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48화
제1부 11-1
알 킬할
1232년 만성절 축일
해가 솟아올랐다. 기욤은 잠을 거의 못 잔 상태였지만, 완벽하게 일을 처리했다. 광장을 수놓고 있는 두 개의 샘 가운데 한쪽 샘 가까이로 가서 자리 잡았다. 복면은 허리춤에 끼우고 철퇴는 발아래 내려놓고 그가 앉아있는 곳 앞으로 마지막 남은 가족 전원을 일렬로 세웠다.
이슬람이 대부분이었던 히브리 지역에 유대인들이 들어오면서 안전이 강화되었다는 이야길 롱슬랭은 이미 여러 차례 들은 적이 있었다. 우선적으로 여자들을 가족에서 떼어놓았다. 그리고 여자들만 여러 군데의 서로 다른 이슬람 사원들에 분산해 가둬놓았다. 대신 남자들은 새벽까지 몸값을 받을 목적으로 한 곳에 잡아두었다. 이제 유대인들 차례였다.
광장 한가운데에서 롱슬랭은 볼모들의 몸값을 직접 챙겼다. 시리아 인들이 가져온 금속 화폐를 재는 저울 앞에서 그는 증여품들의 무게를 재고 영수증에 서명했다. 그와 같은 적법한 행동에 이슬람인들은 놀라면서 이들에 대한 경계심을 풀었다.
롱슬랭은 힘의 역학관계에서 형식이 내용만큼 중요하다는 사실과 함께 무언가를 양도하는 척하면서 결정적인 요구를 번갈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이미 꿰고 있었다. 대원들을 통솔하고 있는 우두머리는 따라서 몸값을 완전히 지불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포로들을 풀어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아케이드 밑에 있던 애꾸눈은 주화들의 가치를 따져본 뒤에 가치에 따라 주화들을 분류해 나갔다. 금화는 오른쪽에, 드니에 은화와 마르크 은화는 왼쪽으로 나누었다. 한 번 등급이 정해진 각기 분류된 주화들은 곧바로 가죽으로 된 자루에 담아 밀랍으로 봉인했다.
왕년에 신부였던 사내가 새 자루에 담은 주화들이 옮겨질 때마다 무게를 재고 개수를 헤아린 다음 꼼꼼히 양피지에 기입했다. 가끔씩 은으로 된 가느다란 통 안에 주화들을 굴려 넣어 은근슬쩍 목에 걸기도 했다.
기욤은 열정적으로 포로들을 선별하는 일에 매달렸다. 그렇지만 그의 열의는 새벽이 되기도 전에 사그라들고 말았다. 도성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가난했으며,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정면에 줄지어 서있는 장인들과 무두장이들 그리고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몸이 너무 일찍 노쇠한 여인네들을 그저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여인네들의 손은 시뻘겋다 못해 살갗이 터져 갈라진 상태였다. 그가 찾고 있는 포로들을 결국 찾지 못하자
“내가 찾는 노예 상인은 어디에도 없구나.” 기욤은 투덜거렸다.
갑자기 가족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내들은 가슴을 치고 아이들은 울어댔다. 그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가을바람을 타고 울려 퍼졌다.
“랍비, 랍비, 랍비…….”
이를 수상히 여긴 기욤은 철퇴의 끈을 잡아당겨 손에 쥐고는 위로 들어 올렸다. 그때 주술사 드뱅이 불쑥 나타났다. 드뱅은 이미 의식을 잃은 듯한 쇠약해진 수염 달린 한 사내를 부축하고 있었다.
“랍비, 랍비, 랍비.”
아우성이 일어났다. 기욤은 왼손으로 통역사를 움켜잡았다. 드뱅은 노인네를 벽에 기대어 놓았다.
“이 작자가 누군가?”
“우리의 영적인 안내자인 율사 랍비입니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통역사가 대답했다.
기욤의 입가에 미소가 번뜩였다. 그는 후다닥 노인네한테 달려들더니 고함을 질렀다.
“전쟁에 취했노라! 그를 때려눕히겠노라!”
아연실색한 얼굴로 바라보는 드뱅에게서 기욤은 포로를 낚아챘다.