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43화
제1부 9-4
예루살렘
1232년 만성절 아침
불빛 한 줄기가 첨두 형 지붕을 비추고는 벽을 따라 길게 흘러내리다가 제단 발치에 머물렀다. 특사는 두 눈을 감았다. 아직 깊은 밤중이었다. 늘 그러했던 것처럼 묵상을 끝내자마자 귀를 기울였다. 거리 쪽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수비대 병사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보초 교대 시간이 늦어질 일은 만무했다. 교황의 특사이자 주교는 손을 뻗어 축성된 돌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손가락으로 홈이 파인 곳들을 더듬어갔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해 갔다.
점점 작업장에서 들려오는 나무망치로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커져만 갔다. 그의 눈앞에 석공의 가죽으로 된 작업용 앞치마가 어른거렸다. 십자가를 조각하기 위해 모난 돌을 깎고 다듬는 끌의 날카로우면서도 금속성의 소리도 함께 뒤섞여 들려왔다.
특사의 눈앞에서 환영이 사라졌다. 이는 단지 그 자신을 시험해 보는 시련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에게 두 가지 자질을 주신 하느님을 찬미했다. 그는 그것을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고까지 생각했다. 하나는 상상해 내는 능력이요, 다른 하나는 집중력이었다.
두 눈은 닫혀있었다. 특사는 정신을 통일하고 있었다. 어떤 결정을 내리고 광명을 찾아 나서기 위함이었다. 그는 천천히 자신 안에 침잠해 갔다. 말을 타고 고삐를 바짝 쥔 것처럼, 그는 간밤에 벌어진 일들을 생각해 냈다. 밤, 도미니크 수사, 솔로몬, 우물, 포로…….
참을성 있게 기다릴 필요가 있다. 그는 사건들을 다시 정리하고 세부적인 내용들을 손질하고 각 장면들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었다. 마치 스케치를 한 것에 색을 입혀 작품을 완성해 가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이윽고 그는 자신에게 엄습하는 충만함에 사로잡혀갔다. 순간들마다 벌어진 사건들은 그에게 모든 차원을 예시해 보여준 것들이다. 돌에 대한 감동, 우물 안에서 받은 충격, 포로를 가둬놓은 순간에 내지른 포로의 마지막 외마디, 결말을 짓기 전에 떠오른 정의…….
특사에게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의 정신적 투시는 그만큼 심오했으며, 요구사항이 많은 까다로운 것이기도 했다. 하느님께서도 세상을 창조하는 순간에 이런 강렬함과 격렬함을 이해하고 계셨을까? 그는 되뇌었다. 하느님처럼 그도 자신의 운명을 이미 예정하고 있었다.
교황의 특사는 두 눈을 부릅떴다. 향 내음이 계단을 따라 천천히 흘러 퍼져갔다. 그는 일어서서 십자고상 앞에 몸을 숙였다. 계단 위쪽에서는 자문관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호위대는 준비되었는가……?”
도미니크 수사는 늘 그렇듯이 교황 특사의 외관상의 일시적 기분에 따라 좌우되는 행동 때문에 충격을 받아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리고 내 말에 안장을 얹어주고.”
“호위대……. 말……. 이 시간에……. 그런데 어디로 가시려 하옵니까? 주교님!”
배고파 날뛰는 짐승처럼 여우는 혀로 입술을 축였다.
“알 킬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