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42화
제1부 9-3
예루살렘
1232년 만성절 아침
망루의 지상층은 바로 우물과 이어져있었다. 그곳에 진입할 수 있는 이는 몇 안 되었다. 엄선하여 선발한 수비대 파수꾼만이 이 죽음의 대기실에 포로들을 끌고 들어올 수 있었다.
여우는 앞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평평한 돌로 쌓은 우물의 바깥 둘레는 거의 지면과 같은 높이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는 반면, 아래로 파 들어간 계단은 어둠 속에 파묻혀 있었다. 층계 하나하나가 모두 나무로 되어있고 그마저도 암벽에 박혀있었다. 마지막 층계를 내려가면, 바닥 한가운데 죄수가 웅크리고 있을 것이었다.
특사는 상반신을 뒤로 젖히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도미니크 수사의 불안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교님, 제발 간청드리오니 경호를 받으시옵소서.”
여우는 대답하지 않고 계단을 내려갔다. 지독한 냄새가 저 아래쪽으로부터 풍겨 올라오는 탓에 왼손으로 두건의 늘어진 부분을 잡아당겨 코를 틀어막았다. 좁은 층계 측면에는 투시할 수 있는 창문이 나있었다. 특사는 어렴풋이 나무판자들로 막혀있는 타원형의 구멍들이 가지런히 나있는 것을 감지했다. 주교는 더 안쪽 깊숙이 들어가 보았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횃불로 아래쪽을 비추니 나무로 된 층계의 돌출부가 우물 안쪽으로 나있었다. 교황의 특사이자 주교는 계속 나아가기 위해 걸음을 내디뎠다. 층계는 더 이상 나있지 않았다. 그는 다시 아래쪽을 향하여 횃불을 비췄다. 진흙이 뒤섞인 웅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물 가까이로 얼굴을 디밀자 불쑥 튀어나온 돌에 사내가 묶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네놈 이름이 어떻게 되는고?” 교황의 특사가 죄수에게 묻자
“무아마르입니다. 나으리! 제발 선처를 베풀어주옵소서.” 딸꾹질을 두 번씩이나 연달아하던 끝에 비밀리에 전령의 의무를 맡은 사내는 울부짖었다.
“네놈은 이슬람인 인가?”
“저는 기독교인들에게 고용된 몸이옵니다. 나으리!”
프랑크인들은 대체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동양의 종교들의 모자이크를 이해 못 하는 족속들이었다. 유대교, 아르메니아 정교회, 그리스 정교회, 비잔틴 정교회, 시아파, 수니파, 알라우이트파, 드루즈파, 시리아파…… 성지는 말 그대로 바벨탑이었다. 이렇듯 다양하게 뒤섞인 종교들은 십자군으로서는 골칫거리였을 뿐만 아니라, 더하여 이들 종교들은 서로 각축을 벌이기까지 했다.
“예루살렘에 네놈을 보낸 자가 누구더냐?”
사내는 벽에 찰싹 달라붙었다.
“나으리! 한 번만 살려주옵소서. 저는 단지 서한을 전달하는 일만 부탁받았사옵니다.”
“네놈이 템플 형제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는 서한 말이냐? 왜 하필이면 그들이냐?”
“나으리! 저는 아무것도 모르옵나이다.”
특사는 사내 뒤쪽으로 횃불을 비췄다. 모든 것이 다시 모호해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대체 네놈은 어디에서 왔느냐?”
“알……, 알 킬할 도성에서 왔사옵니다.”
깊은 수렁에서 이슬람 사내는 연신 흐느꼈다.
“프랑크인들, 그 강도 같은 자들이 저희 마을을 공격했사옵니다. 그들은 도성에서 볼모들을 잡아놓고 몸값을 요구하고 있사옵니다. 그들…….”
“네놈 마을은 부유하기로 이미 정평이 나있다는 사실을 나 역시 잘 알고 있느니라.”
“제발 저를 풀어주옵소서! 전 절대로 나쁜 짓을 한 일이 없사옵니다.”
전령의 목소리는 두려움에 가득 찬 울림으로 벽들 사이로 메아리쳐 갔다. 여우는 두건을 뒤로 젖히고 우물 바닥을 쏘아보았다. 이 작자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이야기한 것이겠지. 악취가 코를 찌르는 물 쪽으로 횃불을 비춰보았다. 공포에 떠는 울부짖음이 캄캄한 밤을 뒤흔들고 있었다.
“저를 버리지 말아 주옵소서…….”
특사는 계단을 다시 올라갔다. 도미니크 수사가 한 말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용이라! 열한 번째 층계를 내 디뎠을 때, 벽을 향해 손을 뻗쳤다. 손이 벽에 닿자마자 타원형으로 난 구멍들이 만져졌다. 구멍들은 나무판에 가려져있었다.
“네놈은 이 우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아느냐?” 특사는 포로를 쏘아보았다.
“나으리…….” 포로는 울부짖기만 했다.
포로의 목소리는 결국 어둠에 묻혀버렸다.
“이곳을 가리켜 썩어 문드러진 곳이라 부르니라. 이곳에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모든 시체들을 던져 넣었느니라. 전염병에 걸려 죽은 순례자들이나 학살당한 이슬람인들……, 신에게 버림받은 이들 모두가 다 여기 모여 있었느니라.”
특사는 다시 계단을 두 칸 더 올라갔다. 그러자 더 이상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육 개월마다 각 뜨는 백정이 와서 뼈들을 추렸느니라. 떨어져 나간 살점은 썩어 문드러지고.”
세 번째 계단에 이르렀을 때, 여우는 벽에 등을 기댔다. 머리 바로 윗부분이었다. 둥근돌 하나가 튀어나온 것이 보였다. 그는 돌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돌은 시원한 느낌을 주면서 손에 부드럽게 잡혔다.
“어느 날, 송장 구덩이를 싹 비웠던 적이 있지.”
옴짝달싹 못하는 짐승의 울부짖음이 다시 메아리쳤다. 특사는 돌을 만지던 손을 거두었다.
“마침내 그날이 도래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