문에 속한 자손들이어서인지 신학에 관해서는 완전히 무지한 상태였을 뿐만 아니라, 탐욕스럽고 쾌락에 물든 아주 천박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지적인 면에서 막힘이 없음은 물론, 활달한 성격을 지니기까지 한 교황 특사의 인상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더하게 만들었다. 점점 갈수록 로마에서 예루살렘 왕국에 고위 성직자를 파견하고 있는 이유가 예루살렘에 대한 로마의 지배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거니와 예루살렘을 직접적으로 통치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사람들은 거의 낡아 부서지기 직전인 양방통행의 계단을 이용하여 성당을 오르내렸다. 교황 특사는 아주 세심하게 왼쪽 창문을 완전히 차단하고 오른쪽 창문은 쇠를 벼려 만든 무거운 철책으로 둘러쳤다. 교황 특사는 자신이 있는 공간 뒤쪽에서 자꾸만 소음이 들리는 것이 찝찝할 만큼 내내 마음에 걸렸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지혜를 준 것은 스스로 어리석게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교황 특사는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조용히 묵주기도를 올리는 동안 등 뒤에서 누군가가 단검을 찌르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될 터였다. 그러나 지금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밤새 처음으로 듣는 발자국 소리였다.
교황 특사는 촛불을 입으로 불어 끄고는 어둠 속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분명 누군가도 이 한밤중에 악마의 목소리를 들었을 텐데 그에게는 암흑 속의 정적만이 감지되었다. 교황 특사는 확인하고자 방문을 나섰다. 그리고 계단을 한 계단씩 조심조심 내려갔다.
계단은 또 다른 계단으로 이어졌다. 희미한 반사광이 계단 아래쪽에서 반짝였다. 교황 특사는 발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떴다. 오직 어두컴컴한 밤이란 생각이 들 뿐, 잠깐 생각에 잠겨있던 그는 결정을 내렸다.
교황 특사가 내려선 곳은 완전한 어둠 속이었고 캄캄한 세계를 유영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생명이 없는, 형체조차 없는 밤의……, 특사는 어느 지점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한 중심이 아닌, 경계도 확실치 않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기 이전의 생명의 본체. 그는 발을 내디뎠다.
바닥은 계속 이어졌다. 교황 특사는 눈을 떠보았다. 앞에는 거대한 몸체를 한 돌기둥 하나가 육중하게 버티고 서있었다. 특사는 돌기둥 뒤로 돌아갔다. 단 한 번의 주시를 통해서조차 그가 서있는 공간은 온전히 그에게 점유당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입술이 움직이면서 들릴 듯 말 듯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가 새어 나왔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빛나시며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교황 특사는 십자고상 앞에 무릎을 꿇고 목에 걸고 있던 메달 한가운데 새겨진 성 베드로의 열쇠에 입을 맞춘 뒤, 목걸이를 조용히 벗어놓고는 자신에게 광명을 주십사 하느님께 간구했다.
두 시간 전에 누군가 특사의 방문을 두드렸다. 마룻바닥 위에는 달빛이 뿌려져 빛 그림자를 드리우고 벽난로에서 타오르던 장작들도 어느새 재로 변해 있었다. 특사는 잠에 들지 못했다. 연구에 전념하던 몇 년 동안 한밤중에 깨어나는 버릇이 생겼다. 침대에 누워도 위험에 처해있다는 사실에 쉽게 긴장을 풀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 몰라 신경이 곤두서기까지 했다.
성지에서의 정치적 상황은 로마를 긴장시켰다. 프리드리히 황제의 등장은 동방 제국이 황제의 손아귀에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예루살렘의 궁정은 비열한 야심을 품은 이들이 들끓는 장소일 뿐, 국내의 문제를 놓고 파가 갈려서 내가 옳네 네가 옳네 당파싸움이나 일삼는 곳에 불과했다. 그뿐만 아니라 끊이지 않고 음모가 꾸며지는 무대이기도 했다.
성지는 이미 제각기 기독교도들과 이슬람인들로 나누어진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각자는 조직화되어 어느 한쪽이나 할 것 없이 성지를 쓸어버리기에 딱 좋은 적절한 시기만을 노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침실 문이 삐걱거리며 슬며시 열렸다.
“주교님……. (특사의 자문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깨진 종처럼 울렸다) ……주교님…….”
특사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켰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두 손을 상반신에 갖다 대고는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물었다.
“새벽이 되기까지 몇 시간이나 남았느냐?”
“두 시간 남았사옵니다. 주교님! 긴히 전해 드릴 전갈이 있사옵니다.”
“이 한밤중에?”
“사실은…….” 자문관은 뜸을 들이다가 “우리에게 보낸 메시지는 아닌 것 같사옵니다만, 궁정 바깥 경계근무를 서는 수비대에 체포된 자가…….”
자문관은 자신의 직을 상속받았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들이 그가 자문관 자리에서 쫓겨나기만을 학수고대했다. 교황 특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곁에다 두었다. 그때부터 교황 특사의 자문관 역할을 맡은 도미니크 수도사는 자신의 새로운 우두머리를 비할 데 없이 공경을 다해야 할 존재로만 여겼다.
“그래서?”
“그 자가 도망치려 해서 우리 수비대가 붙잡았사옵니다.”
특사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미니크 수도사가 특사에게 겉옷을 입혔다. 특사를 대할 때마다 자문관은 천성으로 타고난 노예근성이 도져 더욱 비굴해져만 갔다.
“전갈은 누구에게 보낸 것이냐?”
“템플 기사단 단장에게 보낸 것이옵니다.”
특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질 않았다. 그는 창가로 다가가 안쪽으로 닫힌 덧문을 열어젖혔다. 예루살렘은 아직도 잠든 채였다. 몇 군데만이 불이 켜져 어두운 허공을 향해 불빛을 던지고 있었다. 동쪽으로는 어둠침침한 빛으로 거대한 건물이 허공을 향해 상반신을 불쑥 내밀면서 건물의 몸체가 왕관처럼 빛을 발했다. 프리드리히 국왕의 궁전이었다. 국왕은 지금 궁전을 비우고 있었다. 특사가 다시 오른쪽에 자리한 솔로몬의 옛 신전을 바라보았다. 하얀 바탕에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이 성벽 꼭대기마다 펄럭였다.
“템플 기사단이라…….” 교황 특사는 비웃음을 거두고 마지막 음절에 힘을 주었다.
“예. 주교님! 오직 그들…….”
자문관은 말을 흐렸다. 실상 그는 교양머리 없고 눈꼴사나운 수도사이며, 무사들인 성전 기사단들을 경멸하고 있었다. 예루살렘에서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가문을 대표한다는 카데[1]들을, 물려받은 영지 하나 없는 이 사이비 귀족들을, 수도회에 소속되어 신앙을 팔아 전쟁에 뛰어들어 돈만 챙기는 무리들을 공공연하게 비방하고 나섰다. 교회는 검은 필요 없고 기도만이 요구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템플 기사단은 성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갔다. 국왕들은 기사단을 이끌고 동방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뛰어들었으며, 교황들은 기존의 질서를 뒤엎고 기사단을 그곳에 상주케 했다.
교황의 특사는 물끄러미 템플 기사단의 깃발들을 바라보았다. 북쪽에서 부는 바람에 깃발들이 펄럭였다. 몇 주 전부터 온갖 지역의 이주민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다. 예루살렘 몇 군데가 이들로 넘쳐났다. 템플 기사단은 이주민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교도들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기까지 했다. 이들에게만 공물을 바치는 것을 면제해 준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템플 기사단이 행한 주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화폐를 주조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화폐를 주조하여 이를 사용케 함으로써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해 갔다. 얼마 안 있어 그들의 창고는 황금으로 가득 찼다. 이는 교회에 되돌려져야만 할 황금이었다.
“죄수를 심문했소?” 교황의 특사가 자문관에게 물었다.
자문관의 쉰 목소리가 간교하게 꼬부라졌다. 더 이상 모든 것이 필요치 않아 보였다. 오직 특사의 환심만 사면되었다.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주교님! 주교님께서 직접 심문해 보심이 어떠하신지요? 그걸 알고 싶어서 왔사옵니다.”
“내 투니크 옷하고 양말을 이리 주게. 그자를 어디다 가둬두었나?”
도미니크 수도사는 어쩔 줄 몰라했다. 어둠 속에서 성호를 그었다.
“우물 안에 가둬놓았습니다. 주교님!”
[1] 카데란 ‘집안의 막내란’ 뜻도 있지만, 병졸로 처음으로 전쟁에 뛰어든 청년 귀족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