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41화
제1부 9-2
예루살렘
1232년 만성절 아침
앞뜰에 수비대원들이 꼼짝 않고 망을 보면서 서있었다. 교황의 특사는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궁정 안뜰을 가로질러갔다. 단 한 차례도 교회 바깥으로 벗어난 적이 없는 고위 성직자들도 서로 간에 간격을 이루면서 걸음을 멈추지 않고 특사를 따라 성큼성큼 도성을 가로질러갔다.
교황의 특사는 수도원들로부터 초대받아 모든 교회들을 벌써 방문한 적이 있었을 뿐 아니라 각 치료시설들을 돌아보기까지 했다. 이런 연유로 사람들은 특사의 발걸음만 봐도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특사는 걸어가면서 사람들께 말을 붙이기도 했다. 얼굴과는 대조를 이루는 천사의 눈빛을 한 특사는 모든 곳을 지긋이 바라보는 모습을 취하곤 했다. 느닷없이 찾아가는 바람에 사람들을 대경실색하게 만들었음은 물론, 한편으로는 매력의 대상으로 떠오르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때, 교황 특사를 가리켜 여우(여우란 말에는 ‘밀정’이란 뜻도 포함되어 있다)라는 별명으로 그를 호칭했다. 매사에 판단이 빠르며, 결정이 변화무쌍하고,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치는 자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바다의 수평선처럼 예측할 수 없는 특징을 지닌 사람이란 게 주된 인물평이었다.
빨리 도착하고 싶은 탓인지 특사는 성큼성큼 앞서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성직자들은 힘겹게 특사의 뒤를 쫓아갔다. 특사는 망루가 있는 성문에 다다르자 자문관을 불러 세웠다.
“우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게나.”
자문관은 대답에 앞서 가쁜 숨부터 내쉬었다.
“주교님! 모든 것은 솔로몬의 시대에 시작되었사옵니다.”
자문관의 말에 특사는 아무런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특사는 다만 지붕들 위로 사라진 달을 쫓고 있었다.
“솔로몬 왕께서는 신성한 땅에 하느님께서 거하실 신전을 지을 것을 맘먹었사옵니다.”
성직자는 성서에 빠져 들어갔다. 자문관은 그가 알고 있는 신성한 말씀이 적힌 두루마기 속의 내용을 들려주는 것을 즐겨했다.
“신전을 짓기 위한 공사를 보다 용이하게 진행하기 위하여 솔로몬 왕께서는 아라브나흐 르 예부시가 소유하고 있던 땅을 사들였습니다. 이 땅은 원래 밀밭이었는데 쉬볼레트라 불렀습죠. 인부들은 기초공사를 하기 위하여 땅을 깊이 파고 들어갔나이다.”
두건 밑으로 특사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시선이 주위를 휘둘러보는 눈빛이었다. 돌이 깔린 바닥 밑은 몇 세기 아니 수 세기 전에는 곡물이 자라던 밀밭이었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푸른 밀들을 어루만져 주었다.
“새로운 건물을 짓고자 인부들이 남동쪽 방향으로 눈을 돌린 것처럼 날마다 곡괭이질을 쉬지 않고 수직으로 파 들어가 깊은 구덩이를 만들었나이다. 주의를 기울였지만, 솔로몬 왕께서는 흙으로 덮인 땅 위에 서 있었나이다. 간담이 써늘해질 만큼 땅은 이내 무너지고 말았습죠. 천둥번개 치는 소리를 내며 땅 꺼짐이 일어난 후에 커다랗게 입을 벌린 구덩이로부터 부패한 기운이 솟아났나이다.”
“난 그런 이야기를 성서에서 읽은 기억이 없는데.” 특사가 자문관의 말을 잘랐다.
자문관은 순간 불안한 눈초리로 특사를 쳐다보았다. 교회 고위 성직자들 또한 하느님 말씀과는 동떨어진 객 적은 소리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주교님, 저는 단지 구전으로만 전해오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따름이옵니다. 주교님께서는 사람들이 전설에 쉽게 빠져드는 것을 잘 아시리라 믿사옵니다.”
“계속하시오. 도미니크 형제!”
“예루살렘은 온 동네방네 솔로몬 왕께서 도성 아래 잠자고 있는 용을 깨웠노라는 풍문이 떠돌았나이다.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솔로몬 왕께서 직접 왕관을 장식하고 있는 보석 가운데 가장 값진 보석을 떼어내어 악령의 아가리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것이었습죠. 이윽고 진동하던 썩어 문드러진 기운은 가라앉고 대신 장미꽃 내음이 공기 중에 퍼져나갔다 하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교황의 특사는 투니크 차림의 옷 호주머니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래서 솔로몬 왕께서는 우물 안에 두레박을 던지라 명령했나이다. 두레박 안에는 신선하고 맑은 물이 가득했습죠. 솔로몬 왕께서는 주님을 찬양하며 앞으로 영원히 모두가 새로운 신전에서 나오는 이 맑고 깨끗한 물로 목욕재계할 것을 명하셨나이다.”
특사는 열쇠를 연신 만지작거렸다. 남몰래 가슴팍에 성호를 긋는 수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 신전은 파괴되고 말았습죠. 이교도들과 속인들이 성소를 더럽히고 말았나이다. 템플 기사들이 솔로몬 시대의 땅들을 일부 되찾긴 했사오나 우물만큼은 저주하게 되었나이다.”
대못들이 비죽비죽 솟아오른 떡갈나무로 만든 문이 무덤 저편에서 소음이 나는 쪽으로 열렸다. 그러자 구역질을 일으키게 만드는 악취가 암흑으로부터 풍겨 나왔다. 특사는 성직자들이 서있는 쪽으로 몸을 돌리고는 소리 내어 웃으면서 대꾸했다.
“암흑의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하는 바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