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44화
제1부 10-1
프랑스 파리
세느 강 우안
지금 현재
숲을 이룬 떡갈나무들이 부드러운 초록의 잔디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가로수 숲 아래로는 샘에서 흘러나온 물과 뒤섞여 분수가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냈다. 돌 벤치에 앉아 앙투안 마르카스는 호기심에 찬 눈으로 잔디밭 위에서 까마귀가 발레를 추는 장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까마귀들은 지렁이를 앞에 놓고 서로 다투는 중이었다. 부리로 쪼아대면서 먹이를 서로 뺏고 빼앗기다가 먹기 좋게 나뉜 것을 혼자 다 차지하겠다고 난리 법석을 떨었다.
멀리서 봐도 두 마리 날개 달린 짐승들이 벌이는 광경은 흥미진진한 풍경이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서서 바라보니 사디즘의 광란이 따로 없었다. 화형에 처해진 천벌을 받은 듯한 지렁이는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댈 뿐이었다.
뚱보 형제는 마로니에 나무둥치에 거구의 등치를 되는대로 대충 기대고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시선이 공원 안쪽을 향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잔디밭에는 세 명의 남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란히 걸어왔다. 그들 뒤편으로는 삼 층짜리 건물이 육중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높이 난 창문들과 함께 처마 언저리 벽에 수평으로 낸 쇠시리 모양의 장식이 돋보이는 전형적인 17세기 양식의 건물이었다.
앙투안이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까마귀 떼들이 허공으로 후다닥 날아올랐다. 햇살은 잔디밭에 골고루 퍼져만 갔다. 앙투안은 자신을 포함하여 가브리엘과 뚱보 형제와 함께 셋이서 만날 것을 철석같이 약속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기가 적절치 않아 보였다. 셋이서 만나는 것은 자신의 수완에 딸린 문제이기도 했다.
앙투안은 경찰청장을 보자마자 누군지 금방 알아챘다. 옆에 안경 쓴 남자가 웃는 표정으로 앙투안을 바라보았다. 앙투안은 청장에게 휴가가 갑자기 정지된 것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뚫어져라 바라보던 남자는 앙투안 마르카스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더니 앙투안의 손을 꽉 쥐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손아귀의 힘이 느껴졌다. 무엇이든지 단박에 박살 낼 것 같은 힘이 손안에 퍼져갔다.
“지난해 반장께서 참으로 훌륭히 임무를 완수하셨다는 걸 들었소이다. 템플 기사단의 보물을 찾아낸 믿기 어려운 발견은 그보다 더 훌륭한 일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소이다. 전임 대통령께서 당신을 칭찬하신 것이 한두 번이 아닐 정도로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소이다.”
노래 부르듯이 리드미컬하게 읊조리는 목소리는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히는 힘이 있었다. 그가 앙투안 마르카스의 손을 놓아주지 않은 채, 당혹스러우리만치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 또한 마치 컴퓨터가 사진이나 그림을 스캔하는 것과 같은 모양새였다. 앙투안은 단박에 그의 시선을 감내하면서 공손하게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저는 단지 제 임무를 수행하였을 따름입니다. 대통령님! 지금 저는 이 건으로 숨진 이들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남자는 거머쥔 손의 힘을 뺐다. 대통령의 표정이 밝아지면서 마르카스는 그의 얼굴이 텔레비전에서 보던 때보다 훨씬 더 주름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옆에는 디지피엔[1] 경찰청장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굳은 표정으로.
“엘리제궁은 샹젤리제처럼 골동품으로 가득 찬 지옥 또는 죽은 자들의 왕국이오. 난 이 궁전에서 기거하고 있소이다. 그러나 천만다행하게도 난 살아있는 이들을 위하여 중요한 역할을 다하고 있소. 적어도 이 나라에서만큼은. 그러니 죽은 자들은 일단 제쳐두고 우리 조금 더 조용히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내게는 시간이 얼마 없소. 근동 지역에서 발생한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비상회의를 소집해 놓은 관계로 회의장에 다시 가봐야 하기 때문이오. 당신과는 아무 관련이 없지만. 반장!”
대화 상대방은 마르카스의 기분을 북돋아 주려는 듯 조용히 소리 내어 웃었다. 비위를 맞추려는 듯한 태도를 삼가하려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사사로이 그런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보보 광장[2]에 갑자기 출현한 그만의 특출남은 좌파 정부처럼 우파 정부 역시 그로 하여금 정치적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상당 부분 해소시켜 주었다.
[1] 1969년에 신설된 프랑스 국립경찰청(Direction génénale de la Police nationale)의 약자.
[2] 프랑스 대통령 궁전인 엘리제궁 앞에 위치한 광장. 광장엔 프랑스 경찰을 총지휘하는 내무부 청사가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